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 문학동네
동네 뒷산에서 본 이름 없는 무덤들이 떠올랐다.
올해 2월부터 헬스장에 가지 않고 집 근처 산에 걸으러 간다. 일종의 둘레길이 있다. 끝에서 끝까지 왕복해본 적은 없고, 마음속으로 정해둔 반환점이 있다. 집에서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채찍질할 필요가 없다. 앞만 보고 걷는 대신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에 좋다.
무덤들은 원래 길 옆에 드문드문 놓여있었다. 길 표시를 위해 양옆에 박아놓은 말뚝이나 뜬금없이 나타나는 큰 돌처럼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나지막한 길 가장자리가 점점 녹색으로 채워지면서, 이름 없는 무덤 위에도 윤동주의 시처럼 풀이 돋아났다. 힐끗 쳐다봤다가 전에 못 보던 팻말이 무덤 앞에 달려있는 걸 보았다. 지자체의 공원관리사업단에서 공원 조성을 위해 무덤을 곧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자손들이 기한 안에 나타나지 않으면 일괄적으로 이장하겠다는 통보인 것 같았다.
2019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황정은 작가의 <파묘>를 읽고 이 무덤들이 생각났다. ‘파묘’. 무덤을 고치거나 이장하는 것을 뜻한다. 처음 봤을 때는 무덤과 관련된 단어라는 것도 몰랐다.
독특하게도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을 이름으로 호명한다. 중심인물인 이순일과 한세진은 모녀이지만, 딸이나 어머니라는 호칭을 쓰지 않아 어느 정도 읽어 내려간 다음에야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버지인 한중언, 한세진의 형제들인 한영진과 한만수 역시 성까지 포함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어쨌든 이 가족 중 작품 속에서 가장 가까워 보이는 인물은 이순일과 한세진이다.
한영진이나 한중언은 그럴 생각이 없어서, 한중언의 장남이자 한 씨 집안의 막내인 한만수는 너무 어리거나 길을 몰라서, 그 길에 동행한 적이 없었다. (p.155)
묘의 주인은 이순일의 할아버지이자 한세진의 외증조부로, 전쟁통에 고아가 된 어린 이순일을 거두어 돌보아준 인물이다. 이순일은 매년 묘를 찾는다. 남편 한중언도 아주 오래전에 한 번 이순일과 함께 갔지만, 처가 쪽 묘는 쳐다보는 것도 아니라며 등을 돌려 이순일을 화나게 했다. 그 이후 한세진이 면허를 따고 차를 가질 때까지 이순일은 혼자 버스를 타고 묘를 찾곤 했다. 그러나 이순일의 나이 이제 일흔둘. 무릎 통증에 시달리고, 내년에 인공관절 수술을 앞두고 있다. 버텨오던 그는 더 이상 여력이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죽으면 아무도 방문하지 않을 묘를 없애기로 한다. 작품은 한세진이 이순일을 데리러 가는 장면에서 출발해 파묘 과정이 종료될 때까지의 하루를 담는다.
이순일과 한중언 부부는 장녀인 한영진의 5층 빌라 건물에 함께 산다. 장녀 부부의 살림과 육아를 돕기 위해서다. 이순일은 하루에 두 번 상을 차린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출근하는 한중언의 아침밥상을 차리고, 한층 위로 올라가 사위와 딸의 아침을 만들고 손자들의 어린이집 등원을 도맡는다. 얼룩진 앞치마를 벗을 새도 없이 아랫집과 윗집을 오르내린다.
한세진은 가끔 이순일의 피로에 책임을 느꼈지만, 그 집구석 구석에 쌓이고 있는 엄마의 피로와 엄마의 후줄근한 크록스 샌들 같은 것이 자기의 무능 탓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 이야기들을 그냥 들었다. 그래 엄마, 그래요, 하면서. (p.159)
한편 집안의 막내이자 장남인 한만수는 현재 뉴질랜드에 산다. 구직활동을 하며 번번이 면접에서 미끄러지다가 외국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있다. 아버지 한중언은 이순일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준 산을 한만수에게 남겨줄 수 있음을 자랑스러워하지만, 한세진이 보기에 한만수는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것 같지 않다. 한만수는 한국의 가족을 방문했을 때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노인이 준 선물이라며 어머니에게 펜던트와 두꺼운 그릇을 건넨다. 노인이 남긴 메시지는 ‘어머니는 위대하다, 당신은 위대하다.’ 한세진은 이 메시지를 듣고 왠지 모를 노여움을 느낀다.
