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원래 보수적이다!

성별 구분 없는 화장실

by Aragaya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그렇듯이, 내 생각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과거에는 옳다고 믿었는데, 지금 돌이키면 대체 그런 "확신"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창피하기도 해요.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생각 변화만이 아니라, 가치관이나 정치 성향도 변합니다. 과거에는 대체로 진보적 가치를 믿었지만, 이제는 내 정치 성향이나 가치관을 똑 떨어지게 분류하긴 싫습니다.


정치 생물학 (Political Biology)

정치 성향은 교육, 환경만이 아니라 유전자 영향도 있다고 하죠. 유전과 신경학 차이가 결국 정치 성향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단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신기했어요. 동성 결혼, 사형 제도, 낙태, 이민 정책 등 민감한 사안에 어떻게 반응하냐는 내 뇌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일 수 있다니!! 특정 도파민 수용체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성향을 낳고, 그런 사람들이 진보 가치관을 더 잘 수용한다는 얘기죠. 반면, 위험 감지에 민감한 편도체 반응이 큰 사람은 보수 가치를 선호할 확률이 높다고 하고요.


물론, 유전과 환경 못지않은 또 하나의 큰 영향 인자는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겠죠. 특정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야금야금 가치관이 바뀌는 거죠.




1. 명절 챙기기


한국에 살 때는 설, 추석 등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이 싫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입니다. 김영민 교수의 배꼽 빠지는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https://www.khan.co.kr/article/201809211922005)가 나오기도 한참 전, 나는 친척들 압박과 가사 노동을 피하려 요리조리 도망 다녔어요. 그런데, 오래 해외 살다 보니 설날과 추석이면 아이를 위해 명절 음식을 공수하고 한복 입히고 세배도 시킵니다. 젊은 날 고리타분하게 여기던 의식, 예절, 관습을 엉뚱하게도 내가 나서서 아이에게 전수합니다. 독일이라는 환경 변화, 아이가 있다는 상태 변화에 따른 가치관 변화입니다.


2. 이질적 이슬람 문화 단편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네가 우리 모녀를 그들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우리 딸, 같은 반 남자아이 둘 다 4살이었죠. 친절한 안주인은 우리 모녀와 마루에서, 딸의 친구인 남자아이는 자신의 형들과 아빠와 다른 방에서 서너 시간 시간을 보냈어요. '엉? 애들 놀게 하려고 왔는뎅?'... 이렇게 남녀 구분 철저할진 몰랐고, 소심하게 예의를 차려 어정쩡 시간을 대충 때웠습니다. 그리곤 앞으로 이 집에 초대받으면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외국인으로 오래 살며 한국과 독일의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나지만, 이런 에피소드가 하나둘 쌓여가며 개방성, 포용성 같은 이상적 개념에 나만의 체험으로 더 섬세하고 복합적인 레이어를 쌓아갑니다.


3. 성별 구분 없는 화장실


독일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공문서에 성별을 "다양함(다성)"으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베를린은 초등학교 저학년에 이미 성별은 딱 2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3의 선택 'Divers(다양함)'이 가능하다고 배웁니다. 모든 유형의 '차별'에 (이론, 원칙상) 반대하는 나는 이런 변화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화장실도 남성, 여성, 다성 불편 없이 들어갈 수 있다는 데 '머리론' 반대하지 않아요. 직접 겪어보니 별로인 거죠.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화장실 문에 남녀 구분이 없어서 도서관을 샅샅이 뒤졌어요. 결국 그 성별 구분 없는 화장실이 유일했기에 들어갔고, 어떤 아저씨와 마주쳤을 때 유쾌하진 않았죠. 남자들과 화장실 칸을 함께 쓰면 양변기 사용할 때 서서 소변보는 사람도 있을법해, 왠지 소변 냄새가 더 나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딸이 혼자 화장실을 이용할 때 남자들이 있다는 것도 께름칙합니다.


몇 년 전, 아이와 다니던 공공 문화센터 건물엔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모두의 화장실 이렇게 총 3개의 옵션이 있었기에 편했거든요. 그냥 젤 익숙한 (그리고 깨끗할 가능성 높은) 여자 화장실을 쓰면 되니까요. 여자 화장실 선택권을 없앤 도서관, 내겐 불편했어요.


