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음식
이 글은 "혼자 사는 사람의 요리"(가제)란 책을 위해 작성한 시작 글이다.
글을 쓰던 시점은 막 운영하던 식당에서 퇴사한 33살의 나였고, 37살인 현재 이 글을 들여다보니 낡은 집에서 홀로 할머니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불안해하는 한 독거 여성의 걱정 일기를 읽고 있는 것 같아 손발이 저절로 오그라들었다.
여전히 혼자 살고 있고 이때의 불안함 혹은 지루함이 생생히 기억나지만, 그 사이 이성에 대한 혹은 둘을 향한 갈망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많은 양의 일과 노동이 자리 잡았다. 외로움을 챙길 겨를 없이 같이 사는 동물 친구의 안위와 운영하는 사업체의 번영을 더 갈망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의 노화를 실감한 후, 진짜 음식을 먹고, 좋은 컨디션으로 조금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자 하면서 사는 데에 전보다 능숙해진 기분이지만, 그것이 실지로 "효율적"인 것인지, 그저 전보다 에너지가 없고, 망각을 조금 더 잘하고 호기심이 사그라드는 노화에서 오는 자포자기인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둘 다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튼, 아래의 글은 언젠가는 또 다른 사고의 촉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대로 두고, 더 적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마무리해 볼 생각이다. (2019년 2월 20일 채워서 쓰는 중이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계속해서 다듬고 길어진다는 점을 어쩌다 오셔서 보는 분들이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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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남의 끼니만 챙기다 스스로의 끼니도 챙겨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도 자연히 늘었다. 봄부터 이야기가 오간 혼자 사는 사람들의 요리 또는 밥에 대한 원고를 내야 할 시기도 다가오고 있다. 늘어난 시간만큼 지나가는 속도도 빨라진 기분이다.
계절은 여름에 들어왔고, 햇빛, 물놀이와 여름밤, 천도복숭아와 수박을 좋아하는 내게 너무 반가운 계절이지만, 어쩐지 올여름은 신나는 가운데 울적한 기분도 함께 있다.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돌기 때문일까. 아니면 메르스 덕분에 외부 행사일이 대폭 줄면서 함께 줄어든 잔고 때문일까, 아니면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이 생겨서일까. 아마도 모두 그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홀로 살아남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탓일 테다. 둘, 셋이 사는 입장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응석 정도로 들릴지 모르지만, 각자가 나름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므로 너무 비난하지는 말자.
"산다"와 "살아남는다"는 다르다. 경제적이든, 심리적으로든 매일 느끼는 위기감과 싸우는 것은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미래의 삶을 걱정하는데, 현재를 얼마나 많이 소모하는지는 다들 알고 있지만, 물려받은 넉넉한 재산이 있지 않은 이상, 숨만 쉬면서 사는 데에도 다달이 들어가는 비용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는데 바쁠 것이다. 그것 때문에 타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다. 양가적인 감정이지만 이렇게 매일 살아내는 데에 혼자보다는 손발이 잘 맞는 동료가 있기를 늘 소망한다. 홀로 꿋꿋이 서고 싶다는 마음과 누군가 함께 있었으면 하는 마음 둘 다를 가진 이에게 번민은 당연한 일이리라.
혼자는 가볍다. 자잘한 걱정거리들은 무시하고 혼자 먹고 살 걱정만 하면 되고, 어떤 것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둘, 셋 이상이 함께 사는 것보다는 간단하다. 회사의 소속에서 벗어난 지금은 더욱 매일을 개인으로 남아있고, 남의 스케줄이 아닌 나의 스케줄 속에서 살고 있어서 벌이는 동료와 함께 벌었던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도, 혼자 끼니를 연달아 때울 때에는 혼자 있는 가벼움에 대해 계속 질문하게 된다. 매 끼니의 지루함과 귀찮음에서 지치지 않고 던지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언제, 누군가와 함께, 매일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완전히 홀로 있는 시간과 자의든 타의든 타인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적절히 배분되어 있으므로 얼른 한 끼 때우고 홀가분한 그 상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냉장고를 열었다. 프라이드치킨, 탕수육으로 고생한 나를 포상했던 과거를 혼내고, 마트나 시장에 진열된 채소처럼 싱싱한 젊음이 지속하기를 바라며 심혈을 기울여 고른 다양한 빛깔의 예쁜 야채들이 추운 데서 시들시들 쭈글거리며 나를 보고 있다. 나도 함께 쭈글탱이가 되는 것 같다. 매주, 아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포화상태가 된 냉장고를 보고는 왠지 부끄럽고, 심경이 복잡해져 제일 큰 용량의 음식쓰레기봉투를 사 와 시들어 빠진 채소를 버리고는 마음을 다잡는다. 앞으로는 딱 먹을 만큼만 조금 사 와서 바로 먹자. "도로아미타불"이란 단어를 이런 데에 쓴다. 치워도 치워도 어지러워지고 먼지가 앉는 집처럼 나의 냉장고도 채우고 버리는 순환을 한다. 지치는 어느 시점에는 냉장고에게, 아니 나에게 반항심이 생겨 냉장고를 맥주와 물, 음료만으로 채워 이른바 생명수 수납장을 만들곤 했다. 이 순간부터 내 밥은 근처 밥집이 담당하게 되고, 가끔 그런 밥이 물릴 때, 혹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배달음식이 나를 구원해준다. 외식할 때는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된 맛집을 검색하며 마음속의 리스트에 적어두었다가 날을 잡고 친구들과 함께 가 분위기와 맛을 한껏 즐기며 미식의 기쁨을 만끽한다. 좋은 레스토랑에 가 예쁜 음식이 내 앞에 놓였을 때의 기분을 모두가 잘 안다.
