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그 18. <삶을 바꾸는 식탁>

스티븐 부라니 외 지음, 김준섭 외 옮김 / 북저널리즘

by 몬순





Defying the Gravity.

중력의 힘을 거슬러 날아오르는 것. 뮤지컬 <위키드>에서 마법사의 실체를 알게 된 엘파바가 부르는 대표 넘버다. 익숙한 관성을 거부해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책 <삶을 바꾸는 식탁>과도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닐까 한다.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리적인 영역에서 ‘식’은 단순히 생명유지를 위해 누구나 수행해야 하는 필수 행위이지만, 사회적인 맥락에서는 이야기가 좀 더 복잡해진다. 단순한 맛의 선호를 넘어 개인의 신념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즉, 먹는 것은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결정이다.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먹을지 선택하는 행위는 그 사회와 문화의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먹을 것 부족으로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 선택지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그렇다. 현재 우리는 음식 관련 마케팅과 PR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음식의 생산자, 유통업자, 소비자가 이루는 푸드 산업이라는 거대 구조 속에서 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내 건강에, 그리고 지구 환경에.


영국 <가디언>와 파트너십을 맺은 북저널리즘이 단편소설 분량의 <The Long Read> 다섯 편을 묶었다. 책 제목과 같이 지금 식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좀 더 건강한 음식을 통해 세상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도전이 펼쳐진다. 균일하고 획일화된 맛을 거부하며 내추럴 와인을 만들고, 한때 부의 상징이었던 표백된 하얀 밀가루를 거부하고 좀 더 다양한 품종으로 빵을 만든다. 유제품과 식물성 우유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의 본질도 결국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다.


그러나 아는 맛이 맛있고, 아는 맛에 대한 사랑은 무섭다. 입맛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우리는 건강에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마음의 소리를 애써 무시한다. (물론 건강한 식단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다. 흑. 중용은 늘 어렵다. ) 더 위협적인 것은 정보의 부족과 통제다. 베이컨 등 육가공 제품에 들어가는 질산염과 아질산염이 니트로소 화합물이라는 발암물질을 생산한다는 사실이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지만, 기업들이 대대적인 로비로 위험성이 제대로 평가되는 것을 막아온 것처럼 말이다.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에 대한 곱지 않는 시선도 논리가 아니라 정서에 뿌리내린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이 비건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건 쉽다, 그가 당신에게 먼저 말을 시작할 테니.’ 인터넷에서는 비건을 조롱하고 폄하하는 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 비건 식단을 홍보하는 인플루언서들. 인스타그램이 비건의 이미지를 힙한 것으로 만들었고 채식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아직도 채식주의자들은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먹어오던 우리의 식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접하면, 마치 자신의 인격을 침해당한 것처럼 분개한다. 한편 지구 살리기와 연관된 실천을 위해 현재의 채식주의 트렌드가 풀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유행하는 채식 식단에 빠지지 않는 아몬드와 아보카도를 키우는 일이 낙농 산업 못지않게 환경에 해롭다는 것 등이다.


모든 변화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기의 징후를 발견하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퇴보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닫는 마지막 구절을 인용해본다.




비건과의 전쟁은 유해한 삶의 방식을 지키려고 싸우는 불운한 다수의 행동이다. 비건들은 시끄럽고 성가시고 고결한 척하며 자기만족에 빠져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건의 확산세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다고 해도 그렇게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옳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일 것이기 때문이다. (p.151)



작가의 이전글읽그 17. <시선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