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제사드리러 하와이 가는 이야기.
-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역사.
- 기센 여자가 아닌 기세 좋은 여자들.
- 미션, 제사상에 올릴 물건을 각 1개씩 찾으시오.
...
이외에도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가 더 다양하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몇 백 쪽의 두꺼운 소설책을 설명하는 데 유일무이한 한 줄 요약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절대반지도 아니고. 물론 다른 설명보다 조금 더 나은 설명은 존재할 수 있겠지.
한 사람에 대한 감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알던 사람, 이제는 여기에 없는 사람. 3D 게임 마냥 다른 사람의 외피를 두르고 지나간 시간을 겪어보는 건 아직 현대 기술로 불가능하다. 온전히 그 삶을 살아보지 않는다면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물론 조금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은 있겠지.
그래서 한 장소에 모여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시선의 자녀, 그 자녀의 자녀들은 10주기를 기념할 장소로 하와이를 선택한다. 자손들의 제사는커녕 땅에 묻히는 것도 마다했던 게 시선의 뜻이 있었지만, 10주기 정도는 남은 사람들도 그럴듯하게 추모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와이키키 해변과 다이아몬드헤드 산, 8개의 주요 섬과 100개가 넘는 작은 섬들, 크루즈 위에서 바라보는 돌고래 떼. 아름다운 자연에서 서핑 등 각종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는 하와이는 시선이 이민자로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장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하와이는 한인 이민자 1세대의 역사를 껴안은 장소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하와이에 건너간 그들은 농장 노동자로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장녀 명혜의 주도 하에 하와이로 건너간 가족들. 하와이에서 시작해 독일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와 일생을 보낸 시선의 삶을 따로, 또 같이 되짚는다. 시선은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다 갔을까. 추억의 대상인 시선은 작품 속에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비교적 독자에게 생생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화가이자 평론가, 수필가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던 시선의 글과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서술해 생생한 육성을 듣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익숙하면서 낯선, 복합적인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배경이 하와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모든 공간이 그렇겠지만, 하와이 역시 여러 얼굴을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꿈의 휴가 장소지만, 거주민에게는 팍팍한 삶의 현장이기도 한 곳. 작품에 언급되어 있듯이 물가는 치솟고,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한 주민들이 본토로 떠나면서 2015년부터 3년 연속 인구 감소세를 보이기도 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작년 미국 내 물가지수와 관련한 조사에서 1위인 맨해튼에 이어 호놀룰루 시와 빅 아일랜드가 각각 2, 3위를 차지했단다. 경제생활의 대부분을 관광업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그 어느 곳보다 큰 경제적 타격을 입기도 했다.
가족들은 어머니가, 할머니가 거닐었던 곳을 밟으며 제사상에 올릴만한 각자의 물건을 찾는다. 아무것도 일구지 못했지만, 무엇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으로 한때 그곳에 머물렀던 시선을 생각하고, 각자 시선과 만들었던 추억을 떠올린다. 삶의 무늬가 다르듯, 서로 다른 사람과 사람의 모서리가 만나 닳는 모양도 제각각일 것이다. 물론 만나고 부딪혔던 그 모든 에피소드를 하나로 합쳐도 떠난 사람의 인생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이 직접 보지 못한 영역은 짐작과 추측의 영역이 된다.
하지만 함께 있었던 누군가를 함께 떠올린다는 설정만으로 이미 마음이 좀 따뜻해진다.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 명의 자식들, 그리고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하면서 얻은 딸. 그 자녀들이 낳은 자녀들. 등장인물들이 많다 보니 책을 여는 페이지에는 아예 가계도가 그려져 있다. 무언의 배려가 느껴진다. 그래도 첫 몇 장은 좀 헷갈릴 수는 있다. 나는 꽤 읽다가도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곤 했다.
모든 인물이 고른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 안의 권력은 딸들에게 쏠려 있어서 언뜻 모계 중심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등장인물은 없다. 공백이 없는 시끌시끌함 속에서도 각 인물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돋보인다. 이들은 묶어주는 것은 물론 시선이다.
이렇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것도, 이렇게 지극하게 기억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