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지음 / 어크로스
밥이 될 만한 걸 좀 만들어라.
이 말을 들어서 빵까지 만들게 됐다. 3일 연속으로 파스타를 만들자 입 밖으로 나온 엄마의 진심이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집에 박혀 달고나 커피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것처럼 보였을 때, 나 역시 나름의 수고로움을 찾기 시작했다. 밥, 반찬, 국, 찌개는 침범할 수 없는 엄마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엄마와 아빠가 평소에 먹어볼 일이 잘 없는 음식을 만들고 싶었다. 동시에 내가 쉽게 도전할 수 있어야 했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었을 무렵이어서 대형 마트에 가는 것도 꺼려졌다. 집 앞 마트에서 필요한 재료를 다 구할 수 있어야 했다. 여러 조건의 교집합에 있는 것은 역시 파스타.
스파게티 면을 샀다.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오일 파스타를 만들었다. 반응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아빠가 한 젓가락, 엄마는 세 젓가락 정도를 드셨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지. 그다음 날 (맛이 없을 수 없다는) 인터넷 레시피를 참고해 다시 오일 파스타를 만들었다. 영상에서 나온 조언대로, 면수를 버리지 않고 삶은 면에 몇 스푼 더했다. 그때의 나는 대단한 비법이라도 알아낸 듯 의기양양했기에 간을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접시의 염도는 사해의 소금물을 공수한 수준이었다. 가족들의 미뢰와 내 자존심을 동시에 공격하는 맛이었다. 한 명의 취향이라도 공략하겠다는 계산적인 마음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크림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다. 엄마는 주방에서 뒷정리를 하는 내게 다가와 아빠가 느끼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속삭였다. 속삭일 필요도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느끼한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 드려야겠다는 야심은 아빠의 표정을 보는 순간 이미 증발했다. 청양고추로 느끼한 맛을 잡으려고 했지만, 음식의 색깔은 변함없이 허여멀건했다. 이미 몇 입 먹을지 정한듯한 아빠의 얼굴을 읽으면서 음식은 눈으로 먹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남아있었다. 더도 덜도 말고 어제보다는 나은데?라는 희망의 시그널 한 마디면 됐다. 엄마는 설거지를 위해 장갑을 끼는 내게 이제 파스타는 그만 만들어도 되지 않겠냐고, 밥이 될 만한 걸 만드는 건 어떠냐고 진지하게 말했다.
혼자만 밖에서 맛있는 것을 사 먹고 돌아다녔다는 일종의 자책에서 출발했던 자취 10년 차의 재롱잔치는 거기서 끝날 뻔했다. 그러나 사놓은 면을 소진해야 했던 나는 그 이후로도 다양한 속재료를 넣은 파스타를 식탁에 올렸다. (불량식품 같다는 평을 들었던 고추장 크림 파스타가 의외로 가장 섭취량이 많았다.) 면이 떨어지고 나서는 수제비와 감자전 등 일요일 낮에 먹을 법한 음식들이 뒤를 이었다. 그러다가 곧 베이킹으로 눈을 돌렸다.
한 꼬집, 약간, 이라는 표현들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왠지 그램 단위로 딱딱 떨어지는 베이킹의 세계에서 안정을 찾을 것 같다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스콘 바닥이 약간 타거나, 감자빵에서 감자가 살짝 씹히는 미묘한 느낌이 실종되거나, 오트밀 쿠키가 조금 버석했던 것은 내겐 실패 축에도 들지 못했다. 적어도 먹을 수는 있잖아? 드넓은 베이킹의 세계에서 나는 잃었던 자신감을 차츰 회복했다. 처음 빵을 구웠을 때는 강요에 가깝게 권해야 했는데, 부모님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것만큼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사실 빵을 만든 건 밥이 될만한 것을 만들어보라는 엄마의 주문에 응답한 것이기도 했다. 부모님 두 분은 결코 내가 만든 빵을 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지만 말이다. 오후 5시에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을 먹고 오후 6시에 저녁을 드시는 분들. 하지만 나는 배부르고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밥 아니냐고 우겼다.
빵은 밥이 아니다. 빵과 밥이 엄연히 다른 말이니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각각의 말이 지시하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그렇다. “밥 먹었니?”라는 물음에 “빵 먹었어”라는 대답. 이 대답은 묻는 이와 답하는 이의 관계에 따라 그 느낌이 판이하다. (p.112)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 저자는 인간이 먹는 ‘밥’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말한다. 먼저 모내기, 추수를 거쳐 알곡의 껍질을 벗겨낸 쌀로 만든 ‘밥’을 뜻하고, 쌀밥처럼 자주 먹거나 끼니가 될 만한 음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넓은 범위의 밥에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다. 빵도 마찬가지다. 꼭 뒤에 ‘때운다’라는 서술어가 들어갈 필요도 없다. 자칭 타칭 빵순이인 내 생각에는 그렇다. 하지만 저자가 얘기한 대로 빵과 밥의 경계에 대한 감각은 세대별로 다른듯하다. 친구와 얘기할 때 빵이 밥이 되는 건 흔하디 흔한 경우고, 유명한 빵집을 일부러 찾아갔다고 하면 약간의 부러움도 추가 득점할 수 있다. 하지만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빵은 빵일 뿐, 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밥을 먹을 때는 쌀밥이나 현미밥 자체만 먹진 않는다. 다양한 반찬, 국, 찌개와 함께 먹으니 영양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 그 외 각종 한 그릇 요리들도 조리 시 대부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비율을 고려한다. 하지만 빵 자체를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요리라고 보기엔 어렵다. 적어도 내가 즐겨먹는 통밀빵 등 소위 식사빵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그렇다. 이런 빵들은 그냥 곡식으로 지은 ‘밥’과 치환된다. 그러니 부모님은 나가서 사는 자식이 빵 하나만 끼니로 먹는 불균형한 식사 생활 때문에 건강을 해칠까 걱정되셨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보니 그런 빵들은 간식으로 먹었군요.
