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락 Jan 26. 2022

자존감은 낮고 높은 게 아니에요.


자존감.. 자존감..

그놈의 자존감 참 지겹도록 많이 듣고 있습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많이 활용되고 있을 겁니다.

'요즘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자존감이 높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매일 운동을 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하지만 저는

자존감이라는 건 낮을 수도, 높아질 수도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존감은 사전적 정의로 '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나 자신에게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 일 것입니다.  



저는 자존감은 '인간의 본능' 이기 때문에

그 정도를 높다/낮다로 측정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당연히 여러분의 기저에 깔려 있어서

있었는지도 모르는 '생명유지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과감하게 이야기하면

살아있는 사람은

모두 자존감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배가 고프면 밥을 드시죠?

왜 밥을 드시나요?

끼니때가 되어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니까 먹는 것일 수도 있고

배고프면 힘이 없으니까 먹기도 하고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 다 좋습니다.


몸이 배가 고프다고 할 때 밥을 넣어주는 건

내가 나 스스로를 돌보기 때문에 하는 행동입니다.

나 자신에게 좋은 걸 해주고 싶어서 하는 행동입니다.

만약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눈앞에 음식이 있는데도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며칠을 무시하며

'나는 저걸 먹을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배가 고파서 눈에 보이는 라면을 끓여먹거나 과자로 끼니를 때울 수도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 사 와서 먹고 맥주로 남은 허기를 때울 수도 있겠죠.

괜찮습니다. 그것도 나를 돌보고 있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다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은 거예요.

내 몸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들어주고 있는 겁니다.


'저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요 근래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면접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아닙니다. 자존감이 '있'으신 겁니다.

이미 면접을 보기 한참 전부터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며칠을 고민하셨을 거예요.

내가 어렸을 때 기분 좋았던 순간, 칭찬받았던 순간,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 등등을

살펴보면서 나는 어떨 때 행복하고 기쁜 사람인지

시간을 내어 스스로에 대해 고민을 했어요.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고 고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나 스스로가 더 행복하고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스스로를 이미 존중하고 있는 겁니다.


'잘하는 게 없다, 좋아하는 게 없다'라고 결론이 났다고 해서

앞으로 남은 평생을 이 주제로 다시 고민하지 않으실까요?

아닐 겁니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나는 뭘 하면 행복한 사람인지' 계속 고민할 거예요.

우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요? 우리는 나 자신을 존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게 우리를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면접을 잘 보지 못하면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어요.

절망적이고 우울함을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감정 그 자체는 나의 존재와 관련이 없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내가 부정적인 사람인가요?


감정이 나 자신이라면

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고

내가 기쁘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상태에서는

나는 없는 사람인가요?


1분 동안에도 우리 몸과 마음에는 희로애락의 수십 가지의 감정이 솟구쳤다 사라집니다.

어떤 기분이 올라왔다가 사라진다고 내 존재가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은 팝업 광고와 같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출현하고 사라집니다.

어떤 감정이 의미가 있을 때는

내가 그것을 잡고 있을 때입니다.

내가 그것을 나의 존재와 결부시키겠다고 생각했을 때입니다.


'지금 나는 매우 불행하다고 느껴. 나는 불행한 사람이야.

그러니 너가 불행한 나라는 존재를 발견해 주고 위로해 주길 바라'

처럼 존재 자체를 감정과 연루시키는 것은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 위로해 달라는,

내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바를 들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것은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신호'입니다.

내 존재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입니다.

'이젠 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때가 되었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A라는 회사원이 있는데

오늘 상사가 나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몇 달을 매진한 업무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고 폄하를 했다고 합시다.


A는 매우 화가 나고 억울하면서도 속상하고 우울할 겁니다.

내일 당장 회사를 떼려 치우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왜 화가 나고 억울한 감정이 들었을까요?

당연히 화가 나고 억울한 상황이니까 그런가요?

그런데 같은 일을 겪어도 분노의 정도나 대응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도 있지 않나요?

같은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쟤는 화를 안내' 라던가

'어떻게 저런 반응을 보였지? 너무 신기해'라는 평을 받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실 겁니다.

왜 A는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까지 분노한 걸까요?


그건 A는 '인격적으로 존중받고 싶고

업무적으로 성과를 인정받고

직장에서 만족과 성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욕망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옆팀 B 씨는

'회사는 원래 인격적인 존중을 바랄 수 없는 곳이야'

라는 마음으로 입사를 했던 사람이라면

A가 오늘 겪은 일을 똑같이 겪었다고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인간의 욕망과 불안은 다양합니다.


'상식', '본능'이라는 말로

모든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자신이 자라온 환경, 노출된 상황, 경험, 깨달음, 흥미, 가치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그러니 남들이

'저는 이렇게 하니 자존감이 올라갔어요' 하며

수많은 노하우를 적용해도

좀처럼 나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고

삶이 점점 나아진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의 욕망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방식은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서만 알아낼 수 있습니다.


내 욕망과 내 불안은

나밖에 모릅니다.


A 씨의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직이라는 길을 택할 겁니다.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이직을 택하는 결정이 바로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기분이 우울하다' 고 느낄 때 하는

모든 행동들이 이미 스스로를 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나를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알아차리기만 하세요.

나의 욕망과 불안을 알아차리세요.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나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기 쉬워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을 멋지게 쓴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