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작년부터는 음악보다는 팟캐스트를 많이 듣고 있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사용한 후로는 아무리 시끄러운 대중교통 방송이나 거리의 소음들로부터 안전하게 조곤조곤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적어도 하루에 1.5시간 듣고, 지금처럼 코로나로 인해 자가격리를 하기 전 주말에 ‘걷기가 목적인 걷기’를 할 때는 걷는 동안 주구장창 약 4-5시간을 내리 듣기도 했다.
한국어 팟캐스트와 영어 팟캐스트를 동일한 비율로 듣고 있는데 영어는 크리스타 티펫 (Krista Tippett)이 나오는 팟캐스트를 다 좋아한다. 한국어 중에서는 안승준, 봉태규가 '책으로 배우는 실제 생활'이라는 아주 구시대적인 책을 챕터별로 읽으며 개탄(?) 하는 <우리는 꽤나 진지합니다>라는 팟캐스트를 매우 좋아했다. 2018년에 종료된 방송이지만 나는 2019년 과거 팬이었던 보드카레인의 해체 후 근황을 검색하면서 알게 되어 뒤늦게 빠졌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가 대뜸 이 팟캐스트를 꼭 들어보라며 추천했던 걸 보면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지금도 듣고 있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 자녀를 키우고 있는 아버지로서 그들의 사회 인식 및 문제의식이 아주 선명해서 통쾌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압권은 유머 코드다. 웃길 의도가 전혀 없이 둘이서 티키타카 하는 말들이 빵빵 터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킁킁거렸던지.. 게다가 재미있는 건 돌려 듣고 또 돌려 들는 편이라 30분짜리를 1시간씩 듣곤 했었다.
그래도. 가장 사랑하는 하나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언제나 망설임 없이 이 팟캐스트를 꼽는다.
나는 이수정 박사의 덕질을 한다고 몇 년 전부터 관련된 책, 팟캐스트 및 유튜브, 매거진 및 언론사 뉴스/인터뷰 등을 모두 다 듣고 읽고 있다. 때문에 이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팟캐스트가 시작하자마자 1화부터 정주행을 하게 되었다. 시즌 1이 진행되는 동안이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이 팟캐스트를 추천했고 시즌 1이 종료되었을 때는 낙심하여 그동안 듣던 모든 팟캐스트를 전면 중단했을 만큼 지고지순한 사랑의 마음과 응원을 보내고 있다. 현재는 시즌2의 시작과 함께 매주 애타는 마음으로 다시 업로드를 기다리고 있다.
이다혜 씨네 21 기자는 스릴러 마니아이면서도 ( <아무튼, 스릴러>라는 책의 저자로 이 책을 보면 그가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말하고 싶은 것이 훨씬 많은데도 지면의 한계상 혹은 책의 통일성을 위해 하지 않은 말이 더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한 지식이 남달라 이 팟캐스트를 통해 이수정 범죄심리학 박사로부터 더 많은 것을 질문하고 다양한 담론을 이끌어낸다. 그 진행 능력에 매 화 감탄한다. 또한 '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에서 한 이야기들과 <출근길의 주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여성 이슈에 관심이 많고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신이 여자였기 때문에 범죄심리학 및 프로파일링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온 것 같다'는 이수정 박사와 심도 높은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준비된 호스트이다. (팟캐스트 말미에는 방송이 다 끝난 후에 뒤에 앉아계시던 팟캐스트 작가님들이 들으면서 궁금했던 것들이나 앞으로 도대체 뭘 해야 하냐로 시작되는 열띤 토론을 엿들을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 1화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섭외 과정에서 이수정 박사가 언급한 '범죄영화 장르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겠다. 범죄영화에 숱하게 등장하지만 대부분 피해자로 소비되다 마는 여성이나 아이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의향이 있다.'라는 말이 이 팟캐스트의 콘셉트가 되었다. 매 화 범죄영화 속 설정이 얼마나 현실과 가까운지, 지나친 방식으로 여성과 아이를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나라에 실제 있었던 특정 범죄와 공통점/차이점은 무엇인지, 현행법상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방향으로 사회 및 대중의 인식이 발전해야 하는지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매 화 달리는 '비통합니다' 라든가 '그동안 저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 상처를 좀 더 직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든가, '이 팟캐스트를 들으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ㅇㅇ 에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등의 댓글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일상을, 무기력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에 울컥할 때가 많다. 이수정 박사는 이 팟캐스트를 하는 동안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된 것에 대해서 짤막하게 앞으로도 계속 내가 본 것과 들은 것을 말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겠다며 묵묵히 대답하기도 했다.
여러 회차를 듣다 보면 반복적으로 같은 이슈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문제점의 원인이 '스토킹 방지법'이라든가 '의제강간 연령', '청소년 범죄의 높은 재범률', '학교 밖 아이들에 대한 관심 부족' 등 몇 개의 이슈로 수렴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수정 박사의 활동들을 덕질(?)하다 보니 그가 같은 말을 다른 곳에서 지겹도록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엄청난 양의 일을 맡아하면서, 절박함으로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필요한 말을 하는 게 중년의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일까 하는 생각에 먹먹해지며 그 절박하고 명확한 목소리는 ‘그렇다면 나는 무슨 곳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한다.
이 팟캐스트에서는 영화로 다루어진 거의 모든 종류의 범죄 - 청소년 범죄, 연쇄 살인, 사이코 패스, 다단계, 인종차별, 권력형 성범죄, 외국인 범죄, 아동 학대, 친족 성폭력, 페도필리아, 노인 대상 범죄 등 - 과 우리 현실이 어떤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깊이 파고든다. 차별은 일상에 만연하고, 내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점, 우리는 모두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고 있고 서로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만이 더 많은 범죄를 방지할 수 있다는 이 팟캐스트의 외침이 더 멀리 전달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