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자의 바티칸 방문기

종교 탈퇴자, 한국 천주교 앨라이(연대자) 되다

by Aragaya


딱 작년 이맘때 로마 가족 여행을 갔습니다. 이탈리아는 날씨, 음식, 볼거리 덕분에 실패 위험 없는 여행지죠.


바티칸 시티에 숙소를 정하고 첫날 짐 풀고 식당을 찾아 나서면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 눈도장 찍어둡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정면


예약해 둔 '줄 안 서는(skip the line)' 입장권으로 다음날 베드로 성당과 옥상 돔(큐폴라)을 제대로 볼 요량입니다. '줄 안 서는' 표라도 1~2시간 정도는 줄을 서지만요.




모태 신앙인에서 냉담자 거쳐 '종교 탈퇴자' 되다


나는 모태 신앙인으로 청소년 시기까지 성당에 다녔습니다. 물론 친구들, 신부 · 수녀님들과 노는 게 즐거웠지, 신앙심은 딱히 없었어요. 성인이 된 후 자연스레 무신론과 불가지론에 더 기울었죠. 한국에서 직장 다닐 때는 사무실 근처 정토회도 나갈 정도로 오히려 절을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천주교 냉담자로 오래 살았습니다.


그러다 독일로 와서 알바생 아닌 첫 풀타임 직장인이 되자, 월급 명세서에 교회세(Kirchensteuer)가 원천징수 되더군요. 그제야 퍼뜩, 독일 관청(Standesamt)에서 전화 한 통 받았던 게 생각납니다. 한국으로 치면 구청 격인 이 관청 공무원이 내게 전화해서는 "종교인이신가요?"라고 친절하게 물었던 일 말입니다.


"아, 한국서 어릴 적 성당 다녔지만, 안 다닌 지 너무 오래됐어요. 지금은 무신론자에 가까워요."


이렇게 답했더랬죠. 그러자 공무원은 상냥하게 다시 말합니다.


"원래 전 세계 가톨릭 인은 한 번 가톨릭이면 평생 가톨릭 인입니다."


나는 아마도 "아, 그런가요?" 정도로 답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공무원은 '가톨릭'에 지그시 표시하고 독일 세무청(Finanzamt)에 알려줬나 봅니다!


'믿는 사람도 아닌데, 빈약한 월급에서 교회세까지 낼 순 없지.' 교회세를 안 내려면 법원에서 '종교 탈퇴(Kirchenaustritt)'를 하랍니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간단하게 탈퇴 절차를 마쳤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독일인 남편도 유아 세례 받은 기독교(개신교)인 이었지만, 2009년쯤 매체를 장식한 독일 가톨릭 성직자 성폭력 파문을 계기로 그동안 미뤄왔던 '종교 탈퇴'를 했다고 합니다.


"엥? 그 사건은 가톨릭 문제인데, 넌 개신교(Evangelisch)였는데 탈퇴 계기가 된 거야?"


나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한국은 성당과 교회를 명확히 구분하잖아요. 남편은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같은 패밀리야. 별 차이 없잖아."라고 합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구교와 신교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한국에서처럼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독일에서도 가톨릭과 개신교는 구분하지만, '일반인'이 바라보는 해당 종교 이미지, 정서, 호불호가 '한국 개신교 vs 한국 천주교'만큼 확연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나는 적극적으로, 공식적으로 종교 탈퇴자가 됩니다.




로마 여행을 앞두고 바티칸 대성당에 갈 생각에 설렜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살아 계실 때였죠.


베드로 성당 내부


줄 서기와 인파에 지쳐도 옥상 돔은 꼭 보셔라


다시 2024년 5월의 바티칸.


미리 알고 갔지만, 막상 땡볕에 아이와 함께 1시간 반 정도 줄 서서 베드로 성당에 입장하기란 지치는 일이더군요. 기다림 끝에 웅장하고 시원한 성당에 들어서서 '역시~'하고 감탄하며 구경했습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성당 안을 둘러본 후, 옥상 돔(쿠폴라) 가는 계단을 오릅니다. 여기서부터 한산해집니다.


비좁고 오래된 계단을 천천히 올라 옥상에 오르니 탁 트인 하늘과 성물 가게, 화장실, 매점이 우리를 반깁니다.


베드로 성당 옥상 외부


지금껏 인파에 떼밀려 다니다, 조용한 옥상에 있으려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이와 남편이 화장실 간 사이 나는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시는 한국인 수녀님을 만납니다. 그분께 묵주 2개를 삽니다. 절친과 나눠 가질 쌍둥이 묵주입니다. 우리는 비종교인입니다.


친구나 가족이 아플 때 어느새 '기도'하는 나


큰 수술을 앞둔 친구가 수술 직전 병실에 오신 수녀님 기도에 위로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여행 전부터 난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서 묵주 팔찌를 사리라 다짐했습니다. 독일에서 적극적으로, 공식적으로 '탈 천주교' 한 내가 말입니다. 패기 어린 무신론자 잔재는 여전히 내 안에 있으나, 어느새 친구나 가족이 아플 때 평소 안 하는 기도를 합니다. 어릴 적 기도하던 가락이 있어서 그런지, 그리 어색하지 않게 간절하게 빕니다.


독일에서 기독교 위상은 한국의 그것과 다릅니다. 적어도 내 주변인들은 교황, 콘클라베에 관심도 없고 성직자 비리가 터질라치면 혀를 끌끌 찹니다. 독일에서 함께 공부한 폴란드 친구는 교황이라면 절레절레 고개를 젓습니다. 근엄 화려한 망토의 백인 할아버지 교황들은 적어도 유럽 밖에서 더 대우받는 듯합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한국 사촌이 유럽에 놀러 와서 함께 여행 중 여러 미사에 참석했었는데, 유럽 주요 도시 어딜 가나 신자 비율이 고령층과 외국인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눈떠보니 천주교 '앨라이'


현대사 굴곡점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용기 있게 나서줄 때마다, '역시 천주교야' 하며 편애 + 응원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헌재 탄핵 선고일 지정이 한없이 늦어져 전 세계 한국인이 애태울 때, 바티칸에서 "정의에는 중립 없다"라며 판결을 촉구하신 유흥식 추기경도 눈물 나게 감사했죠.


모태신앙 - 냉담기 - 탈퇴를 거쳐 이제 '한국 천주교 앨라이(연대자)'가 된 나는 종교인이 보여주는 용감한 '행동'에 옛정 가득 담아 연대합니다.


J. D. 샐린저 소설『프래니와 주이』에서 주이는 프래니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유일한 종교적인 일은 '행동'하는 거야!"


'행동하는 정의로운' 천주교라면 언제나 응원할 겁니다!!


베드로 성당 옥상에서 내려다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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