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를 오래도록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나와 인생관이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발과 글빨이 좋아서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 날카롭고 속 시원하게 상대 진영 논리를 격파하던 청량감은 이제는 많이 사라졌어도, 준비 안 된 상황에서 말하거나 돌발 질문에 답변하는 그를 보면 순발력은 여전합니다. 유시민 책이 새로 나오면 늘 찾아봅니다. 그가 나오는 방송도 웬만하면 찾아봅니다. 정치 이슈가 폭발하는 시기, 또는 새 책 홍보 기간이면 볼 영상이 마구 쌓여서 행복합니다. 아이돌 덕질하듯 유시민 글과 영상을 뒤져보는 나는 무엇에 그리 꽂힌 걸까요? 주변 지인 대부분은 ‘아재’스러움이 철철 흐르는 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예, 저도 낚시 방송은 안 봅니다).
유시민에 꽂힌 계기
덕질 시작은 우연히 유시민 에세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면서부터였습니다. 정치를 그만둔 이유를 설명한 대목에서 공감했고 위로받았습니다. 그는 정치가로 바쁜 일정에 쫓기던 시절 비행기에서 책을 읽으며 행복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잡생각 없이 스토리에 푹 파묻히는 경험을 사랑한다면 누구나 공감하겠죠.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그 선언에서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정치를 그만두고 조용한 생활로 돌아가 좋아하는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그에게 나는 마구 감정 이입했습니다. 원하는 삶을 원하는 대로 살겠다고 선언해 줘서 그가 단숨에 좋아졌습니다! 나도 노력하는 데 잘 안되는걸, 쉽고 명료하게 책에 박제해 두니 내게 동기부여가 됐달까요. 그래서 유시민에게 다시 정치하라고 부추기는 익명 댓글을 보면 ‘남에게 미루지 말고 본인이 먼저 실천하세요!’라고 답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나는 드디어 성덕이 됐습니다. 알릴레오 방송 “시민 불복종” 편 녹화장에서 처음으로 유시민을 봤고 가까이 앉아서 거의 2시간 수다를 즐길 수 있었으니까요. 쉬운 말로 요약하는 능력, 복잡한 질문을 참 오래도 하는 질문자에게 솔직하고 명쾌하게 답변하는 능력을 직관했습니다. 이제 힘든 책 말고 분수에 맞는 가벼운 책을 쓰겠다는 유시민을 응원합니다. 힘들면 좀 편하게 가면 되죠. 책 콘텐츠는 느슨해졌는지 몰라도 말발은 여전한 걸 보면 마음이 놓입니다. 앞으로도 볼 방송이 쌓이겠구나 싶어서입니다.
어디서 살 것인가 VS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서' 살 것인가를 두고 오래 고민했었습니다. 출산 후 한국에 너무 가고 싶고 향수병이 극에 달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남편과 역이민을 알아보며 구체적 계획도 세웠다가 현실 앞에 무너져 포기하기도 했고요. 그런 부모의 혼란 속에서도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어느새 한국 지인들의 자녀 교육 관련 하소연을 듣다 보면 왠지 속으로 안도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내가 장소와 국가에 집착했던 그 시기의 뾰족한 불만이 무뎌진 겁니다. 내가 터 잡은 바로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 되겠다고 세월이 내 마음을 돌려놓았나 봅니다.
큰돈을 벌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과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생업이 있고, 아이 한국어 교육만큼은 우선순위를 두고 도와줄 수 있어 즐겁습니다. 깨끗한 공기를 가르며 숲에서, 호수 따라 달리기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한국행 비행기 삯으로 등골은 휠 테지만, 본가 가족, 한국 친구들을 만나러 뻔질나게 드나들 생각입니다. 그렇게 찍는 탄소 발자국이 미안해 고기 포함 다른 소비는 최소로 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