'아, 뭔가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다. 이나마라도 해야 숨통이 트이지!'
요리를 일로 하는 순간부터 바삐 움직이는 행사일의 특성상, 밥을 직접 해 먹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일할 때나 쉴 때나 늘 식당에서 나와 동료의 끼니를 챙기다 보면, 꼭 누군가의 입에서든 "우리 해 먹어 볼까요?" 소리가 나왔다. 동네에 있는 식당 중 엄선해서 번갈아 먹는대도, 어쩐지 잘 지은 잡곡밥이나 자극적이지 않은 순수한 된장국, 짜거나 달지 않은 나물 반찬 등이 너무나 그리운 순간이 온다. 나는 이 점이 많은 사람들이 "집밥"이란 단어에 매달리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집밥"이란 이름을 단 백반집, "홈쿡"이란 이름을 단 레토르트 음식이 즐비하지만, 각자의 마음속 집밥은 모두 다르며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집밥을 주는 혹은 만드는 대상도 천차만별이다. 내게 남은 집밥의 기억은 무궁무진하다. 생생하기도 하고 아주 깊은 신맛을 지닌 곰삭은 맛이기도 하며, 뜨끈하기도 하고 칼칼하기도 하고 맵쌉하기도 한, 다양한 표현이 가득 담겨있다. 독립을 하고 나서 그 기억을 쫒아 가며 하나씩 시도해보는 집밥은 대부분은 실패 투성인데, 그 이유는 낭만이나 환상, 추억이라는 과거의 감정에 있다기보다 재료에 있다고 본다. 먹어 온 음식은 잘 경작하고 말린 콩을 불려 가마솥에 찌고 다져 만든 메주로 만든 진짜 간장과 된장을 썼고, 방앗간에서 사다 집에서 오랜 시간 조심히 덕은 참깨, 새빨갛고 맛있는 고춧가루를 엿기름과 섞어 만든 고추장, 직접 빻아 만든 김칫소로 담근 파김치, 흙이 잔뜩 붙은 분홍빛 굵은 뿌리가 달린 시금치, 곰소에서 사 온 갖가지 젓갈, 뒷 산에서 캐온 여린 쑥을 쪄 만든 쑥떡과 쑥국, 나물 반찬이 있었다. 언제 곰소에 가고 김칫소를 만들며, 나물을 캐러 다닐까. 그중에 도저히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감자된장국이었다. 달지 않았고, 오히려 살짝 시큼한 맛이 도는 그 적갈색의 된장이 없다면 만들수 없는 된장국이다. 그 정도의 산미와 고소한 맛은 남도의 기후와 오래전부터 입말로 대대로 내려오는 손맛으로 완성된 된장인데, 이 된장은 할머니대에서 끊길 것 같다.
이렇게 양질의 매 끼니를 챙김 받으면서 자랐다니, 혼자가 되었을 때야 그 고마움을 절절히 느낀다. 끼니를 잘 챙기는 일의 정성을 아는 순간부터 집안일 즉 살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을 안다면 어느 누구도 주부를 솥뚜껑 운전사라고 낮춰 부르지 못할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끼니를 챙긴다는 것은 자신을 살리는 것이고, 가족의 끼니를 챙긴다는 것은 나와 타인을 살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끼니를 잘 챙기는 것은 치료이며, 의사들이 존경받는 것처럼 끼니를 잘 챙기는 누군가도 존중과 존경을 받아야한다. 그렇게 중요한 사람을 살리는 일을 어머니와 할머니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묵묵히 해오며 온 나라를 살려왔다.
그런데, 나는 못한다. 하하. 이 정도의 끼니를 챙긴다고 생각하면 목표치가 너무 높아 첫 번째의 시도에도 쉽게 포기하고 만다. 매 끼니, 좋은 재료를 갖춰 먹을 수 없다면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를 몇 가지만 구비해 단순하게 먹는 것부터 시작하기를 권하고 싶다. 처음에 잘 갖춰먹기를 시도하다가 냉장고가 부패 상자가 된 것처럼 잘 시드는 잎채소와 국거리를 잔뜩 사놓고는 일에 지쳐 나가떨어진 몸뚱이에 바깥 음식 연료를 또 채우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비교적 저장기간이 긴 식재료를 선정하고, 매일의 끼니를 진짜 음식재료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 이 책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에는 요리사의 음식이 아닌 자신을 살리는 독거인의 매일의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