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안아라 사이클 만들기
글쓰기의 주제를 받아 들고, '신세계'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새로운 세계. 오늘은 어제와 같을 수 있지만 분명히 다른 새로운 날이다. 어제 죽은 세포들이 떨어져 나가고, 새로 돋은 세포로 채워지는 매일 오늘의 나. 새로운 세계는 바로 내게 매일 일어나는 일임을 코비드-19가 한창인 지난여름 지연언니, 베라와 이른 아침 함께 걸으며 천천히 깨달아갔다.
38년 가까이를 밤에 더 활발한, 밤 인간으로 살았다. 신생아일 때도 밤에 잠이 없는 나로 인해 어머니, 아버지가 몹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슬쩍 들은 적이 있다. 고운 말로 그렇지, 그때의 부모님을 지금의 육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며 상상하자면, 매일 순환하는 일과를 완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육아로 인한 수면 부족으로 돌아버릴 지경이었을 테다. 여하튼, '나는 그런 태생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어'라는 적당한 합리화를 하며, 매일 밤 채워지는 생산력을 이용해, 지금은 들여다보지 못하는 간지러운 글을 쓰고, 당시 골몰했던 만화나 그림을 그리고, 앞으로의 종잡을 수 없는 인생을 상상도 못하며 컸다.
그렇다고, 올빼미형 생활이 틀렸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밤은 밤 나름의 에너지가 있고, 나는 그 에너지를 쓰는데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무너진 체력을 돌리고자,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좀 더 나은 삶, 즉 긍정적인 사고에서 비롯하는 생산력이 찬 상태에 대한 열망이 극에 달하게 된 것은 위기감에서였다. 지난 2년의 코비드-19 상태에서 맞본 무기력함, 막막함에 눌려 잠을 이루지 못했고, 눈이 뻑뻑해질 때까지 귀엽거나 애처로운 동물 사진만 연신 훑어보다 겨우 잠들고, 느지막이 눈을 떠 한동안 가만히 누워있다 해가 중천일 쯤 채비를 하고, 베라(반려견)와 출근을 하며, '하기 싫다', '흥미 없다'를 되뇌는 나 자신에 대한 위기감이었다. 중년을 바라보고 무겁게 다가오는 마이너스의 감정이 점점 불어나자 곰곰이 '왜 이렇게 된 것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이유는 '잠들지 않은 밤'에 있었다.
마침, 보게 된 "하루키 루틴"이란 단어와 동영상은, 괴로운 밤 생활을 청산하기에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아주 일찍(하루키 씨는 4시 30분 기상이지만, 안아라는 조금 봐줘서 5시 30분~6시) 일어나 하루의 일을 시작하고, 가급적 10시 이전에 잠드는 루틴이다. 해야 할 일은 가급적 오후 4, 5시면 끝내는 것이 좋지만, 사업장을 8시까지는 운영해야 하기에, 9시 퇴근하면, 베라와 잠시 산책하고, 씻고 바로 침대로 들어가는 그런 "새벽잠 없는 어르신" 패턴 말이다. 이 루틴을 도전해볼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사람은 바로 함께 하기로 한 "지연언니"이고, 당시 반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베라" 덕분이다. 지난 일기를 돌아보니, 우리의 함께 걷기는 2021년 8월 10일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 반려견 이름 베라를 붙여 #베라클모닝 이라 부르기도 하고, 등산에 가까운 산책을 빗대어 '베라 사랑 산악회'라고 부르기도 했다.
처음 한 달은 거의 울면서, 서로의 모닝콜 문자를 확인하며 눈을 떴다. 글을 쓰거나, 글을 읽다, 7시~7시 30분쯤 되면, 셋의 동네 산책로 탐험이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이어졌다. 집 주위로 대략 3개의 이름 붙은 산(남산, 매봉산, 응봉산)이 있는 호사를 이사온지 2년 만에 누리게 되었다. 시작하게 된 한 여름 맞이한 이른 아침의 상쾌함은 서울에서 도망쳐 나가서나 잠깐 맛보는 것이었는데, 매일 아침, 대지가 데워지기 전의 서늘함을 마시는 그 기분을 아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우리를 감싸는 다양한 빛깔과 냄새, 온도와 습도가 형용할 수 없이 감격스럽게 다가왔다. 산책은 여름부터 가을, 겨울, 다음 해 봄까지 잠시 쉬었다 시작했다를 반복하며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밤 중의 우울감과 무기력함은 쏟아지는 잠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어떤 절박한 마음이 차츰 체력으로 돌아오고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으로 바뀌는 것은 천천히 그리고 순식간이었다. 그러면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환경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다시금 알아갔다. 모든 걸 새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이른 아침 만나는 동행의 서글서글한 웃음기 띤 얼굴과 깨발랄하게 뛰는 개의 모습을 보며, 눈앞에 아름다운 광경이 매일 오는데, 낮과 이른 저녁 동안에 일어나는 어떤 복잡한 일이든 그때를 위해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자명한 삶의 이치를 배운 것이다.
38년, 밤 인간이 아침 인간, 거기다 더해 아침 찬양자로 바뀌는 것이 손바닥 뒤집듯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본 주위 사람들도 조금은 영향을 받아 함께 해볼까 하는 용기를 내었다. 우리가 아무리 일찍 일어나 작은 산 정상에 가도 산등성이 체력 단련장에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이른 아침에 나무에 등을 두들기며 운동을 하고, 매일을 살아내는지에 대해 왠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것을 기약하며 헤어지고 돌아와 아침을 먹고 출근 준비를 했다. 환희든 슬픔이든 기복이 많은 삶의 어느 과정을 통과하고, 조화와 균형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날로 진입했다. 무겁게 다가오는 것들의 가벼운 진실을 마주하고, 슥슥 넘어 다니는 힘을 길러준 아침 산책.
무언가가 이렇게 멋지다는 것을 굳이 증명하고 설명해내지 않아도 되는 삶, 일부러 낸 구멍 사이사이로 들어차는 상쾌한 바람처럼, 스멀스멀 몰려오는 많은 물음들에 전부 응답하지 않고, 다 해내지 않아도 되는 삶, 아침에는 눈을 떠 작고 따뜻하게 숨 쉬는 존재를 쓰다듬으며 안도하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잠에서 깨고, 정신이 드는 찬 바람에 실린 냄새를 맡으며 산책을 하고, 오늘의 할 일이 있는 작업장에 나가 차분히 준비해 제시간에 일을 끝내고, 깨끗이 정리하고 돌아와 씻고, 따뜻한 침구에 들어가 책과 여러 뉴스에 귀 기울이며 하루를 마감하는 단순한 삶이 여기 있다. 새로운 세계는 늘 익숙하게 같이 있었다. 그저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