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디셈버

by Aragaya

오랜만에 복고풍으로 연출한 영화를 봤습니다. 80년대 초 스릴러물 같은 음악과 편집 화면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개봉한 지 2년 안 된 신작입니다. 나탈리 포트만과 줄리안 무어 투 탑인 데, 때깔이 저예산 독립영화입니다?! (칭찬) 스릴러도, 호러도, 액션 영화도 아닌 데 이 긴 심리극에 사로잡혀 웃고 울었네요. 쇼츠가 아닌 긴 극영화가 주는 만족감, 오랜만입니다.


아동 성폭력범으로 복역, 출산, 출소한 여성이 그레이시(줄리안 무어)입니다. 36세 여성이 13세 남자 아동과 성관계하다 잡혀서 감옥에서 출산하고, 나중에 그와 결혼해 3자녀를 두고 겉으로는 평범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가 기획되고, 주인공을 연기할 배우로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가 나옵니다. 엘리자베스는 영화 준비를 위해 실재 인물을 만나 일상을 함께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나이 차 많이 나는 부부, 성범죄로 맺어진 부부간 균열이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그레이시는 자신을 연기할 배우를 처음부터 경계합니다. 어린 남편을 만났던 36살의 자기 모습이 연상됐을지 모릅니다. 이젠 없는 젊음을 이 영화배우는 가졌고, 자신의 (여전히 젊은) 남편과 배우는 마침 동갑입니다. 두 여성, 즉 실재 인물과 배우의 긴장감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입니다. 둘이 한 화면에 담기면 대사 없이도 그 팽팽함에 숨죽이고 보게 됩니다.


엘리자베스는 영화의 빌런입니다. 명백한 성범죄를 저지른 그레이시가 아니고 말입니다. 그레이시는 레이스 옷을 입고 케이크를 굽고 투정과 눈물을 보이는 존재죠. 소름이 좀 돋긴 하지만 빌런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죗값을 치르고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줄리아드에서 공부한 엘리트 엘리자베스는 나이 차 많이 나는 부부('메이 디셈버'는 나이 차 나는 커플을 지칭하는 관용구)를 자신의 연기를 위해 이용하고 가차 없이 상처 줍니다. 젊은 남편인 조에게 "당신은 아직 젊어, 떠나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고 유혹합니다. 물론 함께 세 자녀를 키웠고 많은 걸 공유하는 '메이 디셈버' 부부가 결국 헤어질지, 같이 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대배우 두 명의 활약 속에서도, 아이처럼 울던 조의 절규가 가슴 아린 명장면이었습니다. 사춘기도 없이 13세에 머물렀을지 모를 30대 중반의 조는 울먹입니다. "나는 너무 어렸던 것 같아." 메이 디셈버 부인에게 말입니다. 13세에 인생을 저당 잡힌 안쓰러운 '아이'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충격, 가십, 스캔들 등을 걷어내고 그냥 다시 한번 눈물 범벅된 조의 외침을 생각해 봅니다. "나는 너무 어렸던 것 같아."



토드 헤인즈, 메이 디셈버 (2023)


사진: https://pedia.watcha.com/ko-DE/contents/mdj22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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