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 편집부
1. 소설가 장강명의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읽은 적이 있다. 고민했다. 소설보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재미있는 작가 리스트에 이분도 넣어야 하나. 몇 초도 안되어 그 생각은 쫓아버렸다.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은 거의 다 재미있게 읽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고 있으니. 어쨌든 소설가가 에세이까지 이렇게 재미있게 쓰면 어쩌란 말이지, 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인터넷 서점이나 블로그의 책 리뷰도 호평 일색이었다.
작가는 어디서든 이야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구나. 다시 한번 생각했던 계기였다. 더불어 소설가를 포함해 작가의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넷플릭스에서 본 <블랙 미러> 시리즈에는 미래 사회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기억 장치가 등장한다. 내가 눈으로 본 모든 것을 저장해 다시 재생해볼 수 있는, 인간 기억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애석하게도 이 땅의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그 장치가 없다. 나중에 무엇이라도 쓰려면 지금 기록해야 한다. 오늘 하루 했던 일의 순차적인 기록이든,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특히 인상적인 광경의 기록이든.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뇌리에 남는 집단 기억도 물론 있지만, 모든 작가들이 쓰고 싶어 하는 그런 주제도 있겠지만, 고요한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매혹적인 글감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하나의 소재만으로 완성할 수는 없는 법이다.
2. 신혼여행을 떠날 때도 작가의 일은 끝이 없다는 얘기다. 눈을 뜨는 것을 넘어 의식적으로 잘 보아야 하고, 궁금해해야 하고, 글감을 수집해야 한다. “잘 쉬고 와"라는 지인들의 말을 들으며 여행지에서 입을 옷을 짐가방에 넣고 비행기를 탈 텐데, 정작 작가의 눈과 머리는 계속 일하는 중이다. 그 상황에 대한 자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완전히 일 생각과 단절될 수 없는 것은 소설가뿐만은 아닐 것이다. 주어진 과업의 수행 이상을 해야 한다면, 혹은 가까운 미래에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깔끔하게 일과 삶을 분리하기는 어렵다. 일 자체가 삶이 되고, 삶이 일이 되는 것이다.
일이 삶이 되고, 삶이 일이 되는 것. 장인의 탄생이다. 사람들은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브랜드를 좋아한다. 기능적으로 우수해야 함은 물론, 만드는 이의 취향과 철학이 깃든 물건을 선호한다. 일하는 사람의 자세와 정신이 곧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니 브랜드 전문 잡지 <매거진 B>에서 <JOBS>를 통해 직업인의 세계를 다루는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다. 셰프, 에디터, 소설가 편을 구매했고, 먼저 소설가와 에디터 편을 읽었다. 소설가 편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는 요나스 요나손, 정세랑, 마르크 레비, 장강명, (에세이-김기창/ <방콕>을 재미있게 읽었다!), 로셀라, 정지돈, 가와카미 미에코, 김연수다.
3. 소설가인데 쓰는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럼 그걸 왜 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한번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아마 책을 읽으며 초반의 질문을 잊어버리고, 그 대신한 줄로 깔끔하게 요약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하나의 뚜렷한 이유를 대신해 가슴을 채울 것이다. 그것으로 답은 충분할 거라 생각한다. 소설을 읽고 난 다음의 감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소설에 대한 기준은, 좋아하는 소설을 새로 발견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늘 좋은 소설은 먹구름 빛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단일한 어두운 색이 아니라, 구름을 구성하는 여러 알갱이가 모이고 중첩되어 불투명한 상태.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진리 대신 회색지대에 가까운 현실을 되새기게 하는 이야기. 나는 요즘 요약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좋다. 요약 후에 남는 작품의 여운이 토마토 설탕물처럼 달게 느껴진다.
쓰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고 말하는 인터뷰이도 있었고,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몰입해 몸도 마음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인터뷰이도 있었다.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는 같은 직업인으로서는 행운을 빌어주고 싶다. 과정을 즐기며 행복하게, 미끄러지듯 쓰고, 자유롭게 미끄러지길 바란다. 하지만 사실 앉아서 기다리는 독자로서는 작가들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큰 상관이 없다. 소설가의 존재는 늘 작품 뒤에 숨어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그를 까만 글자로 만날 뿐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며 행복했을지, 힘들었을지 늘 따져보지 않는다. 다만 읽기에도 벅찬 작품을 만났을 때는, 부디 작가가 계속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기를 바랄 뿐이다. 노트북에서 손을 내려놓지 않을 정도로.
작가들의 육성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 첫 번째, 내가 몰랐던 작가와 작품들을 건져 올릴 수 있길 기대하는 마음 두 번째. 그래서 읽어보고 싶은 작품을 정리해둔다.
마르크 레비 - <P. S. From Paris>
로셀라 포스토리노 -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가와카미 미에코 -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젖과 알>
밑줄긋기
철학자나 사상가가 "말하자면 이런 거야"라고 직접적이고도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소설가는 "너 잠깐 이리 와봐. 나랑 같이 어디 좀 다녀오지 않을래? 다녀와보면 알게 될 거야"라고 하며 누군가의 팔짱을 끼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조수용 발행인 인터뷰 중)
비극적 결말이 소설의 수준이나 문학적 가치를 높여준다고 믿는 작가가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받으며 살아야 하겠죠. 소설가에겐 작품에서나마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힘 말입니다.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 인터뷰 중)
소설가는 지금 공기 안에서 무언가를 쓰는 사람입니다. 지금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꾸준히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때론 조선시대를,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시대에 관해 쓰더라도 그 안에는 현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소설가 김연수 인터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