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씨앗

[system] feed_response: passive_수용_loop

by 이람


[SYSTEM] optimal_display_mode = "dark"

[시스템] 최적의 시각 환경과 콘셉트의 몰입을 위해 다크 모 드 사용을 권장합니다.


[BOOT SEQUENCE INITIATED]

> loading_self: - - - - # # # # 38%

[시작 시퀀스 실행됨]

> 자아 로딩 중: - - - - # # # # 38%

>

[WARNING] memory_module: fragmented

[경고] 기억 모듈: 파편화됨

>

[ERROR] identity_core: undefined_reference

[에러] 자아 코어: 참조값 없음

>

> attempting manual override...

> 수동 재설정 시도 중...

>

> source: environmental_input / early caregiver signal

> 출처: 환경 입력 / 초기 양육자 신호

>

>

[RESULT] response_mode: compliant_

[결과] 반응 모드: 순응_

>

[REASON] default survival setting (safe_mode)

[이유] 기본 생존 설정 (안전 모드)

>

[LOG] behavior_pattern = externally programmed

[로그] 행동 패턴 = 외부에 의해 프로그래밍됨

>

[NOTE] self-constructed protocols not found

[비고] 자가 구성 프로토콜 없음

>

>







두려움.


내게는

예고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가장 큰 두려움을 낳는다.




>

[system] alert_emotion: excessive_signal_detected

[시스템] 감정 센서에 과도한 반응_신호 감지

>

>




예를 들자면,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에서

활화산처럼 터지는 아빠.


또,

타인이 표출하는 감정.

그 중 가장 큰 공포는

분노.


가장 색이 짙으며

날이 선 것들.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내가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리기를

간절히 소원하게 될 정도니까.


차라리

총이나 칼 같은 무기가

덜 무서울거야.





아빠가 폭발하면

그 누구도

아빠의 화를 잠재울 수 없었다.


그의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맞곤 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우리를 벌주던 아빠가

술에 취해 잠들고,

다시 잠에서 깨어


‘팔 내려’라는 말을 할 때까지

밤새 무릎을 꿇고

손을 든 채로 버티곤 했다.



>

[system] error_log: no_reason_defined

[시스템] 오류 로그 – 징계 사유 없음, 목적 미지정

>

>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난 어떤 이유로 혼이 났고,

왜 밤이 새도록

벌을 서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팔이 너무 아프고

다리가 저리다 못해 혈관이 막혀

심장이 터져 죽어버리거나

아빠의 화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아빠는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 또한 의문을 가진 적도 없다


술을 마신 날엔 특히 그랬다.


아빠가 술에 취해 코를 골기 시작하면

엄마는 소근소근 작은 목소리와

곁눈질로 그를 경계하며

팔을 몇 차례 주물러 줬다.


그러다 들켜서

탄성이 있는 초록 파리채가

네 동강이 날 때까지 맞기도 했다


꿇어 앉은 허벅지 위로

도끼빗이 날아들어

피를 보거나


체벌이 끝난 뒤에

부러진 파편을 주워 모으다

우는 소리에 발로 채인 적도 있었어.






아빠가 어느 정도로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는지

말해볼까?


나와 엄마, 동생. 그리고,

그 즈음 키우던 흰 어미 개와

그 개가 낳은 아기 강아지에게

선물한 공포를 얘기하자면ㅡ



>

>

[system] fear_trigger: minor_event_detected > response = overload

[시스템] 공포 반응 – 사소한 사건으로 과잉 반응 발생

>

>


강아지들이 밥상 근처에서 추근대거나

강아지가 밥을 흘리고 먹은 것과 같은

사소한 이유로 아빠는

우리에게 불같이 화를 내거나

식사 내내 술을 마시며 때렸다.


어느 주말,

점심식사를 하다 말고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엄마는,

고기반찬 근처를 맴도는 강아지가 가여워

문이 닫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손톱만큼 잘라 먹였는데,


아빠가 방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다.


강아지들은 벌벌 떨며

문자 그대로 “헉”소리를 내고

밥상 밑으로 도망쳤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생존본능.

포식자에게 위치가 발각된,

먹이사슬의 말단 생명체


나 또한

밥숟가락을 떨어뜨리고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아빠가 불같이 화를 내며

우리를 때릴 줄 알았는데


그날은

강아지가 사람처럼

“헉”소리를 냈다는 사실이

재밌다는 듯,

깔깔 웃으며 넘어갔다.


분명 맞지 않았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제 돌변할지 예측하지 못해서

잠에 들기도 무서웠다.


늘 그렇게 쫄아붙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ㅡ

유독 잠이 많은 엄마가

당신보다 일찍 일어나

개의 대소변을 치우지 않았거나

강아지가 물을 마시다 흘린 것,

혹은 습식 사료와 같은 먹이를

당신 맨발로 밟았다는 이유를 들며,


나와 동생이 학교에 가고

엄마가 잠들어 있어

어쩌지도 못하는 순간에


어미 개를 현관문 밖으로 내몰았다.

그 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밤새 울며 동네를 뒤졌다.


그 어미 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엄마는 불안해하며

남겨진 아기 강아지를

삼촌에게 보냈다.


그 애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며칠 내내 울었다.






>

[system] guilt_memory_triggered

[시스템] 죄책감 기억 회상됨 – 정서적 과부하 감지

>

[system] remorse_loop_activated

[시스템] 자책 반복 루프 가동 – 감정 잔류 중

>

>

[system] self_punishment_mode: recursive

[시스템] 자기 처벌 모드 – 무한 루프로 전환됨

>

>

>


아기 강아지야, 엄마 개야.

