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 영화관’은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관련된 책과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결이 비슷해서 함께 선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차이점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처음 혹은 다시 책/영화를 보실 분들을 염려해두고, 내용의 전체를 설명하는 게 아닌 일부 주요한 구절들로 책과 영화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1편에서부터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텍스트에서 벗어나,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해 볼까요? 음식과 관련된 영화는 사실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카모메 식당>의 시나몬롤 (계피를 넣고 돌돌 만 빵에 연유를 뿌린 것) , <마담푸르스트의 비밀정원>에서 프랑스의 국민간식 슈게뜨 (우리나라의 홈런볼 같은 과자), <아메리칸 셰프>의 쿠바 샌드위치 (고기, 치즈, 피클을 잔뜩 넣고 그릴에 구운 샌드위치) 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 향과 식감이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작년에 혜성같이 등장해서 아마도 현존하는 모든 음식 다큐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을 작품입니다. 넷플릭스(Netflix) 라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산 덕택 이기도 하지만, 먹방/쿡방을 즐겨보던 아니던 먹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특별한 음식 다큐를 놓치지 마셔야 합니다.
소금, 산, 지방, 불 (영제: Fat, Salt, Acid, Heat / 사민 노스랫 / Netflix)
소금과 산, 지방과 불이 훌륭한 요리를 결정짓는 주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다큐인데요. 총 4부작으로 한 편당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식재료 및 관련 요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존의 음식다큐는 셰프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담거나,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는 식재료로 비싼 요리를 했다면, 이 다큐는 먹는 걸 좋아하고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음식 앞에서 얼마나 순수하게 행복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입니다. 이 다큐는 사민 노스랫의 동명의 책 <소금 산 지방 불>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는데요. 영상에도 실제 등장하여 여러 나라의 각 식재료에 정통한 이들을 찾아서 그들의 레시피를 배웁니다. 사민 노스랫은 캘리포니아에서 셰프로 일을 하다가 현재는 뉴욕의 음식 칼럼니스트 최고 5인에 드는 뉴욕의 음식 작가로 꼽히는 실력자이며 여러 유명 셰프들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소금, 산, 지방, 불>은 그녀의 첫 책이었는데 2017년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그 해 최고의 요리 서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전세계 웹 트래픽의 15%를 사용한다는 넷플릭스로 이 음식다큐가 서비스되면서 책도 훨씬 더 유명해졌는데요. 들리는 찌라시(?)에 따르면, 미국펄프출판협회에서는 환경보호 차원으로 1년에 출간되는 책의 부수를 제한하는데, 사민 노스랫의 책이 이 다큐의 영향으로 너무 많은 주문을 받은 탓에 2018년 출간 부수 제한에 걸려 수 만권이 2019년도가 되서야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첫 에피소드에서는 ‘지방’을 이해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여느 가정으로 찾아가고, 두 번째에는 ‘소금’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남부 섬 지방을, 세 번째에는 ‘산’을 이해하기 위해 멕시코로,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자신의 요리사 인생의 출발지인 미국 버클리로 돌아와 불을 이해합니다. 저는 영화와 책을 보통 한번만 보기 때문에 두 번 이상 본 책과 영화가 평생 5개도 되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이 다큐는 네 가지 에피소드를 모두 다 세 번씩 봤습니다. 그 만큼 이 다큐가 주는 행복함과 만족감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강하고 확실합니다. 침울했던 기분이 이 다큐를 보면 “그래. 할만 하겠다! 맛있는 거 먹고 다시 해보자!" 로 바뀌는 매력이 있습니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영상 보는 걸 좋아하고, 음악과 소리에 민감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천연으로 얻은 신선하고 향긋한 식재료를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손질하는 모습이라던가,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날씨(!), 영상 곳곳에 드라마틱하게 깔리는 음악은 몰입도를 최고조로 올립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사민 노스랫이라는 사람입니다. 시종일관 호기심 넘치나 겸손하고, 맛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함께 있는 사람을 유쾌하게 해주는 능력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어느 작가가 그랬죠. ‘유머는 타인을 웃기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 라고 말입니다. 사민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삶을 멋지게 이끌어나가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에피소드에서는 엄청난 양의 양파를 다지면서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흐르는 본인의 상황에 깔깔 웃는 사민에게 요리 스승님이 이야기 합니다. “웃으면서 울고 있군요”. 사민은 콧물을 훌쩍거리며 웃는 얼굴로 대답합니다. “그러게요. 제 인생이랑 똑같아요.”
