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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요리

by 안아라

무국적 요리

2013년 경에 당시의 활동에 대한 소개로 “OOO식당에서 무국적 요리를 하고있다” 라고 적어낸 적이 있는데, 편집자로부터 부정적으로 들리니 다르게 써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것말고는 달리 당시의 내 생업 활동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가 없다고 생각해 그가 반려한 것이 마치 자체를 부정당한 것 같았다. 아마도 의뢰처가 생산지와 생산자가 분명한, 정직한 재료를 소개하는 곳이었기에 ‘국적이 없는’ 혹은 ‘출처가 다양해 국적을 정하기 어려운’, ‘개인의 다양한 경험에서 기원한’이란 표현을 정해진 글자수로 함축하느라 골라 쓴 ‘무국적’이란 단어가 단순히 ‘기원이 없는’, ‘출처가 불분명한’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에 편집자의 노파심이 더해져 반려된 것이기에 후에 그의 응답을 이해하였다.

그런데 요즘엔 정말 많은 곳에서 ‘무국적 요리’란 표현을 쓰고 있어 재밌다. 홈그라운드의 요리도 굳이 표현하자면, ‘무국적 요리’를 여전히 쓸 수 있지만 이제는 저 표현이 다소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굳이 국경에 요리방식과 종류를 봉착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기회로 MMCA에서 “국경없는 식탁” 프로젝트로 요리의 국적에 대해 묻는 작업을 할 때, 한가지 스파이스 음식에 몇 개국의 재료가 들어가는지를 세어본 적이 있는데, 2개국의 지역 명절 음식 레시피를 섞어 만든 한 가지의 스프에 20개국이 넘는 국가의 재료가 들어갔고, 프로그램 신청자들에게 ‘이것이 어느 나라의 음식일까요?’라고 물었을 때는 레시피와 식재료의 국적과 상관없는 나라의 국적이 무수히 등장했다.

프로젝트와 관련한 자료로 특정 조미료의 사용 범위로 새로운 (음식문화)국경을 규정해 본 유네스코의 동아시아 이해 에 관한 교재를 흥미롭게 보았고, 홈그라운드가 만드는 음식은 어떤 식의 음식이냐는 질문에 어느 나라 음식에 영향을 받아 어떤 음식을 만들어내든 그것이 한국에서 구한 재료로 한국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그건 ‘한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답변을 드린 적도 있다. 음식에 국적을 가리는 행위에 대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더많지만, 오래 전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된 ‘무국적’이란 단어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여전히 흥미롭다.

해 온 것을 단어를 빌어 스스로 규정하는 것에 여전히 어색함이 있지만 요리에 쉽게 등장하는 국적(이태리식, 일식, 한식 등)을 떠나 메뉴를 기획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문화예술’이라는 다소 두리뭉실한 영역을 더 빌어오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전시 “미식의 미감”에서 등장한 ‘어반 개스트로노미’의 개념에 더 가까우니 홈그라운드는 보이지 않는 큰 개념의 국경보다 훨씬 작고 작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개인의 영역, 이야기, 활동에 초점이 맞춰진 요리이자 활동이다. 마찬가지로 그런 활동과 유관한 제안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편안하게 협업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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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요청받아 하는 것이지만 핑거푸드나 음식에 국기 깃발 꽂는 것, 참으로 어색하고 안하고 싶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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