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오고 나서 아쉬운 점이 한 가지가 있었다.
베라의 산책 친구가 사라졌다는 것. 반년 정도 아파트와 뒷산을 다니며 마음이 맞는 개 친구를 만나기를 기다렸다. 베라도 나도 개와 사람의 낯을 가리기에 마음속으로 바라는 조건이 있었다. 이전 동네에서 어울리던 친구들과 꼭 같은 것이었다.
-콜링이 가능해 인적 드문 곳에서 오프리쉬로 함께 놀 수 있는, 베라와 비슷한 크기의 개
-차분하고 영리한 개와 사람
-타인을 적당히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
첫 번째 조건은 베라가 함께 잘 뛰놀던 친구들의 성향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내가 편안해하는 개와 사람의 성향이다. 아파트라는 주거지는 소음과 배변 문제로 주민끼리 서로 더 조심하는 것 같았다. 단지 내에서 산책을 하며 다양한 개를 만났지만, 주인들은 쉽사리 개들을 탐색하고 놀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날 때면 주로 집 뒷산으로 향했다. 가기 쉽고, 산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자연스럽고, 훌륭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다. 몇 개월동안 여러 시간대에 재차 방문해 보니, 오후 1~4시 정도까지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그래봤자 넓은 공원에 10~15명 정도의 사람이 보이는 한적한 공원이었다. 만나는 사람은 점심을 먹고 개를 산책시키거나, 건강을 위해 맨발로 땅을 밟고 다니는 운동을 하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간간히 산에 사는 고양이들의 밥을 챙기는 분을 정자 근방에서 만났다. 정자나 계단 아래에 고양이 급식소가 있기 때문이다. 개와 나는 한적한 길에서 리쉬를 푼 채로 산길을 오르내렸다. 그러다 개가 흥이 오르면, 좁은 산길을 있는 힘 껏 뛰어 나갔다 돌아온다. 그 광경을 보면 나까지 덩달아 신이 난다. 눈 쌓인 언덕을 박스를 깔고 신나게 오르내리는 행복한 어린이의 모습과 꼭 같다. 그런 모습은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기분이 전염되기 마련이다. 누군가 잘 쓸어놓은 산 길을 개와 걷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혹시나 사람이 다니는 길을 개가 다닌다고 싫어할까 봐 맞은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길 옆에 서 있거나 개를 들어 올렸다. 산은 사람만의 것이 아닌데, 그간 모든 것이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를 만나기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개를 예뻐하거나 혹은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한결 마음이 놓였다. 멀리서 "애기야~~~~ 애기야~" 소리가 들린다. 산책에 노련한 우리는 누군가 개를 풀어주고, 돌아오지 않자 찾는 소리라고 쉽게 짐작했다. 뒤이어 다급한 삑!! 삑!! 소리가 난다. 장난감 소리니 확실하다. 다음에는 "애기야, 간식~! 빨리 와!" 소리도 들린다. 나와 베라는 "애기"라는 개의 존재와 크기를 확인하고자 주위를 둘러봤다. 딱 베라만 한 크기의 까만 개였다. 패딩을 입은 까만 개가 산비탈에서 한달음에 베라에게 달려왔다. 개의 성향을 알지 못해 베라에게 리쉬를 채우고 가까이 붙게 했다. 까만 개는 바로 코앞까지 달려오지는 않았다. 가까워지면서 속도를 줄이더니, 낑낑거리고 꼬리를 흔들며 천천히 다가왔다. 조심스러운 베라가 까만 개의 얼굴 냄새를 맡으려고 코를 킁킁거리니, 순순히 얼굴을 내어준다. 뒤이어 엉덩이 냄새도 맡게 한다.
"아~ 애기 친구를 만났구나."
멀리서 애타게 찾던 주인분이 나타났다.
"처음 보는 친구네~"
까만 개의 주인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발치에 서 있으며 애기와 베라가 서로를 탐색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까만 개가 주인 곁으로 갔다. 베라는 호기심에 그들을 따라 잠시 걸었다. 가는 방향이 달랐던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 그 후로 공원을 방문할 때면 애기와 주인을 산책길에서 종종 마주쳤다. 늘 "애기야~~~"라고 부르는 소리부터 들린다. 저 멀리에서 애기가 베라를 보고 한달음에 내려오는데, 주인은 애기보다 베라를 먼저 보진 못한 것이다. 한두 번 볼 때는 데면데면하던 베라도 애기를 아는 개로 받아들이자, 꼬리를 흔들며 뛰어간다. 애기 주인과 나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 모습을 본다. 각자 개만 보며 아는 듯, 모르는 듯한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한동안 같이 걸었다. 그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산책길인 흙길을 빗자루로 말끔히 치웠는데, 매일의 할 일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많이 걷고 쓸며 반질반질해진 흙길을 내가 트레킹화로 흙을 부수며 걷는 것이 살짝 미안해졌다.
