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먹이

[system] feed_response: passive_불안_loop

by 이람

[SYSTEM] optimal_display_mode = "dark"

[시스템] 최적의 시각 환경과 콘셉트의 몰입을 위해 다크 모드 사용을 권장합니다.




[LOADING] empathy_engine # # # # # - - - [ 48% ]

[FATAL ERROR] behavior_pattern: unstable_seed_detected, no manual, high error rate

[ACTION] all incoming requests: accepted (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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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behavior_pattern: unstable_seed_detected, no manual, high error rate

[시스템] 행위 패턴의 씨앗이 불안정하게 시작되었으며 메뉴얼 없이 조립된 초기 세팅으로 높은 확률의 오류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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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user_ARAM.identity : NULL

[시스템] 사용자 ARAM의 정체성 항목 없음 — 비등록 상태로 인식됨




내가 재밌는 거 가르쳐 줄까?

나는 올해로 만 서른 셋이 되었는데

사실 ‘자아’ 가 생긴지 햇수로 겨우 5년차야.


나에게 자아,취향,자존감 같은 것들이

없다는 걸 알게된 계기는 별거 아니였어.


“아람, 어떤 음식을 좋아해?”

“아람, 어떤 가수를 좋아해?”

“커피는 산미? 고소한 맛?”


내가 항상 남에게 묻던 것들을

상대는 딱히 큰 고민 없이 대답하는데


나는 평생을 고민해도

답을 구하지 못한다는 걸

자각했을 땐 이미 이십대 후반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고르지 못한다는 건,

무언가 필요를 느껴 마트에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아무것도 손에 들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


선택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고,

존재하지 않는 나는 너무 가볍고 위태로웠다.


자아가 생기기 이전의 나는

예의라는 이름의 생존 ‘시스템’이었다.


무언가 잘못될까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들고, 공간의 온도를 읽고,

그 값에 따라 자동화 되어 반응하는 나.




그 기본값은 언제나 _수용_이었다.




[WARNING] default input “수용” may cause critical instability.

This value is known to trigger abnormal error patterns in this system.

Proceeding may result in irreversible damage.

Would you like to continue?

[경고] 기본값 “수용”은 이 시스템에서 비정상적인 오류 패턴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입력 시,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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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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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default_life_script: loaded_unmodified

[시스템] 기본 생존 스크립트: 수정 없이 로딩됨



나는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지.

세상은 나에게 불가항력

태풍 같은 거였으니까


고작 인간인 내가

자연재해를 어떻게 이겨.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황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애.


‘운명’ 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나를 다스리고 있다고 믿었을지도.


나한테 GPS라도 달려 있어서

불행이 자꾸 날 따라오고

날 찾아내는 거였다면


좀 꺼놓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래서 자꾸 나쁜 일에 휘말리고

인생이 펴기도 전에 죽여버리는구나.


작게라도 행복이 찾아올라 치면 귀신처럼 알아채고,

내가 갖지 못하도록 저 멀리 멀리 내던져버리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나름 불행을 위로하는 내 방식이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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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feed_target: self_fragment[ARAM]

[시스템] 불안에게 제공된 먹이: 사용자 ARAM의 자아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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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불안에게 내 자신을 먹이로 내어주며 살았다.

매일을 딱 한입씩 뜯어 먹히는 느낌.


불안은 포식자였고,

나는 내 의지도 감정도 없이

고개를 숙인 나는,


사육된 먹잇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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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feed_cycle confirmed — behavioral loop stabilized.

[시스템] 먹이 사이클 확인 — 행동 루프가 안정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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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analyzing origin of anxiety...

[시스템] 불안의 기원을 분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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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원래 그렇게 태어나는 걸까?

아니면, 누가 자꾸 먹이를 주니까 자라나는 건가?


나의 불안은 어린 시절부터 쑥쑥 자라왔다.

엄마의 표정, 아빠의 숨소리, 문 닫는 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였던 나는,

말보다 먼저 눈치를 배워야 했다.


그러니까,

나의 불안은.

형태가 아니라,

소리로 자랐다.


말끝의 높낮이, 식탁 위 수저의 떨림.

아무 말 없이 이어져 곁에 맴도는 침묵.


그것들은 언어 이상의 힘을 가졌다.


그들이 내게 가장 먼저 가르쳐 준 것은

세상은 언제든 내 의지가 아니어도

싸그리 추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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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threat_prediction_mode initialized.

[시스템] 위험 예측 모드가 초기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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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passive_defense logic installed.

