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이라는 팟캐스트를 오래 듣고 있습니다. 일명 '톡토로'(여둘톡 애청자)죠. 친구 추천으로 정서경 작가가 처음 초대 손님으로 왔을 때 유입됐는데(이후로도 한 번 더 와주심), 2년 넘게 성실한 톡토로 생활 중입니다. 여둘톡은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라는 슬로건 대로 일상, 취미, 책과 공연 소개, 반려 동물 이야기 등 황선우, 김하나 작가가 좋아하는 (아무) 이야기로 채워지며, 분위기는 대체로 밝습니다. 이태원 참사 언급, 총선 전 투표 독려 등 그동안 정치 이야기가 아예 없지는 않았죠. 하나 작가가 전두환에게 전직 대통령이라는 칭호는 과분하다고 전두환 씨라고 선 긋기도 했고요. 그래도 구분하자면 여둘톡은 시사, 정치가 아닌 소소한 일상 팟캐스트입니다. 작년 12월 3일 계엄 이후 여둘톡도 자연스레 정치와 집회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두 분 작가와 대다수(체감상 99%) 톡토로는 계엄 성토, 탄핵 찬성, 체포 찬성 파입니다. 그동안 여둘톡에서 다양성, 차별, 혐오 관련 이슈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다 이번주 130화 "인생은 기세다"편 댓글 소개에서 정치 얘기가 과하다는 청취자 사연을 들었습니다. 하나, 선우 작가는 이 소수의견에 답변하며 왜 정치 이야기를 하는가 설명했습니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수많은 동조 댓글이 쏟아졌고 팟빵, 스포티파이 댓글 수와 공감 수는 나날이 늘었습니다.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현 시국 관련해 다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존재합니다. 대충 국민 75%는 탄핵 찬성, 25%는 반대라고 하니까요. 박근혜 탄핵 때도 그랬죠. 이번 여둘톡이 쏘아 올린 정치 이야기 논쟁이 무척 재미있어서 좀 더 생각해 봤습니다.
정치 이야기 그만하라는 댓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시국이 시국이지만 정치적인 발언이 과도하다고 느껴집니다. (중략) 개인 인스타 등에서는 하실 수 있겠죠. 그러나 여둘톡에서 시위 노래를 틀겠다는 아이디어를 내셨다는 자체가 이 팟캐스트를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는 곳으로 쓰고 싶다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중략) 가족끼리도 하지 말아야 할 얘기가 정치와 종교 이야기라고 합니다. 몇 주에 걸쳐서 계속된 시위, 집회, 탄핵 이야기, 지칩니다. 정치적으로 안 맞는 톡토로인 저는 배려받지 못하는 건가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가족끼리도 하지 말자는, 아마도 미국에서 들여온 주장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언제부터 가까운 사람끼리 정치, 종교 얘기 자제하는 게 미덕이었던가요? 분명 수입산 조언 같습니다. 아마도 정치, 종교가 신념의 문제로 쉽게 치닫기 때문에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부대껴야 할 가족이 이 문제로 척을 지면 답이 없으니 그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허나,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 정치, 종교 등 특정 주제로는 아예 대화 시작을 말자고 하면 참 슬픕니다. 오히려 가정에서도 민주적으로 대화하고 논쟁하자고 캠페인 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요. 내 생각은 이래, 당신 생각은 그렇군, 이렇게 말이죠. 서로 다름을 확인하고 인정하자고요. 부모와 정치 성향이 다르다고 대화를 단절하고 살아야 할까요? 물론, 그 부작용으로 어느 한쪽이 참거나 피하는 경우는 있지만, 아예 정치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고 주장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정치 이야기를 조심해야 할 장소는 따로 있습니다. 직장입니다. 일로 엮인 사람과는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가족은 육체, 감정, 의식주로 엮이지만, 직장은 돈과 커리어로 엮인 곳입니다. 직장에서 우정, 사랑, 신념을 나눌 때는 신중한 게 좋습니다. 잘 맞으면 좋지만, 틀어지면 뒷감당이 힘드니까요. 정치 성향이 다르다고 협력하길 거부하거나 회사를 관둘 수는 없죠. 이번 계엄 같은 명백한 반헌법 행위라면 직장에서도 눈치껏 의견을 나눌 수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직장은 건조하고 쿨한 공간이라야 좋습니다. 내 밥줄이 달린 일이며, 가정처럼 공감, 위안받고 쉬러 오는 공간이 아닌 성과 내고 목표 달성하고 돈을 받아가는 곳이니까요. 자유롭게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직장이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호되게 후회합니다.
