건강한 암환자로 살기
작년 가을 옥천에 있는 수생식물학습관엘 갔다. 대청호의 윤슬이 빛을 만나 반짝이고 여전히 언제나 예쁜 핑크뮬리는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학습관이라는 이름이 주는 딱딱함과는 달리 곳곳에 지어진 건물들은 외국의 성을 보는 듯 신비로웠고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정원 공간도 아늑함을 주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들 중에서도 나를 이끈 건 한 평짜리 작은 성당이었다. 나는 무신론자이다. 어릴 적 교회도 다녔고 꽃이 피면 절에도 가지만 성당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토록 작은 성당이라니.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기도를 위해 신발을 벗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과 하늘과 땅과 바다에게 기도하기 위해.
그리 길지 않은 기도를 끝내고 나오자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H에게 눈치를 주었던 모양이었다. "아, 좀 아파서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내가 밖으로 나가자 그 아주머니는 조심스럽게 "불치병은 아니시죠?"라고 했다. "그럼요."하고 경쾌하게 답하자 "얼른 나으세요." 한다. 거짓말을 했다. '나을 수 있겠지. 아니 더 안 아플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나를 지나치게 가엾게 볼까봐, 말이 길어질까봐, 낯선 이에게 걱정을 안겨드릴까봐.
나는 6년 차 암환자다. 2016년 여름,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그해 초부터 조금씩 지속되던 기침의 원인은 결국 폐암 때문으로 밝혀졌고 수술 후 다행히 변이가 발견되어 그에 맞는 표적치료제 약을 복용 중이다. 보통 우리가 잘 아는 항암치료는 항암주사로 부작용도 많고 아주 힘든 치료 과정을 거치지만 표적치료제 약은 악성종양을 표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작용도 덜하고 그래서 일상생활도 가능하다. 다만 약의 지속 기간이 평균 1년으로 긴 편은 아닌데 나는 5년째 큰 문제없이 약을 복용하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던 차였다.
2021년 여름, 다시 기침이 시작되었다. 심하지는 않지만 몸을 앞으로 숙이거나 똑바로 누웠을 때 기침이 나왔다. 코로나로 전 국민이 힘들어하던 때였으니 어쩌면 그래, 코로나일지도 모른다. 열은 없지만 기침 때문에 왔다고 하면 병원에서도 꺼릴 테니 나는 자발적으로 PCR 검사를 받았다. 음성이었다. 이미 내 기저질환을 알고 있는 집 근처 내과에 가서 증상을 말하니 역류성 식도염 약을 처방해 주었다. 기침이 줄긴 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큰소리로 말해야 할 때 기침이 더 심해져서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결국 예정되어 있던 외래 진료를 한 달 앞당겨 보았다. 그리고 결과는 '흉수'가 찼다는 것.
흉수는 폐렴, 결핵, 암의 전이가 원인이다.
흉수가 찼다는 것은 암이 늑막으로 전이되었다는 뜻이다.
흉수를 빼도 또 조금씩 차올라서 결국 병가를 내고 쉬기로 했다. 다행히 쉼과 동시에 흉수는 더 이상 차지 않았고 그 무렵 수생식물학습관엘 갔던 거였다.
암이라고 해서 다 불치병은 아니다. 사망률이 높은 폐암도 1,2기에 발견하여 수술한 후 10년을 넘겨 여전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 외할아버지는 60세에 위암 수술을 하셨는데 90세까지 건강하게 지내셨다.
암이라고 해서 다 시한부는 아니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제목은 '서른, 아홉'. 39세의 찬영이는 췌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 몇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한다. 드라마에서 '시한부'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온다. '시한부'라는 단어가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그건 드라마 속 찬영이한테만 해당되는 말이지 모든 암환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생존율이 낮은 암이긴 하지만 나는 그 적은 확률 안에서 아직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100세 시대이니 내게는 50년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다. 사는 그날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리고 암 판정을 받고 절망한다. 하지만 암에 걸린다고 해서 곧 죽는 것은 아니다. 많은 약들이 개발되었고 지금도 개발 중이다. 그러니 너무 절망하지 마시길.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