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9일 작성
*2018년 6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이뤄진 "국경없는 식탁"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하며 쓴 글 입니다.
음식을 매개로 예술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작가 엘리야 누르비스타(Elia Nurvista)와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다. 유네스코에서 젊은 세대에게 동아시아 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가르치는 교재를 개발하였는데, 그 제목이 ‘공동의 역사(Shared Histories)’이다. 이 교재는 THEME 1 PEOPLE AND PLACES, THEME 2 EARLY CENTRES OF POWER, THEME 3 RICE AND SPICE, THEME 4 SOUTH-EAST ASIA AND THE WORLD 이렇게 4가지의 테마로 작성되었는데, 한 테마 당 2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교재이다. 이 중 3번째 테마 ‘쌀과 향신료’가 작가와 내가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낼 과제이다. 다 읽어보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속독해보니 예상한 대로 쌀과 향신료의 이동, 공유하는 문화권에 관한 이야기이다.
MMCA 교육 프로그램 담당자의 초기 제안은 전시 참여 작가와 함께 각자의 음식 경험으로 그 나라의 레시피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떻냐는 제안이었다. 이에 ‘공동의 역사’라는 제목에 착안하여 ‘공동의 기억’을 떠올리며 진행하기에 좀 더 재밌을 방향을 궁리했다. 인도네시아는 내게 심정적으로 멀고 먼 미지의 나라이고 ‘템페’라는 거의 먹어본 적 없는 콩 가공식품의 원산지 정도로 기억된다. 따라서 국경을 토대로 한 국가의 음식이 아닌 개인과 개인으로서의 작은 경험을 문자를 통해 공유하고,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토대로 상상 속의 음식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앞으로의 진행과 결과에 대한 흥미와 궁금증 역시 생겼다.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원동력은 전적으로 재미인 것이다.
이는 음식을 다루는 작가로서 해외 프로젝트와 결부되면 늘 쉽게 요구되던 “한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엘리야 작가에게 나는 어떤 기억과 음식을 설명해볼까 궁리하던 중, 집 근처 분식집에서 먹는 커리 아닌 ‘카레’를 설명해야겠다며 카레를 먹으며 정했다. 향신료 덩어리 커리가 일본을 통해 한국에 오며 자리 잡았을 때, 커리는 원래의 커리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맛으로 자리했다. ‘ㅇㄸㄱ 바몬드 카레’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닌 향수로 먹는 것일까. 이 분식집의 카레는 어릴 때, 크게 한 솥 끓여놓던 엄마의 카레와 너무 비슷한 맛이다. 엄마의 카레는 ‘순후추’가 듬뿍 들어가 칼칼 얼얼한 지금 이 카레보다 순한 맛이었고, 애매하게 익은 양파와 당근, 육즙이 다 빠진 딱딱한 돼지고기, 가끔 실험적으로 넣는 파인애플 통조림과 사과가 들어있었다. 내 앞에 있는 이 분식집 카레는 잘 익은 백 양파, 당근, 감자, 카레 퓌레와 순후추의 비교적 단순한 조합이다. 이것이 되려 어린 시절의 카레에 대한 기억을 미화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순후추는 또 어떠한가. 순후추는 잘 볶은 통후추를 바로 갈아쓰는 것과 얼마나 다른 맛인가. 이 변화한 맛들은 복합적으로 내게 “한식” 다가온다. 이 음식과 맛을 인도네시아 작가에게 설명하려면 커리의 한국 유입 및 전파 경로를 알아본다든지, 후추가 왜 순후추가 되었는지를 캐봐야 할 것이다. 미묘하거나 확연히 다른, 그렇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맛의 간극을 글로 설명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분명 미지의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이 문구를 생각할 것이다.
“HOW LITTLE YOU KNOW ABOUT ME” (HOW LITTLE I KNOW ABOUT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