새로 생긴 개인 빵집에 우연히 들어서게 되면 하드 계열의 빵부터 찾아보는 나지만, 빵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은 대부분 좋아한다. 우유와 함께 먹는 소보로, 오동통한 단팥빵, 바게트에 짭조름한 명란을 올린 명란바게트, 처음엔 이것도 빵이었나 싶었던 황남빵까지. 빵 속에 어떤 소가 들었는지 주로 궁금한 나와 달리 국어학자의 눈에는 ‘빵’이라는 단어가 빚어내는 언어 현상이 흥미로웠나 보다.
어떤 단어가 다른 단어와 활발히 결합한다는 건 그 단어가 언어생활에 안착했다는 증거다. 잘 알려진 대로 ‘빵’이라는 말은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다가 한국에 들어왔다. 포르투갈어 pão가 일본어 パン에서 ‘빵’으로 불리게 된 경위다. 그리고 속에 들어간 재료와 먹는 방법에 따라 지금도 무수한 ‘-빵’이 탄생하고 있다.
문제는 ‘식’과 ‘빵’의 결합이다. 말 그대로 ‘먹는 빵’ 혹은 ‘먹을 빵’ 정도로 분석이 되는데 그 의미가 이상하다. 빵은 먹으라고 만들어놓은 것인데 굳이 그 이름에 먹으라는 의미를 담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한자 ‘식’은 ‘먹다’는 뜻도 있지만 ‘밥’이라는 뜻도 있다. 이 말을 만든 일본인은 후자의 의미로 ‘식’을 쓴 것이다. (p.104)
외래어인 ‘빵’에 한자어가 붙는 것도 이상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빵이라는 말이 우리 언어생활에 깊숙이 들어왔으니 그건 차치하자. 그런데 빵이든 밥이든 먹으라고 만든 건데 왜 굳이 ‘먹는다’는 뜻의 ‘식’을 붙였나. 알고 보니 식빵의 ‘식’은 밥을 뜻한단다. 즉 밥빵이다. 빵을 밥처럼 먹을 수 있다는 건 이처럼 조어 현상에서도 증명된다. <우리 음식의 언어>라는 책에 빵 이야기가 들어간 것 자체가 몇십 년동안 급격히 달라진, 지금도 기세 좋게 올라가는 빵의 위상을 말해주지 않나.
‘식빵’에 이어 ‘술빵’이다. 저자는 설명을 위해 딴지를 거는 어투로, ‘술빵’이라는 말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크림빵, 단팥빵 안에 각각 크림과 단팥이 들어갔듯이, 술빵에는 술이 소로 들어간 건가, 하고. 대부분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술빵 반죽에 술이 들어가긴 한다. 빵을 부풀리는 것은 원래 효모의 역할이다. 그런데 공업용 발효제가 잘 없던 시절 반죽을 부풀리기 위해 막걸리를 대용으로 사용했던 게 술빵의 시작이었다는 거다.
“술빵만은 우리의 전통음식으로 느껴진다”는 구절을 읽으며 엄마에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밥은 밥이고, 빵도 밥이라고. 그리고 내가 만들었던 술빵을 생각했다. 베이킹은 따라 하면 끝이라고 희희낙락했던 나를 겸손하게 하는 일은 주기적으로 일어났으니, 주로 식감의 문제였다. 찜기에 쪄내기 때문에 왠지 더 쉬워 보였던 술빵을 처음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내가 만들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재료, 건포도를 잔뜩 넣었다. 익어가는 술빵 특유의 단내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참을 인을 새기게 했던 그 향기는 향기일 뿐이었다. 우선 무맛,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달고 짠맛이 아예 느껴지지 않았고, 거기에 적당히 고슬고슬해야 하는 술빵의 텍스처가 퍽퍽한 빵처럼 느껴졌다. 이름에 빵이 들어가는데 너무 빵 같아서 문제라니.
이미 저울과 계량컵, 팬 틀을 샀는데 베이킹의 세계마저 떠날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아빠가 막걸리가 남았냐고 물으셨다. 이미 술빵을 맛본 아빠가 막걸리로 입을 씻으시려나 했다. 약간 절망해서 왜요, 물었더니 내가 내일 아침에 만들어보려고, 하신다. 밀가루와 생막걸리, 설탕의 양을 일러드리려고 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레시피는 필요 없다고 했다. 춘장과 야채 몇 개로 밖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는 짜장을 뚝딱 만들어내는 아빠지만, 빵은 좀 다를 텐데. 내 말에도 아빠는 굽히지 않고 제대로 된 술빵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달큼한 냄새가 밀려왔다. 무려 아침 6시 반이었다. 예상했지만 아빠의 술빵은 ‘맛’이 느껴지는 단계를 넘어 꽤 맛있었다. 레시피를 아예 보지 않고 만들었으니 내가 의도했던 맛과는 조금 다른 완성품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아빠만의 술빵이었다. 레시피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새롭게 생명을 얻게 되겠지. 어느 생경한 국가의 음식이, 그 음식을 일컫는 말이 비집고 들어와 이런저런 모습으로 변하는 것처럼.
나와 엄마는 아침을 술빵으로 해결했다. 아빠는 당연히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걸 알았던 사람의 여유로움을 보이며 두어 조각을 먹었다. 맞다, 아빠는 원래 소식의 아이콘이었다. 별로인 음식도 적게 먹었지만, 썩 괜찮은 음식도 많이 먹진 않았다. 아, 상처 받을 두려움 없이 요리해도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