아마도 한만수의 한국어 때문인 것 같다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한만수는 그것을 영어로 들었을 텐데 그래서인지 말투가 좀 영어였지. 홀을 쥔 왕이 그것을 하사하듯 그 애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지. (p.168)
할아버지의 묘를 파내는 날, 한세진과 이순일은 오전 9시에 도착해서야 이미 일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순일의 옛 이웃 김근일과 다른 인부들이 6시부터 서둘러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이 올라가 보니 이미 구덩이가 파헤쳐져 있다. 김근일은 그 당시 부자들은 돌관을 썼지만, 대부분은 시신만 넣고 소나무 가지를 위에 덮었다고 말한다. 인부들은 땅속이 소나무 잔뿌리로 가득하다고 말을 주고받는다. 깊이 묻었는지 한참을 파고 나서야 뼈가 나온다. 정강이뼈와 두개골을 제외하면 몇 점 되지 않는 뼛조각들. 파묘꾼들과 김근일은 산 아래로 내려가 화로에 뼈를 넣고 토치의 불길로 태운다. 그런 다음 공이 에 넣고 곱게 빻는다. 이순일과 한세진은 꼬마버스 타요 그림이 그려진 돗자리에 제사상을 차리고 마지막으로 절을 올린다.
이순일은 한세진에게도 절을 올리라고, 할아버지 잘 가세요, 하라고, 손녀와 그 딸 하는 일이 부디 잘되게 해 달라 빌라고 말했지만 한세진은 아무것도 빌지 않고 절을 올리면서, 그쪽 방향엔 그의 뼈가 이미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p.173)
파묘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것처럼, 묘를 없애는 과정도 처음 알게 됐다. 굳이 힘들게 파내고 모은 다음 불길에 태우고 빻지 않더라도 어차피 남은 뼛조각은 풍화작용으로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숨어서 몰래 하듯 해야 할 일일까. 하지만 알아서 흘러갈 일에도 우리는 의미를 부여한다. 때로는 그래야 한다. 이순일이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사람에게 말을 걸듯 자신도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나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을 걱정해 아예 묘를 없애는 것도 그렇다. 사람의 흔적은 단지 물리적인 대상일 뿐이더라도 살아남은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한세진은 엄마의 어린 시절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고, 외증조부를 직접 만나보지도 못했다. 독립해서 혼자 살고, 살림을 물려받으라는 말에 적당히 대꾸할 줄 안다. 엄마의 하소연을 전화로 들으며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엄마가 힘든 게 아닌가 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거기까지 이르지 않고 대개는 그랬어, 하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또 가족 중 유일하게 엄마의 성묘길에 동행한다. 동생이 효도 좀 쉬엄쉬엄하라고 말하자 자신은 ‘효’를 행한 게 아니라고, 엄마의 모습을 봤더라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딱히 자신을 속 깊은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엄마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함께 갔던 적이 있다. 학생들이 많았는지 별관까지 새로 지었다던 학교는 폐교가 되어 있었다. 차를 길옆에 세워두고 학교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깨진 유리창과 덥수룩하게 자라 벽면을 덮은 수풀을 보면서 엄마는 드문드문 옛날이야기를 했다.
학교 옆에는 내라기에는 넓고 강이라기엔 물이 다소 적은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기중기를 가져와서 놓은 것이 분명한 튼튼한 돌다리를 건너면서 엄마는 예전에는 돌다리가 없었다고 얘기했다. 학교에 갈 때마다 신발이 젖지 않도록 손에 들고 물을 건넜다고 했다. 손에 신발을 들고 친구들과 개천을 건너는 열 살의 엄마를 상상해보려고 했지만 어려웠다.
다 건너고 나니 엄마가 살았던 마을이 멀찍이서 보였다. 그때 왠지 엄마는 지금 외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