"젊을 때부터 맨발 하면 좋대요. 날 좀 풀리면 맨발 해봐요."
그가 말했다.
"여기 맨 발로 걸어 다니는 분들이 많아서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건강에 좋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는 내 모부보다는 한세대 아래 정도의 연배로 보였다. 말투로 보아 서울에서 나고 자랐을 법한 사람이었다. 흙길을 걷는 동안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과 아는 사이처럼 반갑게 인사했다. 우연히 만나 함께 걷는 횟수가 늘어나자, 그가 내게 하나씩 물어보았다.
"가까이에서 와요?"
"네"
"어디 살아요?"
"요 앞 아파트요."
"저도 거기 살아요. 저 위쪽. 저는 맨날 이 시간 정도에 나와서 2~3시간 산책해요. 얘가 친구 만나서 신나게 놀고 이 정도는 걸어야 집에서 얌전히 쉬고 푹 자거든요."
"저도 시간 날 때마다 오래 산책시키려고 해요. 산에 오면 표정이 달라요. 저 보세요."
"그렇죠, 쟤네도 이렇게 뛰어다녀야 살 맛이 나지, 나도 건강해지고요."
그는 한 번에 여러 개를 물어보지 않고, 마주칠 때마다 하나씩 물어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날도 있었다. 마주쳐서 걸은 지 5번 정도 되자, 그가 내게 '오늘은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볼 것 같은데...'라고 예감하기도 했다. 같이 걸으며, 공원에 오는 사람 다수가 내가 사는 큰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가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알았다. 그럼 개들과 나는 뒤에서 조용히 경치를 감상하며 서 있는다. 베라는 왜 더 안 걷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같이 서 있고, 애기는 늘 있던 일처럼 근처 양지바른 곳에 가서 잠시 볕을 쬐며 쉬었다. 덕분에 멀찍이서만 보던 동네의 개와 주인들과 나 역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산책하게 되었다. 그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며 서로 누구와 살고, 무엇을 하며, 언제부터 맨발로 산을 오르게 되었는지 등을 알게 되었다. 나누는 이야기 사이사이 그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안하고, 그만큼 평온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그가 가진 세세한 사정을 아는 것보다 그가 누구보다 느긋하게 매일의 루틴으로서 맨발 걷기를 하며, 함께 걷는 상대를 지나치게 궁금해하지 않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의 개, 애기도 베라를 만나면 무척 반기지만, 이내 자신의 산길 탐험을 느긋히 즐기는 개여서 주인과 똑 닮아 보였다. 자연스레 베라와 애기는 같이 뛰노는 친구가 되었고, 내겐 이 시간에 가면 늘 계시는 아주머니 친구가 생겨 이제는 공원에 들어설 때마다 내가 먼저 "애기야~~~"하고 개와 아주머니를 부른다. 우리는 아직 서로의 이름을 모르고, 오직 개의 이름만 부른다.
좋은 것은 자주 표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빠르게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표현을 하는 사람이 늘었는지 모른다. 나는 기쁨과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표현에는 왠지 모두 응답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마저 생겼다.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응답을 자주 했지만, 어느새 피로해지고 말았다. 어쩌면, 많은 사람을 동시에 만나야 하는 직업적인 상황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쉽게 표현하고, 가까워지는 것에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언젠가부터는 순간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오래 경험하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느끼는 끈끈한 감정들을 가만히 가슴속에 두고 생각하다 글로 쓰고 싶었다. 자연히 말이 줄었다. 그러던 참에 무언가를 주지 않고, 만나자고도, 연락처를 달라고도 하지 않는 그이를 만나 모처럼 편안했다. 산에 가면 만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만나면 기쁘고, 못 만나면 천천히 베라와 나의 여유로운 산책을 하면 되었다. 산길에서 신나게 뛰는 개들의 모습을 보는 동안 아주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참, 이렇게 뛰고 노는 모습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그렇죠. 저도 그게 제일 기뻐요."
개와 내가 바라던 그런 친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