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정용준, 이주란 등 지음 / 한겨레 출판사
1. 주택에서 5살까지 살았다. 그 이후로는 아파트를 떠나본 적이 없다. 내 또래 중에서도 자연과 가까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했을 때, 엄마는 직간접적인 경험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주택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우며 아파트보다 여러모로 불편하다고. 멋지게 지은 전원주택이 TV에 나와도 부모님은 실질적인 문제를 먼저 예리하게 지적하신다. 빛이 잘 드는 건 좋은데 창문이 너무 많지 않은가, 단열은 잘 될까, 난방비는 얼마나 나올 것인가. 예전에는 집의 외양과 인테리어를 보며 혹하기만 했는데, 나도 이제 문제제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런 집을 지을 경제적인 능력과는 무관하게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감각과 나름의 의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선택은 내 취향이 됐다. 어릴 때부터 살아온 아파트라는 주거 형식에 익숙하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만족한다. 지금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산자락에 가까운 아파트다. 산과 아파트 단지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날이 지금처럼 더워지기 전에는 한 시간 삼십 분 정도가 걸리는 산책길에 종종 따라가곤 했다. 자연이 위안이 된다는 말을 피부로 느꼈던 상반기였다. 인기척 없는 산길에서도 마스크를 끼는 게 어색하지 않아 졌을 때도, 반대쪽에서 나타난 나를 보고 산길을 걸어오던 사람들이 끌어내렸던 마스크를 주섬주섬 끌어올리는 걸 봐도, 묵묵히 시간에 몸을 맡기는 자연의 변화에 마음이 차분해지곤 했다.
2. 흙길도 좋고, (힘들지 않은) 등산도 좋다. 산도 좋다. 그래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로 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깝지 않다. 다른 동이 시야를 가려 바로 옆에 있는 산 대신 음영으로 인식되는 먼 산자락만 볼 수 있다는 점이 하나도 아쉽지 않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파트 키드이고, 당분간은 아파트 어덜트로 살아갈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곤충을 무서워한다. 벌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도, 곤충들이 나를 더 무서워해야 한다는 것이 맞다는 것도 머리로만 안다. 아, 도시를 떠나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은 도시 속에서 조금 다르게 사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 몇 달 동안 서울 안의 (나지막한) 산과 둘레길을 찾아다니곤 했다. 코로나 사태의 반작용이고, 흐름의 일부분이었다. 집에 조금이나마 녹색을 더하고 싶었다. 내게 맞는 식물을 찾고 싶어서 온라인 쇼핑몰을 찾아봤다가 아차 싶어서 먼저 공부부터 하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도서관에서 식물 기르기 관련 책을 대출했다. 결론, 식물 들이기는 보류. 하루 두 번을 제외하고 반음지 상태인 지금 집에서는 아무리 초보자에게 적합하고 반음지에서 잘 자란다는 식물도 마음 편히 키우기는 힘들 것 같다. 다음에는 꼭 햇빛이 잘 드는 창문 큰 집으로 가자고 다짐한다.
3. 집으로 돌아갈 때 내 머리를 지배하는 건 대개 느낌표다. 가까워지고 있어, 집에 다 왔어, 라는 안도감의 뒤에 붙은 소리 없는 느낌표. 그러나 조금 더 살만한 날, 고개를 들어 무수한 창문을 올려다보게 되면 가끔 신기하면서 궁금하면서 대견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저 창문 속에 각자의 삶을 꾸리고 있구나, 어깨를 맞대고 살면서 각기 다른 흔적을 만들고 있겠구나, 나도 너도 그래도 살 곳 하나 정도는 마련해 놓고 있구나. 그래서 책 <시티 픽션>을 고민 없이 골랐다.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 풍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내가 늘 읽고 싶어 할 그런 책이다.
작가 일곱 명의 단편이 느슨한 공통점을 주제로 묶였다. 작품의 배경은 다 다르다. 역세권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의 욕망을 찍어낸 듯한 <봄날 아빠를 아세요?>, 서울 대지진으로 불타 폐허가 된 종묘에서 활동하는 해설사와 야간 경비원의 이야기 <스노우>, 오성역 근방의 소도시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개인의 이야기 <별일은 없고요?>, 서울 아파트에 대한 청년들의 욕망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어느 날 불 꺼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눈을 뜬 소설가가 겪는 현실적인 악몽 <고요한 미래>, 하룻밤 동안 정치인이 모두 사라지고 밤섬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는 <무한의 섬>, 그리고 울산 관람차에서 조용히 이해의 정점에 다가가는 이야기 <캐빈 방정식>.
모든 작품이 다 좋았다. 좋은 점이 다 달라서 함께 묶여 있다는 게 좋았다. 특히 좋았던 것은 <스노우>의 고요하고 치열한 세계였다. 정용준 작가의 문장은 눈 덮인 종묘에 찍힌 발자국처럼 아름다웠다. 또 <별일은 없고요?>의 소소한 세계도 좋았다. 도시의 잔인함도 소소하고, 다친 마음이 차오르는 과정도 소소하다. 서울에 남긴 것이 기타 학원 수강권 2개월이라는 점, 서울이 마지막으로 준 게 코트에 묻은 비둘기 똥이라는 점, 작은 도시에서 무리하지 않고 새로운 일상과 인연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단 점. 물론 그건 나를 아끼는 사람이 삶의 터전을 일궈놓았을 때나 가능하다. 마음이 다칠 때 갈 수 있는 곳, 고향이 있다는 게 축복이라는 것을 되새긴다. 고향은 엄마가 있는 곳이라는 것도. 함께 살지 않는 대신 나도 도망갈 곳이 있다.
<캐빈 방정식>은 기대만큼 좋았다. 다른 시간에서 유영하고 있는 상대를 응원할 수 있다는 데서 위로받는다. 한때 함께 울고 웃으며 같은 시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이제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뭘 하든 잘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이 전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떤 물리법칙보다도 더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다. 왠지 주말이라 너그러워지고 싶나 보다.
서울에 계신 당신, 혹은 내가 가보거나 가보지 않은 어떤 도시에 계신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도시민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