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인기 스트리머가 공포 게임을 하며 귀신이 튀어나오는 장면에서 비명을 지른다. 화면을 보던 우리는 깔깔 웃는다. “진짜 깜놀했네 ㅋㅋ” 댓글창은 난리다.
그런데, 같은 밤 다른 채널에서는 사고 뉴스가 흐른다. 피해자의 아픔을 전하는 장면에선 묵직한 마음과 함께 눈물이 고인다. 똑같이 '고통'을 목격한 상황인데 왜 이렇게 다른 감정을 느끼는 걸까?
"왜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 어떤 땐 웃고, 어떤 땐 울까?"
이 흥미로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늘은 심리학과 뇌과학의 시선으로 인간 감정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독일어가 있다.
직역하면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감정’이다. 언뜻 듣기엔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감정이다.
예를 들어, 늘 잘난 척하던 친구가 발표 시간에 말문이 막히거나, 자만하던 경쟁자가 실수를 할 때 우리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이때 우리 뇌는 도파민을 분비한다.
도파민은 '기쁨'이나 '보상'을 느낄 때 나오는 신경전달물질로, 인간이 동기와 흥미를 느끼는 핵심 요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자신만만하게 “이건 껌이죠!”라고 외친 직후 굴욕을 당할 때, 터지는 관객의 폭소는 이 도파민 시스템의 작동 결과다.
이러한 감정은 단순한 악의라기보단, 긴장과 경쟁 속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감정 해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의 실패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위로받는다.
즉, 누군가의 ‘불편한 상황’이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안도감을 주는 순간, 도파민은 “이건 즐거운 상황이다”라고 우리 뇌를 속인다.
반대로, 드라마의 감동적인 장면이나 사고 뉴스에서 누군가의 눈물이 비칠 때 우리는 울컥한다. 이 감정은 공감 능력 덕분이다.
바로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눈물 흘릴 때, 어느새 우리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것은 '공감'이라는 복잡한 뇌의 기능 덕분이다.
이때 작동하는 것이 바로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다.
거울 뉴런은 타인의 감정이나 행동을 관찰할 때,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뇌가 반응하도록 하는 세포다.
이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슬픔, 고통, 기쁨에 이입할 수 있다.
한 아이가 울고 있는 영상을 볼 때 마음이 아픈 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 뇌가 실제로 ‘고통’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이 반응이 현실이든 드라마와 같은 가상이든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뇌는 그 상황이 가짜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감정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반응한다.
감정의 반응 차이는 결국 ‘심리적 거리감’과 뇌 회로의 선택적 작동에 있다.
공포게임이나 예능 같은 가상 콘텐츠는 뇌가 “이건 안전한 상황이야”라고 판단한다. 이때 고통이나 놀람은 도파민 시스템을 통해 ‘웃음’으로 변환된다.
반면, 뉴스 속 현실 고통은 도파민이 아닌 공감 회로를 자극하며, 눈물이나 불쾌함이라는 반응으로 이어진다.
특히 그 고통이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질수록 감정 반응은 더욱 강해진다.
여기서 또 다른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현실임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누군가를 괴롭히며 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대체 왜 그런 걸까?"
이건 단순히 ‘심리적 거리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경우는 뇌의 공감 회로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거나, 성격적 특성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심리학에선 이를 다크 트라이어드(Dark Triad) 성향이라고 부른다. 세 가지 유형이 포함된다: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anism): 타인을 조종하거나 이용하려는 성향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기애와 우월감이 강한 성격
사이코패시(Psychopathy): 감정적 공감 결여, 충동성과 죄책감 없음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불편함’으로 느끼기보단 도파민적 쾌감의 자극 요소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즉, 도파민 시스템이 공감 시스템을 압도해버리는 경우다.
심리적 거리감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방향을 크게 좌우한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현실 속 고통에도 공감하지 않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는 도파민 보상 시스템, 공감 능력의 차이, 그리고 성격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보고 웃는다고 해서 꼭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다.
또, 눈물 흘린다고 해서 특별히 감성적인 것도 아니다. 인간은 복잡한 뇌의 구조와 사회적 본능 속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반응하며 살아간다.
때론 웃고, 때론 울고, 때론 모른 척하며 사는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우리 뇌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의 감정은 복잡한 뇌 구조와 사회적 환경, 성격적 특성이 서로 얽혀 만들어지는 반응이다.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와 성찰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