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 영화관, 그 두번째
매일 작업하지 않고 피아노나 노래를 배울 수 있습니까? 어쩌다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 레프 톨스토이
안녕하세요. 아락입니다.
영화 <킹스맨>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남들과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과거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자 결심합니다. 무심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자세를 고쳐 앉고, 자격증 취득을 위해 자투리 시간에 공부를 하기도 하며, 사랑을 더 자주 표현하려고 노력도 합니다. 그런데 어제의 자신과 달라지는 것은 무척 어렵다고 이미 무수히 경험했던 걸까요? “사람은 죽어도 안 변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뇌과학자 정재승은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익숙한 선택을 하면서 에너지를 적게 쓰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인간은 변하기 어려운 존재다’라고, 매년 새해 결심에 실패하는 우리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변한다’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일상 속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는 게 좋다 (머멘토 모리) 고 덧붙였죠.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1년밖에 남은 것은 아니었기에 자격증 취득, 외국어 공부, 운동 배우기, 책 읽기 등의 신년 계획을 지키지 못한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닌 뇌의 탓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합니다. 이런저런 배움으로 인해 삶의 반경을 조금씩 넓히고, 세상을 즐기고, 예측하길 원합니다.
<도서관 옆 영화관>은 두 번째로 ‘배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면서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공부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하는 말에는 왠지 반감이 생깁니다. 공부와 배움은 동일한 말인가요? 공부라고 하면 책상 앞에 앉아서 외우고 익히고 종이와 연필로 씨름하는 것이, 배움이라고 하면 지식, 지혜, 운동, 기술, 태도 등 새로 습득하고 익히는 모든 것이 떠오릅니다. 공부는 괴롭지만 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배움은 왜인지 작은 설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부만큼 배움도 괴롭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져 주는 법을 익히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해야 할 적당한 말을 배우는 것도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지난한 반복 끝에 아이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단어를 뱉었을 때, 처음 해외여행을 갔는데 영어가 통했을 때,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을 때, 무수히 연습한 대로 공연을 끝마쳤을 때의 그 짜릿함을 기억하시나요? 혹은 어떤 단어를 몰라 망신을 당하거나, 한 문제 때문에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그 단어와 문제는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강력한 사건은 우리 인생에 짙은 흔적을 남깁니다. 본인이 겪은 일뿐만 아니라 친구나 가족이 겪은 일이 반면교사나 타산지석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배움으로부터 파생되는 기쁨과 희열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희열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적지에 이르면 그곳은 곧 새로운 출발점이 되죠. 그 출발점에서부터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들이 펼쳐집니다. 그렇게 희열은 이어집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배움이 있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그림 일기책과,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에서 말하고 있는 배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BOOK -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2019 / 순천 할머니 20명 / 영화로 제작됨. 전시회 다수 개최)
* MOVIE - 죽은 시인의 사회 (1989 / 아카데미 각본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등 다수 수상)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는 올해 2월 출간된 책으로, ‘칠곡 가시나들’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 책은 배움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굉장히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가난 때문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게 한이었던 60~80대 할머니들이 3년 동안 순천의 평생학습관에서 한글과 그림을 배웠고, 그 수업내용을 엮어낸 책입니다. 할머니들이 구사하는 문장은 미사여구 없이 짤막하지만, 그 어떤 위대한 문장들보다도 진솔하고 강력한 울림을 줍니다.
나는 공부가 하고 싶었습니다. 밥할 때도 부지깽이를 시커멓게 태워서 내 이름하고 1부터 100까지를 썼습니다. 내가 아는 글자는 모두 그것뿐이었습니다. – 라양임
모임에서 관광을 갔습니다. 그런데 가이드가 이름과 주소를 쓰라고 했습니다.
나는 글을 몰라 다른 사람보고 써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창피해서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우리 모임에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초등학교도 못 나와 늘 기가 죽어 남 뒤에 숨었습니다. 남편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냐고 했습니다. 나는 너무 자존심이 상해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 김정자
그동안 글을 몰라서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고도 자기 차례가 되었는지도 놓치기 일쑤였고, 면사무소에서 용지가 날아와도 무슨 내용인지 몰라서 답답했다고 이야기하는 할머니들. 종이만 봐도 겁이 나서 눈이 침침해서 안 보인다고 거짓말을 했을 때 부끄러워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글을 배우면서부터는 사람이 달라졌다고 그들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간판이나 버스 시간표 보기, 은행에서 통장 개설하기 등 꿈만 꾸던 일들을 드디어 할 수 있고, 자식과 손주 손녀들이 칭찬해줘서 보약을 먹은 것처럼 기운이 난다고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글을 배우기 전까지 이분들이 아무것도 겪지 못하거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책의 제목 그대로 단지 글을 몰랐을 뿐,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많은 것들이 달랐던 젊은 시절에 삶이 던지는 무수한 시련들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내가 열한 살 때 피난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피난길에서 동생이 죽었습니다.
죽은 동생을 어디다가 두고 갈 수가 없어서 하루 종일 업고 다녔습니다. – 김영분
반란사건이 나서 끌려갔던 오빠가 밤길을 걸어 논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오빠를 보릿대 속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자수를 시키려고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인민군으로 갔다 왔다고 오해를 하고 모두 싸잡아 총살을 시켰습니다. 오빠는 그때 혼인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 안안심
그들은 한글을 배우고 나서 비로소 이런 이야기들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순천 시립도서관에서는 할머니들에게 그림도 배워보시라고 했는데요. 그림 선생님으로 온 김중석 작가는 첫 수업 때 사물을 먼저 그려보라며 가방 속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 보라고 했지만, 할머니들은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 그려본 적이 없다” 며 멀뚱멀뚱 있었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동그라미, 네모 등 도형 그리기부터 해 보자 했고, 처음에는 “동글맹이가 안 그려져. 안 막아져” 라던 할머니들이 그림을 배우면서 나무, 꽃 새, 손녀, 가족들의 얼굴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김 작가는 할머니들의 그림을 자신의 SNS에 올렸는데 반응이 뜨거웠고, 이 반응이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해 서울에서 전시회를 기획합니다. 할머니들은 몇 달 후 서울 서촌에서 ‘그려보니 솔찬히 좋구만’ 이라는 인생 첫 전시회를 열게 됩니다. 전시는 매일같이 긴 줄 행렬이었고, 열 군데의 출판사에서는 할머니들 이야기를 출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이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전국 책방뿐만 아니라 뉴욕 등 미국 갤러리 여러 곳에서 성공적으로 전시를 진행 중입니다. ‘성공한 인생 같다’며 기뻐하는 할머니들의 표정에는 뿌듯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언어는 매우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입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할머니들의 간절함은 우리에게 한글이 익숙한 만큼이나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럼 언어라는 도구가 아닌 롤모델 이라던가 가치관 같은 삶의 방향과 관계된 것을 배우는 일은 어떨까요? 특히 공부가 전부로 여겨지며 다른 성취나 놀이에서 멀찌감치 놓이는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님의 말은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저도 중학교 때 과학선생님이 교무실 책상 위의 달력을 찢어서 엽서처럼 적어주신 말을 토씨 하나까지 기억합니다. ‘무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있다면 반드시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거란다’ 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