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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락 Mar 08. 2023

독서에 대하여


1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학교와 사람으로부터 떨어져나와 배움의 방법이라곤 책밖에 없다고 믿었던 1년동안 1주일에 한권씩 8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지만,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가며 필사적으로 읽었다. 지금은 80권의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인상깊었던 몇 개의 문장도 온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확신할 수 있는 건, 그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 시작하고 마무리지었던 사색만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2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거창하게도 삶의 목표를 정해버렸었다. ‘지식이 아닌 지혜를 위해 위하여. 모든 배움의 방법은 이 삶의 목표에 맞춰 정해졌고, 자연스레 암기는 멀리하고 원리 파악에는 공을 들였다. 어리석게도 학점을 위한 시험에도 암기는 멀리한 탓에 학점은 좋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행동에 이유를 찾거나 이미 일어난 상황에 원인을 추측하는 일을 즐겼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식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선 조금도 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이 분야를 이런 식으로 분류 하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00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의 심리에 의해 00이 증가하는구나’하고 이해만 하고 넘겼다. 무슨 효과, 무슨 현상이라 이름 붙여진 것들에는 지금도 잘 모른다.


3

지혜를 위해서 말고도 독서를 한 이유는 많았다. 간접경험으로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키고 싶었고, 사람들과 대화를 잘 이끌어가기위해 그들이 관심 있는 분야에 한마디라도 더 얹고 싶었다. 마음에 떠오른 의문에 답을 찾고 싶어서 혹은 아무 것도 궁금한 게 없어 의도적으로 궁금증을 만들기 위해 책을 읽었다.


독서를 바람직하고 동경하는 취미로 치켜세우는 사회 분위기에 으쓱하기도 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시간 나면 뭐해?’라는 질문에 ‘책 읽어요’ 라고 하면 반드시 뒤따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감수해야했지만 그래도 나는 퍽 내 독서생활이 즐거웠다. 좋은 책은 극소수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책을 고르는 안목이 괜찮아졌다고 느낄 때마다 기뻤다. 자연스레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든 같은 걸 느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을 강화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것을. 같은 책을 읽어도 모두 다른 구절을 베스트로 꼽는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은 비단 사람관계에서만 국한된 게 아니라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쓴 글만 읽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높은 자아로 나아갈 수 없었다. 나는 그게 가장 무서웠다. 카프카가 말한 것처럼 역동적으로 출렁이는 나의 바다를 위해 허리와 목에 통증을 수반하는 독서를 멈추지 않은 것인데, 나 역시 나만을 강화하는 독서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4

자신들의 바다가 출렁이지 않게 책으로 담을 쌓는 이들을 보며 나는 저러면 안된다는 교훈만 얻어가자, 생각하며 책 읽지 못하는 날들을 불안해하며 지낸지 몇 년. 난생 처음으로 ‘책 많이 읽는다며? 절대 그러지마라.’ 얘기하는 분을 만났다. ‘다독은 독이다. 좋은 책만 골라 읽어야 한다. 다른 책은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라.’ 라고 말하던 그 분은 어느 날, 본인은 평생 인생의 지침이 되는 책이 아니면 남에게 주지도 않는다며 5권의 책을 주셨다. 채근담(홍자성), 쇼펜하우어 수상록, 조선사 연구(신채호), 조선과 예술(야나기 무네요시), 슬견설(이규보).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읽어본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말한 게 부끄러웠다. 가장 먼저 펼친 것은 쇼펜하우어 수상록이었다. 첫 이야기는 ‘사색에 대하여’.


다독은 정신의 탄력성을 몽땅 잃게 한다. 오랫동안 용수철에 무거운 짐을 매달아 놓아두면 탄력성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턱대로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은 자신의 사상을 갖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우리들의 정신 속에 불타고 있는 사상과 책에서 읽은 남의 사상을 비교한다는 것은 마치 봄에 만발한 꽃과, 화석이 되어 버린 태고의 꽃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 독서는 다만 자기의 사상의 샘이 고갈되었을 때에만 해야 하는 것이다.


약 20페이지에 나오는 이 구절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내 사상의 샘은 아직 마르지 않았으니, 이 책마저 덮어버렸다. 그러고 찬찬히 책장에 꽂힌 책 제목들을 살펴보았다. 미뤄둔 숙제처럼 언젠간 꼭 읽어야 하는데 의무감을 느끼고 있던 신중히 골라놓은 ‘좋은 책들'이 딱 3권을 제외하곤 무의미해보였다. 사실, 불안했다.어딘가를 향해 놓여있던 무수한 지침판이 몽땅 사라지고 딱 3개 남은 것 같았다. 나에게 책 마저 없어져도 괜찮을까. 하지만 길 자체가 없어졌으니 길 잃을 일이 줄었다는 건 명확했다. 하늘도 관찰하고 내 발 밑을 살필 여건이 되었다. ‘저기까지만 가면 되겠지’ 멀리보고 여유롭게 가도 될 것 같아 이 불안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문득 그 분이 자신에게 이야기 하듯 웅얼거린 말이 생각났다.   



5

그래서 오늘부터 빈 공책을 편다. 오로지 내 안에서 새로운 꽃을 피워내기위해. 


나의 꽃을 피우자. 나의 정신을 먹고 나의 의지 속에서 길러져 내 피부를 뚫고 피어올라, 여지껏 세상에 없던 담박한 모습으로 유현한 향기를 풍기는 나만의 꽃을. 그리하여 그 꽃이 나의 자랑이며 영광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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