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혼자 화장실 가기
청청한 가을 주말, 맨해튼 브라이언 파크로 소풍을 갔습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 뒤쪽이 이 공원입니다. 독일 크리스마스 시장처럼 여기도 아기자기한 가설치 상점들에서 온갖 맛 나고 귀엽고 신기한 것들을 팔고 모퉁이 카페에선 디저트, 샌드위치, 비건 식음료를 팝니다. 카페 한쪽에 자리 잡고 햇살과 스낵을 즐깁니다.
"엄마랑 같이 화장실 갔다 오자!"
만 10살인 딸에게 습관적으로 묻습니다.
"안 가도 돼."
"아냐, 엄마 가는 길에 같이 갔다 와."
"싫어, 안 마려워!"
결국 혼자 공원을 가로질러 나들이 인파를 뚫고 공공 화장실을 다녀옵니다.
길게 늘어선 여자 화장실 대기 줄에 섭니다. 입구에는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 여성이 유니폼을 입고 들어가도 된다는 신호를 주고 있습니다. 독일처럼 화장실 이용료를 받지는 않네요.
'이런 인심은 좋네?'
볼일 마치고 다시 자리로 온 후, 얼마 안 있어 딸은 화장실을 간답니다. '으이구, 그러면 그렇지.'
남편은 설명합니다.
"이쪽 갓길로 한 80미터 직진하다가 왼쪽 화단이 끝나는 데서 왼쪽 아래로 계단 5, 6개 내려가. 거기서 다시 직진, 10미터 앞 화장실 보여".
남편은 애를 혼자 보낼 셈인가 봅니다. 난 2초 망설이다가 긴 줄에 또 서 있기도 귀찮고 해서, 그러라고 합니다. 가는 길 설명을 단단히 들은 후 아이는 혼자 갑니다.
한참 후 딸은 상기된 얼굴로 돌아와서는 수다를 쏟아냅니다.
"내 차례 됐는데 거기 서 있는 아줌마가 나 안 들여보내 주려고 했어! 엄마 어딨느냐고 계속 물어보잖아!!"
아이는 영어로 뭔가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많이 당황했나 봅니다.
"계속해서 웨어 이즈 유어 맘? 아 유 얼론? 열 번도 더 물었어!"
아이는 손발 써가며 뭔갈 말한 모양이고, 작은 실랑이 끝에 볼일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관리하시는 분은 신고할지 어쩔지 고민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딸은 모험담처럼 설명하며 뭔가 의기양양해 보입니다.
미국은 부모가 장 보는 사이 마트 주차장에 아이들을 두면 아동 방임으로 신고당하는 나라긴 하죠. 만 10살이나 된 아이가 대낮에 공공 화장실도 혼자 못 가는 뉴욕. 우리도 운 나빴으면 아동 방임으로 곤란해졌을지 모르죠.
스위스 어린이집
아이 셋 키우는 친구가 경력 전환을 해 스위스 소도시에서 어린이집 교사로 새출발했습니다. 오랜만에 통화를 하다가 문화 충격을 받게 됐어요. 친구가 일하는 어린이집은 만 4살이면 혼자 등원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물 맑고 아름다운 스위스라도 4살 꼬마가 혼자 키타를 간다니?!?! 세상은 참 넓고, 육아 방식은 가지가지입니다. 베를린에선 초등학교 1, 2학년도 혼자 등교하면 빠른 편인데 말이죠. 어떤 동네인지, 학교와 거리가 얼마나 먼지 상황별 천차만별이니 비교하기 힘들 수 있지만요.
아이 혼자 택시 타기
만 12살 딸이 목요일 저녁마다 혼자 수영 훈련을 다닙니다. 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 포츠담까지 약 40분 걸립니다. 천둥번개가 친 날, 수영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아이는 가족 채팅방에 전철 끊겼다고 SOS를 칩니다. 우리는 차가 없습니다. 아이 휴대폰 배터리는 18% 남았다고 합니다. 곧 어두워질 테고 가슴이 철렁합니다. 비바람에 나무가 쓰러졌고 베를린-포츠담 구간은 대체 교통편이 없답니다. 가족 채팅창에서 다급한 나와 느릿한 남편은 정반대 글을 거의 동시에 올립니다.
"엄마가 택시로 데리러 갈까? 한 30분 걸릴 거야"
"지도 보내줄 테니 너가 택시 타는 곳으로 가봐."
'엉? 택시? 애 혼자?'
남편은 포츠담역 택시 승강장 스크린숏을 보내주고, 아이는 어딘지 찾아가 보겠다고 합니다.
수중에 돈은 없으니, 집에 도착하면 택시비를 주겠다고 말하라 합니다.
20분쯤 후 아이는 택시 탔다는 문자를 합니다. 그리고 배터리 절약을 위해 인터넷을 끄겠다고도 합니다.
실시간 위치 공유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게 무척 후회됩니다. 간당간당한 아이 휴대폰 배터리 때문에 어차피 못 썼을지도 모르지만요.
아이한테 연락 오길 기다리던 30여 분 동안, 휴대폰에서 눈을 못 떼며 내 간은 콩알만 해졌습니다. '도착했어'라는 문자가 오자 집 밖으로 튀어 나갑니다. 얼굴 반이 수염으로 덥수룩 덥힌 외국인 택시 기사에게 돈을 건네고 아이를 안아줍니다. 나는 그때 왜 미안한 감정이 들었을까요? 반가움, 안도감은 나중에 밀려왔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택시를 타고 주 경계를 넘어 집에 오던 날, 겉으로는 아이에게 다 컸다고 칭찬을 쏟아부었지만, 흰머리가 백 개는 더 난듯한 오싹한 날이었습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Ricardo IV Tamay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