성별 구분 없는 모두의 화장실이 내키지 않는 나는 보수적일까요? 혹은 보수적으로 변하는 걸까요? 아이가 생겼고, 나도 나이 들어서 보수적으로 변하는?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나이 들면, 혹은 지킬게 많아지면 보수화된다는 데 동의하지 않아요. 인간은 원래 보수성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와 전혀 다른 외모(피부색 등)를 가진 사람을 보면 경계하는 건 당연하죠. 비슷한 부류에 친밀감을 느끼고, 외모나 행동 양태가 전혀 다른 부류를 경계하는 건 본성이자 보호 본능이니까요. 그래서, 학습으로 배우는 겁니다. 외모가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모두의 화장실' 취지에는 공감하더라도 일단 낯설기 때문에 타고난 내 본성이 경계합니다. 그동안 해왔던 대로가 아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에너지가 드니 귀찮음도 큰 몫 하죠. 보수성이 디폴트고, 그런 변화를 수용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원하는 책은 모두 살 수 있어 도서관에 올 필요가 없는 사람 등)은 옛것을 고수하면 그만입니다.


나포함 많은 이는 새로운 정책 변화가 불러오는 일상 변화를 결국 수용할 확률이 높습니다. 대세가 되면 따를 수밖에요. 그런 변화 압력에 초연할 수 있는 재력·권력이 있다면 옛것을 고수하겠죠.




명절을 쇠고 후대에 전통과 관례를 알려주려는 나는 이민자라는 특수 환경 때문에 변했어요. 막상 해보니 품은 별로 안 드는데 아이가 좋아해 매년 하게 됩니다. 추석: 한국 상회에서 떡을 산다, 끝! 설: 핵가족을 위해 한 끼 떡국을 끓인다!


'이슬람 문화가 깊숙이 내 일상에 들어오니 불편한 면이 있더라'는 체험이 나를 차별주의자로 만들진 않습니다. 그저, 그동안의 내 가치관에 좀 더 풍부한 레이어를 얹는 얇디얇은 에피소드죠. 다음에 무슬림 가정에 초대받으면 성별 분리가 어느 정도인지 미리 물어보고 갈지 안 갈지를 정하면 되겠죠. 한국도 유럽도 성별 분리가 당연하던 시대를 겪었잖아요.


'모두의 화장실'엔 장점이 있습니다. 행사장 '길게 늘어선 여자 화장실 줄 VS 텅 빈 남자 화장실'이라는 불합리를 고칠 수 있는 변화죠. 공연장에서 긴긴 줄에 발 동동거려본 사람은 알 거예요. 요거, 잘만 쓰면 유용하겠다! 란 걸요.


원래 장착하고 태어나는 보수성을 난 꽤 없앴다고 생각해요. 일상 체험이나 책/영화 등 간접 경험으로 조금씩 복잡 풍부함을 더해가는 중입니다. 어쩜 내게 새 경험을 추구하는 도파민 수용체가 있어 20대 초반부터 해외를 떠돌았는지도 모릅니다(믿거나 말거나). 게다가, 사회 변화를 무시해도 되는 상류층이 아닌 덕에 이런저런 변화에 대충 맞추며 사는 거겠죠.


예전엔 싫어했던 '보수'라는 딱지도 이젠 거부감이 없습니다. 보수 정치인 앙겔라 메어켈도 좋아했고, 한국 민주당 권리당원이 된 지 2년 차에 올 6월 대선을 지나며 '눈떠보니 보수당원'이 되어 있습니다?!?!("민주당은 보수"라는 대선 캠페인). 독일에 비하면 한국 민주당은 보수 맞죠. 당분간은 보수당에서 탈퇴할 생각은 없고요. 기본 성향에 덕지덕지 개별 체험이 쌓여가며 더 복합적인 사고를 하는 게 맘에 듭니다. 성향 다른 사람과 자주 대화하고, 극우만 아니라면 보수주의자들과 부대끼며 사는 게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고 여깁니다.



Photo by Steve John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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