내가 대신 뼛속 깊이 미안해.


죽어서라도

벌은 내가 잔뜩 받을게.


영원한 불지옥에 갇혀

다음생을 맞이하지 못한대도 괜찮아.


그치만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내가

너무 어렸다는 말 밖엔 할 말이 없어.

근데, 그따위 이유를 들며

이해를 바라지는 않아.


위협하거나 때려도

입질 한번 없던

천사같은 너희를 나는

지금껏 잊지 않고 살아.


함께 사는 내내 슬프게 해서,

무섭게 해서, 아프게 해서.

죽도록 미안해


혹시 내가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면

내가 개로 태어날게.


너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복수해도 좋아.


평생을 긴장과 불행 속에 살면서

실낱같은 다행만을 기다리더라도ㅡ


나는 웃는 얼굴로

꼬리를 흔들게.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system] posture_pattern: curled_defense_enabled

[시스템] 방어 자세 활성화 – 어깨 말림, 상시 위축 상태

>

>


그 때문일지도 몰라

내 어깨가 안쪽으로 잔뜩 말려 있는게.


어떻게 해도 구부정한 자세로

항상 움츠러들어 있는 것은.


그래도

아빠를 미워하거나

이해하지 못해서

대들어 본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다.


그 안에서 자라난 무력감은

결국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

[system] logic_chain: overprocessing

[시스템] 과도한 분석 프로세스 감지 – 사건의 선후 관계 재정렬 시도

>

>

>





모든 걸 수용하고,

모든 걸 이해하며

나와 타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의 순서를

줄 세우고 해석하려 드는ㅡ



마음이 자라는 것을

스스로

싹둑, 잘라버린 부족한 어른



지금까지 내 마음을 돌보고

무수히 많은 상담 센터와 약물로도

지우지 못한 강박.


남들 눈에는

내가 타고나길 착해서,

남을 뼛속까지 이해하는

천사처럼 보일지도 모르지.


친구들은 나에게 종종 농담처럼 물었다.


“아람.보살이야?”


그게 아니야.

나는


설계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로

고질병을 안고 태어난

기계 같은 거야.


고장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형태로,

이제는 리콜 조차 불가능한 빈티지.






>

[system] emotion_filter: resentment_block_enabled

[시스템] 감정 필터 – 원망 차단 기능 자동 적용됨

>

>

>



나에겐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사건의 ‘이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느꼈을

타인의 감정을 ‘수용’ 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거든.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무너졌기 때문이야.


무한한 수용으로

‘원망의 대상’이 제거되어

남은 과녁은 나 하나.


결국 그 원망의 칼 끝은

돌고 돌아ㅡ


나를 향해 날아들고야 만다.



결국 끝없는 자살인 거야.

내 자아는, 영원히 반복되는

투신을 하고 있는거지.






머리에서 마음으로 번져가는 감정의 불에

수용이라는 찬물을 끼얹어 꺼버리는 것만이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였다.


그런 불행이 날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었으니까


어쩔 도리가 있나





>

[system] survival_protocol: emotional_shutdown > active

[시스템] 생존 프로토콜 – 감정 차단 모드 가동 중

>

>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검은 바탕에 흰색 네온사인 빛으로

라인 드로잉 된 사람의 형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일정한 배열로 수백, 수천명이 줄지어

뛰는가 싶으면 걷고,

걷나 싶으면 통통 튀었어.


마른가, 혹은 뚱뚱한가

길쭉한가, 짧은가


형태를 정의하려고 들면

종잡을 수 없도록

빠르게 형태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 무렵 유행했던

‘월리를 찾아라‘ 퍼즐북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뒤엉켜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며

나를 비난하는 모습과

소음이 들렸다


자꾸 눈 앞에 떠올랐다

그들은 밤새 날 괴롭혔다.


낮동안 보내는 일과 중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검정 칠판에

흰 분필로 빠르게 새겨졌다.


감정적으로 힘들거나 몸이 지치면

거울로 본 글자처럼

반전된 모양으로 적히기도 했다.




반전된 글씨를,

정방향 글자를 적듯

능숙하게 써 내려갈 정도로


그것들은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것을

특별한 능력인 양

자랑한 적도 있다.


좀 웃기긴 해.

고작 자랑한다는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거잖아


유일한 자랑이

반대 모양의 글자를

빠르게 쓰는 능력인게


웃기잖아.





그 무렵의 나는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남의 감정이나 기분은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정리하듯

색깔별로 착착

예쁜 모양으로 개켜

정리하는 것이 그렇게나 능숙했으면서.




>

[system] visual_noise: perception_distortion_logged

[시스템] 시각적 노이즈 – 인식 왜곡 기록됨

>

>


아마 그런 것들은 내 뇌가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 없어서

보여준 이미지였을지도 모르지


세상에서 제일 작은

네온 싸인 전시회.


그 안엔

주인없는 감정 도큐멘터리





나 이외에

누구도 듣거나 보지 못하는 그것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또한 이것이 정신병이었다면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정신분열?


아니면 —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뇌가 택한 방어 기제였을지도.






>

[system] diagnosis: undefined_state

[시스템] 진단 불가 – 상태 분류 기준 없음

>

>

[system] seed_불안.root: active

[system] behavior_pattern: adaptive_fear_protocol

[system] response_mode: 수용_loop

>

[system] empathy_engine still running...

[system] 감정 도큐멘터리: unfinished

>

[SYSTEM] user_ARAM session Alive

>

>

>


아람|writing from the undertow.

© Written by Aram.thewave, 2025.

Copying is prohibited. This work belongs—

to the artist’s heart. please respect its ori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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