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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락 Apr 20. 2020

[도서관 옆 영화관] '음식'에 대하여 (1)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된 사랑은 없다.
조지 버나드 쇼



먹는걸 좋아하시나요? 긴 줄을 기다려서 먹을 만큼 가치 있는 음식은 없다고 믿고 계시는 편인가요, 혹은 인고의 시간을 견디 듯 좋아하는 식재료의 제철이 돌아오기를 1년동안 기다리시는 편인가요?
 
그 어느 때보다 맛있는 것에 대해 관심이 높습니다. 언제든 TV를 틀어도 하나 건너 하나 방송사에서 먹방(먹는 방송) 혹은 쿡방(요리하는 방송)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예능에서 연예인표 레시피가 화제가 되면 해당 식재료가 전국적으로 품절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기업을 통해 신제품으로 출시되어 마트나 편의점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새벽에도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 있고, 자기 전에 온라인장보기를 해 놓으면 다음날 아침 갓 구운 빵과 신선한 우유를 문 앞에서 만날 수 있죠. 먹기보다 안 먹기가 어려운 시절입니다. 가정간편식도 수요가 높아지면서 RTP, RTE, RTC, RTH *등 구분이 확연해지고 그 퀄리티 또한 높아지고 있습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삼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자 쾌락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죽지 않기 위해서 뭐라도 먹어야 하는, 삶이 부과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작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 이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입맛이 없어도 일을 하기 위해 뭐라도 넘겨야 하는 노동자의 비애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감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고생한 일에 대한 보상으로도, 슬픈 일에 대한 위로로도 늘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는 것인데요. 기쁨, 슬픔, 고통, 스트레스, 무료함 등 인간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 끝에는 “맛있는거나 먹으러 가자!”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삶은 음식으로 이어지고, 이뤄집니다. 그 뿐인가요. 음식과 관련한 추억은 유독 생생합니다. 보쌈을 먹다가도 ‘그 때 제주도에서 먹었던 보쌈 진짜 맛있었는데’ 하며 흥분하고,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면 ‘비만 오면 그 때 작은할머니 댁에서 먹었던 김치전이 생각난다’ 라며 이야기 보따리를 풉니다. 저도 아직까지 ‘어느 가을 지나치게 많은 양의 고기가 들어있던 유독 매콤했던 어머니의 순두부찌개’ 라던가, 아버지께서 가끔 야식으로 만들어 주시던 ‘후라이팬에 두부를 가득 부치고, 그 위에 계란을 5~6개를 무심하게 툭툭 깨어 소금과 후추를 넉넉하게 뿌린 아버지표 계란두부부침’ 에 대해서 동생과 함께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이야기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침이 고이네요.. 


지인들과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파리의 어느 베트남 식당에서 먹었던 쌀국수가 베트남에서 먹었던 쌀국수보다 맛있었다’ 라던가, 순대 먹을 때 소금파vs막장파vs초장파 (vs 아무거나파) 끼리의 좁힐 수 없는 간극 등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부침개 부치는 소리, 불판에서 치이익 고기가 익는 소리,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소리 등 음식과 관련된 여러 소리가 ASMR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소리. YouTube나 podcast 등으로 쉽게 접할 수 있음) 로도 제작이 되고 있습니다. ASMR은 불면증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밤에 자기 전에 듣는 경우가 많지만, 음식관련 ASMR은 야식을 참지 못하게 함으로 밤에 보지 말라는 경고(?) 가 있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음식’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 첫번째로 ‘글로 읽는 ASMR’ 이라고도 알려진 책에 대해서 소개 해드리고자 합니다.





 강원도의 맛 (전순예 / 2018 / 송송책방)




이 책에는 1950~60년대 강원도 산골의 풍경이 담겨있습니다. 그 시절 해먹던 음식을 사투리, 풍습, 동물, 나물, 작물과 사람을 통하여 묘사하고 있는데요. 초등학교 때 작가가 되고싶었던 전순예씨는 부모님이 중학교 진학을 허락해주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이 부모님 몰래 도장을 파고 호적등본을 떼고 자기의 박봉을 털어 중학교에 보내주셨고, 작가가 되어 은혜를 갚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후 먹고 살기 바빠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다가 환갑이 돼서 자식들이 마련해준 여행비로 신학교를 등록하고, 나이 일흔에는 우연한 기회로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강원도의 맛'이란 칼럼을 연재하게 되면서 그 글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이 책을 ‘절대’ 밤에 읽지 마세요. 몇 번이고 책을 덮고 감자나, 도토리묵이나, 순대 같은 것들을 찾아 냉장고를 뒤적이게 될 것입니다. 정신줄을 잘 잡고 이런 충동을 이겨냈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활기를 찾은 위 때문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잠에 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는 지금처럼 온실 재배 등이 활발하지 않은 옛날 강원도에서 1년중 딱 그 때만 먹을 수 있는, 그 때를 놓치면 먹지 못하기에 유독 간절하게 모종의 ‘의식’처럼 꼭 먹고 지나가야 하는 음식들이 자주 나오는데요 (배추 속이 옹골차게 가득 차는 김장철이 되면 꼭 겉절이에 보쌈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 중 하나로 ‘파란콩 순두부’가 등장합니다.