팟캐스트는 다릅니다. 진행자 입맛대로 진행하면 되고 듣고 안 듣고는 청취자 몫이죠. 싫으면 떠나도 좋고 반대 의견을 내도 좋죠. 이번처럼 정치 이야기가 불편하다고 한 댓글을 소개해 토론에 불 붙이는 것도 유익합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달리는 댓글에 위로받고 동감하며 전의를 더 불태웁니다. 우리는 강하구나 하면서요. 정치 이야기 듣기 싫다는 건 솔직하지 못한 표현 같습니다. 혹시, 내 입장과 다른 견해가 듣기 싫단 소리 아닐까요? 추가로, 이쪽도 저쪽도 싫다며 양비론, 다비론을 내미는 것도 그리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닙니다. 정당 정치란 원래 우리 주장이 옳다고 싸우는 일이며 권력을 잡아 공동의 정책을 펼치는 것인데 모두까기하며 피로감을 유도하는 건 이런 내란 상황에서 비겁한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이렇게도 느리고 답답하며 불안하고 우여곡절로 점철될 수밖에 없지만, 지금은 법에 따른 민주적 절차 말고는 대안이 없습니다. 소소한 일상 팟캐스트에서 모두의 일상을 위협한 사건에 대해 '가만히 있으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소개하는 행위 또한 여둘톡 철학에, 그리고 민주주의에 부합합니다. 여둘톡이 표방했던 다양성 존중, 다양한 삶의 형태 존중에 부합합니다. 여둘톡은 언제나 용기, 공존, 생명, 음미체, 지덕체를 강조한 방송이었어요. 예, 맞아요. 지식! 계엄 후 첫 방송에서 역사 공부를 강조했고, 뉴스 과몰입 탈출을 위해 악기 연주로 아침 이슬과 다만세를 들려줬습니다. 여둘톡이 쏘아 올린 정치 이야기 댓글로 무수히 이어지는 다양한 응원 댓글에 나는 힘을 얻습니다.
130화 댓글 소개를 듣고 내가 단 댓글입니다.
갑자기 추락한 원화 가치로 내가 손해 보는 것, 동네 작은 도서관이 또 문 닫는 일, 먹고 싶은 과일 마트에서 집지 못하고 오는 일, 내가 낸 세금이 그저 녹는 일, 모든 게 정치죠. 정치 얘길 말라니요. 가만히 있으라 인가요. 반대파를 설득할 노력조차 하기 싫으니 계엄 입틀막. 민주주의가 원래 지난한 거지만 젤 중요한 가치는 공존, 대화 아닌가요! 선우작가님 포고령 언급해 주시니 헉, 새삼 또 소름.
누가 정치 이야기를 일상과 떼어놓으려는지, 정치는 싸움이고 피로하다며 누가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정쟁'이라고 퉁치려는 세력이 누군지 봐야 합니다. 정치에서 권위를 덜어내려 시도했던 노무현 집권시절, 그만큼 정부 정책을 공격하고 사사건건 시비 거는 양태도 두드러졌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시절까지 양측은 분명 서로 공격해 왔습니다. 조기 대선 후 다음 민주 정부가 탄생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때 잘한 일은 잘한다 응원하고, 부족한 점은 지적하고 성토하되, 근거 없이 헐뜯고 파괴하려는 세력은 철퇴해야 합니다. 그건 진흙탕 싸움도 정쟁도 아닌 민주주의 숙명입니다.
반대 의견을 듣고 거기 정확하게 응답하는 용기를 나는 배웁니다. 그게 윤 정부 시절 부재하던 거였죠. 계엄이 날벼락처럼 떨어져서 놀랐다기보다, 윤 정부는 늘 입틀막, 배 째라로 일관했기에 계엄이란 무리수를 못 참고 시민들은 행동했습니다. 나는 대통령 당선 자체가 무효라고 생각하지만(불법 선거 사무소 운영 정황, 불법 여론조작 정황 등) 여하튼 현재 시점에서는 내란 세력 진압, 체포, 파면, 조기 대선에서 승리를 위해 뭐라도 하고, 격주 베를린 집회도 나가고, 청원글에 서명하고, 이렇게 의견 표명하며 모든 것을 하고 싶습니다.
(커버 이미지: https://open.spotify.com/show/4PGRw1h1e7jURCA6Thd1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