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맺힌 자리

Null

by 이람


SYSTEM NOTICE

본 콘텐츠는 콘셉트의 몰입을 위해

다크모드 시청을 권장합니다.








>> BOOTING: trauma_core.legacy_mode

>> INITIALIZING: memory_fragments [incomplete]

>> 트라우마 핵심 시스템이 구버전 모드로 부팅됩니다.

>> 불완전한 기억 조각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

.

.

.



우리,

가장 오래된 기억에 대해 말해볼까?



나는 제법 유년시절에 대해

술술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다.



>> SYSTEM.LOG: memory_path_not_found

>> SYSTEM.LOG: requested segment returned null


>> 기억 경로를 찾을 수 없습니다.

>> 요청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거나, 비활성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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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며?


좋지 않은 기억을 뇌는 ‘망각’하게끔 한다고.

그래서 그런가.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라는 프로그램을 형성하는데 있어

기여도가 높은 몇 몇 사건을 제외하고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가령 영원히 내 곁일 줄로만 알았던

‘엄마’나 ‘아빠’같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내게 등을 돌려 떠나던 순간이라던지


>> ALERT: primary_unit_detachment_detected

>> ERROR: stability_threshold_critical


>> 주 보호 장치(Primary Unit)가 이탈했습니다.

>> 안정성 임계치가 위험 수위로 접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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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누군가에게

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어쨌든 온 마음이 뻐근하도록

얻어 맞은 기억 같은 것들.




나는

엄마가 끝내 날 떠나던 과정과

마지막으로 등을 보였던 날,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직 어린 싹이었던

나와 내 동생의 눈앞에서

스스로를 죽이고자 했던 아빠


그 날의 온도와 습도,

날씨와 풍경까지


찍어둔 사진을 보듯

머릿속에 깊게 남아있다.



>> MEMORY_DUMP: fragment_recall_mode_enabled

>> WARNING: emotional residue detected


>> 기억의 파편을 복원합니다.

>> 감정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어 재생 중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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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성인이 되었음에도

반복해서 날 내다 버린 일까지.


난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되었다.


내게 새겨진

강렬한 기억들.


PTSD, 혹은

트라우마


이렇게나 아릿하고

애틋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기억이더라



>> DIAGNOSIS: trauma_encoding_confirmed

>> CODE: P.T.S.D._v2.01


>> 외상성 기억 패턴이 확인되었습니다.

>> 해당 코드는 단순 오류가 아닌 생존을 위한 저장 형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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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기억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

구멍이 난 마음보다

더욱 크고 단단한 그것이

날 갈가리 찢어가며

겨우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은 거야.


너덜너덜,

있는대로 찢긴 나를


나는,

더 크고

더 나쁜 악몽으로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

조심스럽게 기워가며

연명하는 것이다.




>> THREADING: patch_memory_failed

>> ATTEMPT: override_with_nightmare


>> 손상된 기억을 덧대는 중 오류 발생

>> 대체 감정으로 악몽이 자동 삽입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나를 지키는 수단으로,

때로는 남을 찌르는 무기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근데 있지,

내가 너무 너덜거려서 아는데

남을 아프게 하는 내가 더 아파


그래서 나는 스스로 가둬 버린 거야.


>> SELF_LOCK: user_initiated_containment

>> ACCESS_DENIED: empathy_blocked


>> 사용자가 스스로를 격리했습니다.

>> 타인과의 감정 접속이 차단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스물 다섯이 넘어서자

눈이 펑펑 내리면 고립이 되고야 마는

그 곳을 벗어나고 싶다며

매일같이 노래를 불렀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그 외딴 곳에서

활화산 같은 아빠와 어린 두 딸이

그녀의 외로움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느꼈던 걸까.


물론 아빠도 그 곳에 연고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밴드 멤버들과의 단합, 혹은 연습을 핑계로

집을 비우기 일쑤였으니까.


그리고 항상 술에 취해 돌아왔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



그렇게 스물 일곱 쯤 되었을때

아빠의 형제들이 여럿 자리 잡은

어느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엄마는 그나마 친정인 서울과 가까워져

기뻐했지만, 잠시였다.



아빠는 일터와 동료들을 모두 두고 왔다는 이유로

형제들과 자주 어울렸고 (나에겐 고모와 큰아빠들이다.)

그것은 엄마를 더욱 고립되게 만들고 말았어.



일터를 잃었으니 새 일자리를 구해야 했는데

떠나온 곳이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었으니

당연히 수도권에서는 그 당시 벌이의

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벌어야 했고


일이 줄어들자 엄마는 RPG 게임에 빠지고,

아빠는 원래 늘 하던 대로 술독에 빠졌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자리가 없어 더이상 같이

음악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아빠는 도시에서,

엄마는 지방에서

노래로 돈을 벌었다.




어떤 경위로 눈치를 챘는지,

어떤 심정으로 거기까지 차를 몰았는지

지금도 그때와 같이 알 수는 없지만


아빠가 아주 늦은 새벽 시간,

한참 잠에 취한 동생과 나를 차에 태우고

멀리 멀리 달려 난생 처음 보는 곳으로 갔다.


눈이 아프도록 번쩍이는 네온사인이

한번에 이렇게 많을 수가 있구나

동생과 탄성을 내질렀던 기억이 난다


작은 지하 단칸방이 딸린 단독주택 앞


아빠는 한참을 달리던 차를 멈추고,

화가 난 건지, 슬픔에 잠긴 건지 모를

모호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며

잠을 자거나,

챙겨온 간식을 먹으라고 했다.


아빠는 그 얇디 얇은 철문을

힘없이 밀고 들어간지

두어시간쯤 지나

축 처진 어깨와 어두운 얼굴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는 같이 오지 않았다


엄마가 ‘우리’를 벗어났다.



>> LOCATION_CHANGED: unit_separated

>> PRESENCE: missing


>> 주요 단위가 분리되었습니다.

>> ‘그 사람’의 현재 위치: 비어 있음








아람|writing from the undertow.

© Written by Aram.thewave,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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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artist’s heart. please respect its ori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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