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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락 Apr 06. 2020

'배움'에 대하여 (2)

도서관 옆 영화관, 그 두번 째


‘도서관 옆 영화관’은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관련된 책과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결이 비슷해서 함께 선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차이점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처음 혹은 다시 책/영화를 보실 분들을 염려해두고, 내용의 전체를 설명하는 게 아닌 일부 주요한 구절들로 책과 영화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1편에서부터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arak/10





롤모델/가치관에 대한 영화로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미 굉장히 유명해서 굳이 소개를 할 필요가 없지만 저는 최근에 봤을 때, 십몇 년 전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서 이 칼럼을 계기로 다시 보시기를 추천드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자녀와 함께 보시게 된다면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세대에 따라 다른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을 더욱 느끼실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


영화는 간략하게 말하면 부모의 기대와 정해진 학교의 룰에 맞춰 사는 게 익숙한 명문대 학생들과 새로 부임한 영어 교사 키팅 선생님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를 안 봤어도 아는 대사 있으시죠. ‘Carpe Diem (카르페디엠)’. 오늘을 살아라 (seize the day)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쯤, 자신의 좌우명으로 지정했던 적이 있는 문장일 겁니다.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에서는 카르페디엠 말고도 멋진 문구와 장면이 많았습니다.



Gather your rosebuds while you may.
할 수 있을 때 꽃봉오리를 따 모아라
Old time is still a flying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tomorrow will be dying. 
늙음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니 오늘 미소 짓고 있는 꽃들도 내일이면 시든다



영화 속 젊은이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와 자신감, 그리고 딱 그만큼의 불안과 흔들림을 보면서 모두 저마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규율을 어기는 학생들에게 분노하는 선생과,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강압적인 언사를 하는 부모님, 아이들을 깨우기만 하고 지켜주지 못한 키팅 선생 또한 불쌍하고 불안해 보입니다. 부모와 어른들이 점점 가여워진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고 하죠. 마치 어린 시절에는 둘리가 최고이고 고길동은 소리 지르며 하지 말라는 게 많은 지루한 어른이었는데, 이제 보니 고길동은 웬 통제불능 둘리 때문에 인생이 필요 이상으로 고달파진 어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말이죠. 


이전에는 답답한 학교 규율과 소리치는 선생님, 자식을 멋대로 조정하려는 부모들을 간단히 ‘틀린 것’으로 규정하고, 젊고 어리고 순수하며 여린 학생들을 간단히 ‘옳은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엔 뒷면이 있듯, 규율을 어기는 학생들이 얼마나 위태로워 보이는지, 그들은 왜 젊음을 소중히 하지 않는지, 왜 건강을 낭비하는지,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얼마나 아까운 일인지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패기로운 젊음에 마음 졸일 때가 많았습니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가 했던 말이 계속 생각나기도 했죠. ‘청춘은 젊은이들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한국어판 제목은 사실 영어의 오역인데요. ‘Dead Poets Society’는 영화에서 이야기하듯 학생들이 작고한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는 동아리 모임이라는 의미여서, ‘죽은 시인의 클럽 (동아리)’가 더 정확한 의미입니다. 하지만 오역이 주는 낡고 깊은 울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고 합니다. 아마 그 때문에 계속 제목이 개정되지 않고 있는 거라고 짐작됩니다. 영화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던지, 보통은 책이 출간되어 인기를 끌면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 제작을 하는데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영화가 먼저 제작되었고 그 이후 책이 영화를 바탕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게다가 보통 이런 상황엔 원작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평을 받기 쉽지만 이 책과 영화는 각자의 분야에서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습니다. 키팅 선생님은 늘 시를 가르치면서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사랑, 낭만은 삶의 목적인 거야.



그리고 학생들은 키팅 선생님의 말을 통해 삶을 배우고, 자신의 삶으로 시와 아름다움과 사랑과 낭만을 증명하려 합니다. 순천의 할머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새로 배워 써 내려가는 글은, 아름다울 때도 아름답지 않을 때도 있는 삶 그 자체입니다. 그들의 과거는 눈물과 상처로 많이 얼룩져 있지만 90살이 가까워지는 나이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른 것을 시도하며 삶의 반경을 넓혀가는 할머니들은, 아름답지 않은 일을 겪어도 시적인 삶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순천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는 게 꿈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꿈은 한글을 다 배웠을 때 끝이 나는 게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화와 교감하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삶은 배움을 통해서 달라집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 길 뿐인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뭔가를 배우기에 아무래도 늦은 나이라고 아직 생각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미국의 모지스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75세에 관절염으로 자수 놓기가 어려워지자 소일거리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리면서 익혀 나갔습니다. 그녀는 5년 만인 80세에 첫 개인전을 열었고, 88세에는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습니다. 93세에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고, 100세에는 생일이 ‘모리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10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600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100세 이후에 그린 그림이 250점이 넘습니다. 미국은 그녀를 진정한 국민 화가로 기억합니다. 모지스 할머니가 말년에 남기신 말을 마지막으로 전해 드리며 이번 칼럼을 마치겠습니다. 



이제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나의 경우에 일흔 살이 넘어 선택한 새로운 삶이
그 후 30년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줬습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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