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그 15. <세계사를 품은 스페인 요리의 역사>

와타나베 마리 / 따비

by 몬순


'만년 유망주'라는 표현이 있다. 잘 될 것 같은데, 필요한 자질도 다 갖췄고. 저 녀석, 곧 일낼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를 주야장천 듣지만 한 방을 날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일본인 작가가 쓴 스페인 식문화사에 대한 책을 읽고 사람이 아닌 대상에도 이 말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안데르센은 1862년에 스페인을 여행하고 쓴 기행문에서 몇 번이나 풍요롭고 맛있는 식사를 칭송하며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맛이 없어서 먹을 만한 것은 무엇 하나 없다는 스페인 요리 중에서 말이다." (p.64~65)


북유럽 출신인 안데르센은 지중해의 풍부한 과일과 채소는 물론, 스페인 요리의 맛에 대해서도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기대가 전혀 없었다는 그의 말을 보면 당시 스페인 요리의 국제적 위상이 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스페인 요리가 좋은 조건을 갖췄음에도 오랫동안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 때문에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풀이한다.


즉, 풍부한 재료가 있고, 여러 민족의 영향으로 다양한 조리 방법을 발전시켰으며, 지역별로 식생활이 뚜렷하다는 복합적인 장점이 있었지만, 잦은 정권 교체와 전쟁 때문에 훌륭한 자질을 발전시킬 기회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웃 나라 프랑스와 다르게 식문화의 틀을 체계화할 시간이 충분치 못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현재 스페인 요리는 미식 문화의 트렌드를 이끌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뭐, 그리고 선도적인 위치가 아니면 어떤가. 넓은 국토에서 나온 다양한 요리 문화를 계승해온 것만으로도 스페인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실제로 자국 음식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고.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 스페인 식문화를 종횡으로 파헤친다. 1부에서는 오야olla, 아사도asado, 까수엘라cazuela, 뽀스뜨레postre 등 조리법이 중심이고, 2부에서는 아세이떼aceite, 오르딸리사hortaliza, 아로스arroz, 레굼브레legumbre 등 다양한 식재료가 각 장의 주제다.


이 책을 통해 마드리드를 여행할 때 어느 츄러스집에 가야 하는지, 바르셀로나에서 요즘 핫한 타파스바는 어디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스페인을 열흘이상 여행한다면 읽어봄직하다. 자세히 알면 알수록 더 맛있다. TMI는 원래 조미료와 같아서 적당히 사용하면 음식의 풍미를 돋운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질리지 않도록 남발하지만 않으면 된다.


어쨌든 본인이 만년 유망주라고 느낀다면 슬프지 않을 수 없겠지만, 나는 스페인 요리 같은 사람이라고 되뇌어 보자.




스페인에 머물렀을 때 먹었던 음식들이 줄줄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사진을 꺼내 그림을 그렸더니 아쉬움이 가시기는커녕 배만 더 고파진다. 아스또르가에서 친구와 맛있게 먹었던 꼬시도 마드릴레뇨cocido madrileño를 집에서 만들어보겠다며 마트에서 콩을 샀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뤼에르 치즈를 곁들여 먹은 꼬릿한 초리소를 올린 바삭한 토스트와 길을 다니며 먹었던 감자 크루와상이 지금 가장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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