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 영화관, 그 첫번째
‘도서관 옆 영화관’은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관련된 책과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결이 비슷해서 함께 선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차이점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처음 혹은 다시 책/영화를 보실 분들을 염려해두고, 내용의 전체를 설명하는 게 아닌 일부 주요한 구절들로 책과 영화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1편에서부터 이어집니다-
<보이후드>가 평범하고 느슨해서 역설적으로 특별하고 치열한 삶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나빌레라> 는 좀 더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삶의 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Daum 웹툰에서 연재하던 작품으로, 전작이 <은밀하게 위대하게>인 HUN (최종훈) 작가의 작품입니다. 연재기간 내내 랭킹 1위, 역대 모든 Daum 웹툰 중에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했고, 5권의 만화책으로도 출간된 것도 모자라 현재 영화화 중에 있는 작품입니다. 제목 <나빌레라>는 조지훈의 시 <승무> 중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을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요, 노인과 발레라는 낯선 설정을 통해 나와 가족, 주변인물들의 스토리가 깊고 강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참고로 제 친구가 이 만화책 전집을 빌려갔는데, 친구의 아버지께서 읽고 눈물을 보이셨고, 주변 분들에게 추천하고 다니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일흔살의 노인 ‘덕출’은 아이를 다 키우고 퇴직한 시점 어느 날 오랜 꿈이었던 발레를 배우겠다고 가족에서 선언합니다. 가족들은 ‘몸에 무리가 간다, 발레복 입은 노인은 망측하다, 동네사람들이 다 알텐데 창피해서 어떻게 사냐’는 이유로 적극 반대합니다. 이런 가족의 만류에도 발레를 취미 이상으로 열심히 배우지만, 치매증상이 나타나면서 열심히 익힌 동작도, 본인이 누구인지도 점점 잊어가는 덕출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선생님! 나이가 들면 무언가 원한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아요.
나약하고 힘없는 노인이라서가 아니라.. 이제와서 굳이 새로운 걸 접하기가 두려운 거지요.
사람들도 그걸 알아요. 당연히 알겠지요 그정도는..
그런데 말입니다. 선생님! 그렇다고 해서 그 뜻이 작은 건 아니랍니다.
덕출이 처음 발레를 배우러 학원에 갔을 때 선생님께 하는 이야기입니다. 발레단의 ‘채록’ 이라는 20대 소년이 덕출과 함께 중요한 역할로 나오는데요. 재능이 있지만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와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발레에 전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아이입니다. 특히 채록은 덕출 할아버지에게 치매가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게 되면서 덕출이 남은 인생을 모두 걸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발레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무대에서 멋지게 공연할 수 있도록 도우며 그 자신도 성장합니다. 이 책은 특히 공감에 탁월한 연출을 하는데요. 꽤나 자주 예상치 못하게 눈물이 터지는지라 이 웹툰 연재 시 사람들의 경고가 “절대 공공장소에서 보지 말 것” 이었다고 합니다.
덕출의 첫째아들은 가장의 체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로, 아버지가 가장의 체통을 버리고 망측한 짓을 하신다며 발레를 가장 크게 반대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부끄럽다고 친구에게 불평하다가 아버지를 일찍 여읜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난 발레가 아니라 스트립쇼를 하신대도 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어.
아버지가 안계시고 나서야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것을 알게 됐어. 나는 니가 부럽다.
이 웹툰은 일흔 노인을 다루는 듯 하면서 인생 모든 연령대의 많은 순간들을 함축적으로 전달합니다. 때문에 어린 아이들과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도 모두 좋을 ‘보편성’을 지닌 책입니다. 더군다나 만화라니, 얼마나 술술 읽히겠어요?
<보이후드>는 실제 삶의 속성을 통해 장기적인 관점으로 산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면, < 나빌레라>는 극적인 순간이 닥쳤을 때 선택한 행동들을 통해 삶을 이야기합니다. 전자는 ‘지난한 여정’이라는 데 방점이 있다면, 후자는 ‘의지의 선택’이라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두가지 모두, 우리가 너무 잘 알고있는 속성들이죠.
여러분은 산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흔히 좌우명에 삶에 대한 가치관이 묻어있기 마련인데… 여러분들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궁금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보이후드에서 나오는 대사를 소개해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 칼럼으로 만나요!
흔히들 이런 말을 해. 이 순간을 붙잡으라고.
난 그 말을 거꾸로 해야 될 거 같아.
이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지.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