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방학 동안 자기 할머니(내 시어머니)와 둘이 열흘간 여행을 갔습니다.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드문드문한 일감을 처리하고 책도 실컷 읽는 평온한 나날이었죠. 아이가 태어난 후, 애 없이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여행을 가기도 했지만, 올여름 주어진 열흘 자유는 살짝 다른 느낌입니다. 일상에 주어진 둘의 시간이라 그런가 봅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산부인과 의사를 비롯해, 주변에서는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꼭 챙겨 보내라고 격려(?)인 듯한 조언을 해줬습니다. 뭔가 찜찜한 쓴맛을 남기며 머리에 남았죠. '둘만의 시간을 꼭 가지라고?' 그렇게 못하다가는 부부는 소원해지고 공동 육아자 신세로 전락한다는 예언처럼 들렸던 걸까요? 클리셰에 갇힐지 모른다는 불길함. 불길은 한데, 또 그닥 둘만의 시간을 위해 노력할 에너지는 없는 상태. 신생아는 카오스가 기본값이니까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4박 5일 (수학) 여행을 갈 때, 아이를 맡겨두고 둘이 저녁 공연을 보러 갈 때, 아이가 친구 집에서 자고 올 때, 등등 그런 자투리 부부만의 시간이 분명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딸 없이 남편과 여행지나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면 어차피 '일상'을 벗어난 거라 일상과의 차이가 희석되죠. 여행이건, 공연이건, 외식이건, 이벤트가 있으니 기본적 흥분이 가미됩니다. 그런데, 요번 여름 아무 계획 없이 열흘간 낮에는 각자 일상을 살고 저녁과 주말을 함께 보내면서 느낀 낯설고 반가운 정서는 "평온함"이었습니다.
셋이 매일 저녁 함께하는 밥상을 위해 얼마간 잔소리('너 왜 안 도와줘, 지금 내려와, 테이블 세팅해, 마당 가서 토마토 따 와, 채소 좀 다듬어'), 그르렁거리는 딸, 12년째 반복하는 듯한 식사 예절 잔소리에도 심드렁한 아이를 보는 갑갑함('허리 펴고 앉아 먹어라, 채소 먹어라, 나이프 제대로 써라'). 이 모든 부산함이 사라진 부부의 저녁은 평온합니다! 우린 공범이 되어 부엌에서 큰 접시에 식사를 담아 거실 TV 앞에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었어요! 열흘간 말이죠. 식탁에 반듯이 앉아 용도별 접시와 종지와 컵을 늘어놓고 제대로 차려 먹고, 치우던 그 번거로움을 내다 버린 해방감이란!!
어느덧 부모가 성가신 사춘기 초입 만 12살 딸과 열흘 별거는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여행(외박) 중인 딸이 양치는 제대로 할지, 선크림은 바르고나 다닐지, 그런 소소한 원격 걱정에서 어차피 멀어지는 시기기도 하고요. 걱정해도 별수 없지. 이젠 우리 엄마가 늘 하던 체념, '니 인생 니 책임이지' 단계가 성큼 온 거죠.
뉴스와 고만고만한 저녁 방송을 보며 소파에서 밥을 먹는 우리 꼴을 딸이 봤다면? 벙쪄 하겠죠. '뭐야, 순 망나니잖아. 엄마 아빠 에티켓 어디 뒀어!'.
예, 우리는 12년간 아이 앞에서 폼 잡고 산 것 같아요.
아이가 돌아오고 우리도 다시 문명 생활로 돌아갈 테죠. 역설적으로 우린 나름 괜찮은 부모라 느낍니다. 원래 이렇게 퍼질러져 살고 싶었는데, 그동안 애 때문에 폼 잡고 살았던 거구나~
셋이 눈 마주치며 하루 일상을 나누던 저녁 시간이 열흘간 행복하게 흐트러졌고, '우리, 애쓰고 있구나. 책임감이란 걸 짊어지고 있구나' 깨닫습니다. 아이가 둥지를 벗어나 사회에서, 다양한 친밀도 그룹에서 상호작용할 때, 몸에 밴 예의를 갖추길 바라는 확률 낮은 베팅(?)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아이 있는 잘 차려진 저녁이 좋은가, 아이 없는 평온한 카우치 포테이토가 좋은가. 평온하고 흐트러진 저녁이 주기적으로 보장되는 잘 차려진 저녁이 좋은 것 같아요.
우리에게 보람과 눈물과 불안을 선사하는 아이가 머지않아 둥지를 떠날 건 자명합니다. 교과서 대로라면 6년, 혹시 사회 초년생이 되기 직전까지 한집에 산다 해도 10년 후면 우리의 저녁은 영원히 평온하고 잔잔할 터이지 말입니다.
다시 투닥이고 빼액 거리고 형식을 갖출 저녁이 다가옵니다. 재회를 기다리며 설레기도, 성큼 커서 돌아오진 않을까, 기대하기도 합니다. 뭐, 확률 낮은 기대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