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락 Mar 23. 2020

'산다는 것'에 대하여 (1)

도서관 옆 영화관, 그 첫번째


 “더 이상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 않을 때가 곧 청춘이 끝나는 시점” – 쇼펜하우어

 


안녕하세요. ‘도서관 옆 영화관’은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관련된 책과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결이 비슷해서 함께 선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차이점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처음 혹은 다시 책/영화를 보실 분들을 염려해두고, 내용의 전체를 설명하는 게 아닌 일부 주요한 구절들로 책과 영화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 첫번째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큰 주제이기는 합니다만, 거창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산다는 건 레고 조립과 닮아있습니다. 매순간 내리는 하나의 선택들이 쌓여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때문이죠. 때로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보다도, 오늘 어떤 태도로 행동했는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죽어서 신 앞에 가면 이승에서의 일생 중 하루를 무작위로 골라 그 날의 행동들로 나의 전체 인생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운이 좋으면 계획도 다 지키고, 선행도 베풀고, 착한 마음으로 남을 도왔던 날로 평가되겠지만, 운이 나쁘다면 유독 최악이었던 하루, 연달아 일이 안 풀리는 바람에 종일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던 하루가 걸릴 수도 있겠죠. 의미 있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무작위로 하루를 골라서 전체를 평가하느냐고 억울해하는 망자에게 신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비록 그 하루는 운이 나빠 제대로 풀리는 게 없었다고 해도, 너는 그 하루에 닥친 상황에 대처하던 태도들로 인생 전체를 살아왔을 것이다. 비록 단 하루로는 너가 한 일의 전부를 알지 못해도, 너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모든 걸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1日1生 이겠죠. 이처럼 오늘 하루의 모습은 나의 삶의 모습을 닮아있습니다. 사실 삶을 다룬 책/영화는 이 세상의 모든 책/영화 입니다만, 그 중에서 오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을 골라봤습니다.



MOVIE - 보이후드 (2014 /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 골든글로브 감독상 등 다수 수상)
BOOK - 나빌레라 (2016 / 다음 웹툰 원작 / 최종훈 / 위즈덤하우스 출판사 / 곧 영화화 예정 )

  




 

영화 <보이후드>는 우리의 실제 삶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흔한 영화처럼 누군가 죽거나 납치되는 등의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습니다. 이 영화는 찍는 데만 12년이 걸렸는데요. 최대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오고 싶었던 감독은 실제로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담기 위해 12년동안 1년에 1회씩 촬영을 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6살의 아들이 있는 20대 부모가 영화 후반에는 18살의 자식을 독립시키는 40대의 부모가 되어있죠. 때문에 영화 속 캐릭터들이 자라고 늙어갈 때, 실제 배우들의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고, 주름살이 늘고, 체형이 변해갑니다. 보통의 영화는 필요한 장면이 있으면 그 부분만 다시 찍는다고 하는데, 이 영화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로 영화를 구성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평범하지만 본인에게는 심각한) 사건이 닥칠 때 복선이나 힌트도 없습니다. 우리 삶에 사건이 닥치는 일과 동일하게 말이죠.

 
 
해리포터에 열광하고, 이사를 싫어하고, 세상에 마법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연애를 하고, 비틀즈를 듣고, 부모님에 거짓말을 하는 등 그 나이 때 응당하는 생각과 행동들을 하며 아이는 성장합니다. 이 영화가 놓치지 않는 것은 부모의 삶입니다. 일찍이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교수가 되기로 결정한 엄마. 때문에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합니다. 자꾸 자식보다 남에게 좋은 어른이 되죠. 부모와의 애착에 대한 강의를 하는 엄마를 아이가 교실 뒤편에서 담담하게 쳐다볼 뿐입니다. 이혼 후에도 정기적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빠는 몇 년이 흐르니 비로서 너의 엄마가 원하던 대로 철이 들었다고, 사람 관계는 다 타이밍 때문이라고, 첫 이별을 경험한 아들을 위로합니다. 아이도 부모도 삶의 의미를 묻고 배워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라는 시선이 이 영화에는 자주 등장하죠.
 


(사실은 많이 일어나지만 자신에겐 처음인)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기위해 선택들을 내리고, 늘 뜻대로 흘러가진 않아도 인생은 계속 이어진다는 평범한 메시지의 이 영화를 보고나면 ‘나의 삶도 영화를 닮아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영화가 유독 큰 여운을 갖습니다. 내 부모님이, 자식이, 친구가, 그리고 내가 겪고 겪을 일들이기에 영화 속 장면들에서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영화 속 실제 배우의 삶에 시간이 흐르는 모습

 


영화의 후반부에는 독립할 생각에 신난 아이를 보며 착잡해 하는 엄마가 결국은 눈물을 보입니다. 인생이 끝나서 이젠 장례식 밖에 남지 않은 기분이라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과장이 지나치다고 반박하지만, 엄마는 공허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I just thought there would be more. “
- 난 뭔가 더 있는 줄 알았어.


‘언젠가 그 순간’을 위해서 달려왔는데 그게 무언인지는 몰랐던 부모.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그랬듯 대단한 성취 없이 삶을 마감하게 될 거라는 직감의 허망함. 하지만 아이는 떠날 때가 되어 떠날 뿐입니다. 부모는 집에 남고, 차를 몰고 집을 떠나는 아이는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자 볼륨을 높입니다. (♬HERO - The family of year)


 
Let me go
날 놓아주세요


I don’t wanna be your hero.
난 당신의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아요


I don’t wanna be a big man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Just wanna fight with everyone else.
그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고 싶을 뿐이에요



Hero-Family of year 뮤직비디오.  <보이후드> 영화의 내용들로 구성되어있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이 음악이 들릴 때, 바로 이 장면이 생각납니다. 많은 이들의 명장면이 된 것은 영화 자체의 힘만큼이나, 본인의 어린시절(보이후드)를 그 장면에 대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속 인물과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 분명 이 영화에 있습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arak/11


매거진의 이전글 파괴가 좋다던 친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