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그 34.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정승규 지음 / 반니

by 몬순

소위 '퇴폐미'라고 부르는 것에 마음이 동하지 않은지가 꽤 되었다. 적어도 '아파 보인다'는 말의 동의어인 경우는 확실히 그렇다. 그리고 자기 파괴적 행동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인상도 죄송하지만 제 취향은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소설을 꽤 많이 읽었고 사랑했지만, 청춘의 방황을 몸소 실천하는 주인공이 멍한 눈빛으로 연기 한 줄기 피워 올리는 장면에 설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과도한 흡연으로 제 수명을 깎아먹은 주인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사랑 어쩌고 할 시간에 병원부터 가라, 하면서.


시들함보다는 늘 건강함에 끌렸던 쪽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성격이 밝으면 가볍다는 클리셰에 자주 분노했다. 사연 많고 수심에 젖은 가상의 인물이 '걱정 없고 근심 없이' 밝게 자란 인물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그래서 결국 공감능력에 있어서는 우월하다는 묘사가 참 태평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늘을 가진 사람이 남의 그늘을 발견하는 더 예민한 눈을 가질 수 있겠지만, 꼭 공식처럼 공감과 연대로 나가리라는 법은 없다. 이후의 행동은 개인의 선택이고, 타인이 쉽게 비난할 영역이 아니다. 또 걱정 없고 근심 없이 자란 사람은 또 어디 있을까. 서로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때로는 감싸 안고, 때로는 자신의 상처에 몰두해 남의 아픔을 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불행을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얄팍함을 꿰뚫어 보는 초능력이 생긴 듯 행동하는 가상의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현실에선 저렇게 우울하고 힘없는 태도로 보상을 얻는 경우가 없을 텐데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고. 어른들은 '밝고 건강하고 씩씩하고 구김살 없는' 어린이를 좋아했으니까.


지금도 동의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때는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드라마에 푹 빠졌던 10대에게 세상은 참 모순적인 곳으로 보였다. 일종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큰 사건사고 없이 둥글둥글하게, 무난하게 컸다. 그런 나에게 아무도 '넌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될 수 없어'라거나 'cuz, 넌 깊이가 부족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혼자 '사연 없이 큰 나도 복잡한 사람이에요'라고 세상에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랬던 내가 있었으니 지금의 내가 있겠지만, 이렇게 쓰고 나니 좀. 그때의 나를 만나면 건네주고 싶은 약이 있다. 중2병 증상을 완화하는 약. 책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를 읽고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저자는 인류의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진짜' 약 이야기를 사례 중심으로 풍부하게 전달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약의 종류는 '항바이러스제', '피임약', '탈모 치료제', '위장약', '조현병 치료제', '항우울제',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뇌질환 치료제', '당뇨약', '구충제', '유전자 치료제'다. 당연히 아직 중2병을 치료하는 약은 없다.



- 밑줄긋기


말린 담뱃잎을 말아서 피우는 것을 시가 혹은 여송연이라고 한다. 여송은 필리핀 '루손' 섬의 한자 음역이다. 여송연은 루손섬에서 나는 향기 좋고 독한 엽궐련을 말하는데 나중에는 엽궐련 전체를 뜻하게 되었다. 이후 휴대가 간편하고 피우기 편한 종이에 말아 피우는 궐련이 나왔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담배 대부분은 궐련이다. (p.275)


알츠하이머는 현재 연구가 아주 활발한 분야다. 2019년 기준, 치료제 개발을 위해 세계에서 132개의 후보물질을 대상으로 총 156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마지막 단계인 임상시험 3상에 있는 약만 30개에 달한다.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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