이 음식다큐는 한국의 먹방과는 좀 다릅니다. 사실 타인이 먹는 걸 가까이서 보여주거나 많이 먹는 먹방은 한국에만 있는 특징으로 외국인들은 ‘Mukbang’이라는 고유명사로 지칭하고, YouTube서도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잡았는데요. 한국의 먹방엔 어찌 보면 외국인들이 기겁할 만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모습을 초 근접으로 본다는 건 그들에게는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는 푸드쇼에서도 프로그램 마지막에 상반신이 다 보일 정도로 거리를 두고 촬영한 시식 장면이 등장합니다. 한국에서 거주하는 한 미국인은 “한국에서는 TV 켤 때마다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계속 나온다” 라고 했다고도 하는데요. 일각에서는 이런 먹방이 원초적인 감각을 지나치고 저급하게 자극한다고 ‘푸드 포르노’ 라고 부르며 각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먹방이 정크푸드나 고지방/고설탕/고염분의 음식을 지나치게 먹으면서 과식을 조장한다면, <소금 산 지방 불>은 신선한 식재료를 최소한의 원리로 아주 맛있게 요리한 후 지인들과 한 테이블에 모두 둘러앉아 하하호호 웃으며 즐겁게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서은국 심리학 교수는 <행복의 기원> 이라는 책 전부를 할애해 사회학적, 유전학적, 생물학적 요소를 모두 고려했을 때 인간이 예외 없이 행복한 순간은 사회적인 성공과 인정도, 돈도 아닌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을 때’ 라고 설명합니다. 지인들과 둘러앉아 맛있고 즐겁게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떻게 음식이 맛있어지는지를 알아가는 이 다큐 전체가 ‘행복’과 크게 맞닿아 있는 이유입니다.
풍미와 질감을 더하는 지방, 맛을 깨우며 생명을 불어넣는 소금, 음식의 균형을 맞추는 산, 음식의 식감과 물성을 변화시키는 불을 잘 활용하면 기본적인 재료로도 훌륭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사민은 마지막에 이렇게 애기합니다.
“비싼 재료가 들어가야 좋은 요리가 되는 게 아니라, 양질의 소박한 기본 식재료를 찾아서 존중을 담아 다루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가족과 친구와 함께 먹는 바로 그 행위와 시간이, 삶의 결을 다채롭고 풍부하게 합니다. 어떤 음식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인생을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사는 사람은 말랑말랑한 맛을 내고, 인생을 모범생처럼 또박또박 사는 사람은 또박또박한 맛을 낸다.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겪은 사람은 바람처럼 싸한 맛을 내고, 인생을 막 시작한 사람은 파릇파릇한 새순의 맛을 낸다.’
여러분이 만든 음식은 어떤 맛을 낼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만약 지금까지 각 잡히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와서 좀 느슨하게 여유를 즐기고 싶으시다면, 요리를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렇게 자신을 알아가고 변화시켜가며 만든 요리를 맛있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먹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함께 먹기 위해 음식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바랄게 뭐가 있을까요. 이미 사회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가장 행복하신걸요!
어제만큼 오늘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드시길 기원하면서, 다음주 월요일에 만나요!
Ps. 넷플릭스는 첫 달 한 달간 무료로 즐기고 언제든 해지할 수 있으니, <지방, 산, 소금, 불>은 무료로 볼 수 있답니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