 [파란콩* 순두부] (* 콩이 여물기 전인 파란 상태의 콩)


     


파란콩 순두부는 콩이 여물기 전, 일년에 한번만 해먹습니다. 할머니는 무슨 일을 보면 끝장을 내는 성격이라 파란콩을 밤새워 까다가 살손톱 (손톱 밑의 살)이 자빠져서 무지 고생한 적도 있습니다. 그 후부터는 파란콩 순두부를 하기가 겁이 납니다. 할머니도 아무리 파란콩 순두부가 먹고 싶어도 ‘앞으로는 못 해먹겠구나’ 하십니다. 그런데 때가 되니 가족들 입에서 무심코 “파란콩 순두부가 먹고 싶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밥을 먹다 말고 파란콩 순두부가 있는 것처럼 작년에 먹던 콩 두부 얘기를 침을 꿀꺽 삼키면서 합니다. 할 수 없이 온 식구가 합심하여 콩을 까기로 했습니다.(…) 가마솥을 깨끗이 씻고 콩물을 모아 붓습니다. 쉽게 타는 건불로 불을 솔솔 때서 콩물을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간수를 물에 녹여 따뜻한 콩물 위에 술술 뿌려줍니다. 파란 콩물이 몽글몽글 구름처럼 엉키기 시작합니다. 간수를 갑자기 너무 많이 치면 두부가 딱딱해져서 천천히 엉기는 정도를 보면서 적당량의 간수를 잘 쳐줘야 됩니다. 콩물이 계란국같이 포르스름하니 예쁘고 사랑스럽게 뭉쳤습니다. 두부를 싸기 전에 온 가족이 둘러서서 뜨끈뜨끈한 순두부를 한 잔씩 후루룩후루룩 마십니다. 세상에서 순두부가 가장 맛있는 시간입니다. 몽글몽글 푸르스름 예쁜 모양보다 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온 몸에 퍼지면서 아주 행복해집니다.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이면서 코에서는 고소하고 뜨끈한 콩냄새가 나고, 이미 먹은 것처럼 속도 뜨끈합니다. 사무실의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오들오들 떨다가 어디선가 도착한 한 솥 가득 끓여진 순두부를 한 국자 떠서 후루룩 마시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어느 날에는 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동네 연극 잔치에 승호가 주연을 맡으면서 승호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먹을 수 있도록 묵을 쑤어 가는데요.




[도토리묵]



묵이 풀떡풀떡 끓을 때는 긴 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원수처럼 고개를 돌려 묵 가마를 외면하고 두 팔로는 묵을 열심히 젓습니다. 많은 양의 묵은 화산처럼 폭발적으로 튀어 올라 잘못 방심하면 얼굴에 크게 화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끓이다가 박죽으로 떠서 흘려보아 쭈르륵 흐르면 묽은 것이고 천천히 뚝뚝 떨어지면 농도가 맞는 것입니다. 아니면 물에다 뚝뚝 떨어뜨려서 풀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농도가 잘 맞는 것입니다. (…) 생 배추를 슬쩍 절여 쫑쫑 썰어서 참깨보생이, 파, 마늘, 고춧가루, 들기름을 넣고 꼬미를 만듭니다. 조선간장에 파, 마늘, 매운 고추, 참깨보생이,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 간장도 만듭니다. 큰 포기로만 골라 만든 배추김치도 푸짐하게 썰어 준비합니다. 승호의 연극에 따라 울고 웃던 연극이 끝나고, 사회자가 아아아 마이크를 켜고 광고를 합니다.
 
“알려드리겠습니다. 승호 어머니가 도토리묵을 많이 해왔으니 관계자분들은 한 분도 빠지지 말고 묵 쳐먹고 가시길 바랍니다. 꼭 드시고 가십시오.”
(묵은 쳐 먹는다고 합니다. 묵 쳐 먹다. 회 쳐먹듯 썰어 먹는다는 뜻입니다. - 지은이)



표준어 하나 배우셨죠? 이제 썰리지 않은 통짜 묵이 있으면 표준어를 적극 활용하여 바른말을 쓰셔야 합니다. 여기서는 특히 쫑쫑 썬 파가 들어간 묵 양념에 더욱 침이 고입니다. 잣과 관련해서는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일교 어머니는 이른 아침 뒷동산의 잣나무 밑이 궁금하여 꼬부라진 허리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웬일인지 잣나무 밑에는 누가 따놓은 것 같이 잣송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일교 어머니는 제일 무게가 나가지 않는 양은 세숫대야를 들고 자박자박 걸어서 잣송이를 주워 나릅니다. 헛간에 두자니 쥐들이 먹을 것 같아서 웃방에다가 날라다 붓습니다. 웬 횡재인지 누가 주워 가기 전에 하루 종일 있는 힘을 다 해 해가 질 때까지 퍼 날랐더니 웃방에 잣송이가 수북이 쌓였습니다. 어둑어둑 해지자 시꺼먼 청설모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찍찍 거리며 집을 싸고돌기 시작합니다. 웃방 창호지 문을 발로 할퀴어 뜯고 문구멍으로 잣송이를 보고 찍찍거립니다.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점점 떼거리가 몰려들며 사나운 기세로 사람도 할퀴어 뜯을 기세입니다. 종일 퍼 나른 잣송이가 아깝지만 문을 열고 “에이. 더러운 놈들 옛다, 잣 여기 있다. 도로 다 가져가거라” 잣송이를 청설모들이 맞거나 말거나 마구마구 냅다 던졌습니다. 새까만 청설모 떼가 잣송이를 물고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땐 실제로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은 음식이라도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 글에서도 소리가 납니다. 마들마들, 꽁알, 흐들스럽게, 꼬시네, 맴썰나다, 꿀드리하다 등 독특한 언어의 리듬감이 더욱 배고프게 합니다. 보통은 어떤 음식이 맛있으면 ‘맛있다! 최고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정도로 표현하지만, 어쩌면 이 말은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쓰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이영자는 ‘맛있다’는 말 없이도 듣는 사람이 침을 꿀꺽 삼키며 상상하게 할 수 있는 선명하고 생생한 표현들을 쓰는 것처럼 말이죠.



-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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