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나쁜 것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들한테다"*
사랑하는 사람이 곧 죽는다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참기란 매우 힘들다. 수많은 환자를 떠나보낸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들, 병원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은 어쩌면 훈련이 되어 있을 수 있다. 물론, 직업인으로서가 아닌 한 개인으로 본인 가족과 절친을 떠나보내면서는 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지금부터 열심히 훈련하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운 사람이 죽을 운명일 때 그 사람 앞에서 눈물 보이지 않기로. 애달프고 안타까운 내 마음을 억누르고, 곧 세상을 떠나려는 바로 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에만 집중하기로. 삶의 완성을 죽음이란 형태로 잘 마무리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죽기 직전 불안, 공포, 고통 없이 떠나도록 약과 영양 섭취 균형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의료 지식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연약한 노인 피부와 혈관에 인공 수액이 주입되는 느낌은 무척이나 불쾌하다고 전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명료한 정신 상태가 돌아오는 순간에는 손을 꼭 잡고 "고맙다, 감사하다, 편안히 쉬라"고 말하려 한다. 울음은 그 사람이 명료한 상태가 아닐 때, 아니면 다른 공간으로 나가서 터뜨려야겠다. 죽기 전 내 몸과 마음이 불안한 상태인데, 옆에서 가족이나 친구가 자꾸 울고 흐느끼면 나는 더 혼란스럽고 무서울 것 같기 때문이다.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바로 이거다.
"죽음이 나쁜 것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들한테다."*
죽음 직전의 당사자는 그저 이 고통이 멈추기만을 바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은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을 것 같다. 죽음은 언제나 너무 빨리 찾아오고(셸리 케이건), 나는 아직 그 사람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없다. 죽는 사람과 산 사람이 '사랑'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 위태롭게 말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두꺼운 철학책이지만, 대학 강의를 정리했기에 구어체라 읽기 어렵지 않다(지루한 부분은 있을지언정). 저자는 첫머리에 명쾌하게 밝히고 시작한다. "나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아, 나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 몸이 죽으면 그냥 끝이야"라고. 대부분 종교에서 다음 생, 영원한 (정신적) 삶을 논하는 것은 그저 모두를 위로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자신 있는 책이 좋다. 영생을 믿는 사람은 안 읽으면 그만이고, 나처럼 저자와 관점이 맞는다면 통쾌하게 독서를 시작할 수 있다. 합리적, 객관적 입장인 듯한 글로 독자 맘을 휘어잡은 후 나중에야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는 책보다는 이편이 훨 낫다.
케이건은 데이비드 흄 생전 장례식(?) 일화를 언급한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죽는 순간까지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웃고 떠들며 유쾌한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 개념인 줄 알았더니, 18세기 철학자가 이미 '생전 장례식'을 치렀다니?! 호기심에 검색을 좀 해보니, 흄은 타고난 낙천주의자 같다.
코로나 광풍이 한창이던 시기 세상을 떠난 수많은 이는 가족과 손 맞잡지도 못하고, 격리 병동에서 홀로 죽는 순간에 많이 불안하고 외로웠겠다 싶다. 나는 죽을 때 어땠으면 좋을까? 우선 당연히 집에서 죽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고 싶다. 몸 상태가 허락한다면 최대한 많이 안기고 싶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테니, 가족의 말소리를 못 듣는다면 미리 부탁해 내가 좋아하는 곡 몇 개를 틀어달라고도 하고 싶다. 우는 소리보다는 다른 소리를 듣고 싶다(청력이 마지막에 사라지는 오감이라는 썰이 있으니).
물론 울음은 가장 원초적인 신체 반응 중 하나일 텐데, 죽음 앞에서 울음 참기란 매우 힘들 것 같다. 나도 울지 않을 자신이 없으니까. 그러니 내가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를 대비해, 연습과 준비를 해야겠다. 가장 중요한 건, 산자인 내가 원하는 것(그 사람이 죽지 않는 것)과 망자가 될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편안하게 눈 감기)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여러 치료와 조처를 도왔을 테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그 사람이 죽을 운명임을 받아들이게 될 터이다. 그때 죽을 사람이 최대한 편안하게 마무리하도록 돕는 것이 가까운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의료진 조언을 참고해). 그러니,
- 가족이 많이 아플 때 병문안을 꼭 다녀오자(체력이 허락하면 비행기도 자주 타야 함).
- 그 사람과의 추억, 고마운 점을 따뜻하게 말해주자.
- 그런데도 죽음 앞에서 눈물이 날 테니, 혼자 있을 때 실컷 울어두자.
- 내 사전 의료 의향서*에도 "울지 말고 따뜻하게 웃어줘, 좋은 추억 떠올리도록 도와줘"를 추가하고 가족에게 평소 적극적으로, 여러 번 당부하자.
- 최대한 오래도록 나는 온기와 감각을 느끼고 싶다(통증약 조절).
- 내가 죽은 후 가족과 친구들이 애통함이나 후회 대신,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엄마(아내, 친구)가 기뻐할 거야"라고 되뇌며 그런 일상을 살길 바란다(이 대목도 사전 의료 의향서에 추가!).
케이건 말마따나 이 세상에 죽어봤던 사람은 없으므로, 죽음은 어렵고 두렵다. 그래서 당분간은 딱 하나의 구체적 행동만 생각해 보기로 한다. 임종 앞둔 사람 앞에서 울지 말자. 후회 없이 사랑하자.
*셸리 케이건, ≪죽음이란 무엇인가≫(10주년 기념판), 2023년, 제9장 죽음은 나쁜 것인가
*한국에서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만 법적으로 인정받지만, 독일에서는 사전 의료 의향서(Patientenverfuegung)가 제도화되어 있어, 구체적으로 내가 죽는 방식을 정할 수 있다.
참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독일 생애 말 결정 관련 짧은 글
(사진: Unsplash의Miguel Santi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