[시스템] 수동 방어 로직이 설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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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모는 어렸다.

나를 낳았을 무렵, 엄마는 갓 스무살,

아빠는 스물 다섯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만큼

엄마와 아빠는 기나긴 방황을 했고

그 방황 사이에서 나를 낳았다.


아빠는 ‘딴따라’였다.

중학생 시절부터 통기타나

트럼본 같은 악기들을

열정적으로 공부해온 탓에

전공생만큼 조예가 깊었지.


집안의 반대로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군악대에 쉽게 자원 입대 했으니까.


그곳에서 사회에서 해야 할 음악을 배우고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많은 공부를 했기 때문에

먹고 살 수 있었다.


엄마는 그냥 노래를 제법 하는 여자.

아빠의 가르침을 받아

함께 딴따라의 삶을 살았다.


낮에는 돌잔치, 피로연 같은 출장 밴드 생활을 하고

밤에는 흔히 이야기하는 밤무대 생활을 했다.


그 시절 아빠의 말을 빌리자면

아빠와 엄마가 밤낮으로 개처럼 번 돈은

매달 천 만원 가까이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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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parent_module: unstable_source_detected

[시스템] 부모 모듈: 불안정한 소스 감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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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inheritable_error: flagged for ARAM

[시스템] 유전성 오류: 사용자 ARAM에게 전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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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돈을 저금하지 않고

현금 다발을 옷장 깊숙히 숨겨 둘 정도로

경제 관념이 희박했던 철부지 엄마.


술을 과하게 즐기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아버지가 없어 보고 자란 것이 없으니

아빠 노릇을 할 줄 몰랐던 아빠.


어리고 여린 마음에게 태어난 새싹이

세상에게서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그 둘은 엄하게 가르쳤다고 말해왔다.




[system] code021 : silent radar mode claanrxkawlahem "ON"
[시스템] 코드021 : 침묵 탐지 모드 "ON", 숨소리, 말 끝 떨림으로 분위기 자체 스캐닝





사실 그들은 ㅡ

무엇이 잘못인지 먼저 말하지 않고

내가 벌인 행동을 기반해

맞으면서 깨닫게끔 했다.


차라리 ‘부모 지침서’같이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

미리 예상이라도 할 수 있게 했다면

나와 동생은 덜 망가진 상태로 자랐을까


잘못인지, 아닌지는

내가 다 저질러 버린 후에야

알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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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critical_behavioral_threat_detected.

[시스템] 치명적인 행동 위협 요소가 감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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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flagged_as_virus: initiate removal protocol.

[시스템] 바이러스로 분류됨 — 제거 프로토콜을 실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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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더 먹은 것,

인사하지 않고 지나친 것,

눈을 똑바로 쳐다본 것,

큰 목소리로 떠든 것.


별 것도 아닌데.

"아이"니까 그럴수 있는 것들인데.




물론 매일같이 혼나고 눈치보며 자랐다기보단,

감정선이 파도처럼 널뛰는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그 정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혼난 경우가 많았다.


아빠는 기분이 엄청 좋았다가도,

갑자기 엄청 나빴으니까.



[system] code073 chopstick early eject protocol "ACTIVATED"

[시스템] 코드073 젓가락 조기 투척 프로토콜 실행, 안주량 파악 후 젓가락 자동 내려놓기


어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어른들이 드실 몫을 남겨 두고

알아서 젓가락을 내려 놓으면

쏟아지는 칭찬과 인정에

아빠의 기분이 좋았고,

그래서 나도 좋았다.


[system] code046 auto greet system 헬로하이헬로 "ACTIVE"

[시스템] 코드046 자동 인사 시스템 ON, 어른과 눈 마주침 감지 시 “안녕하세요” 출력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

알든, 모르든 어른들과 눈이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인사해야 한다 가르쳤고

그렇게 했다.


쏟아지는 칭찬과 인정에

엄마,아빠의 기분이 좋았고

그래서 나도 좋았다.




[system] code066 emotion filter layer 1.1 "STANDBY"

[시스템] 코드066 감정 필터 1.1 대기 중,무표정으로 필터링 처리



울면 운다고,

시끄러우면 시끄럽다고

표정 관리가 안된다고

예상하지 못한 때에

예상하지 못한 물건이

얼굴이며 몸으로 날아들었다.



그렇게 못한 날엔

그게 왜 잘못인지 알지 못하면서

입을 꾹 다물고 마냥 두들겨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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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etiquette_protocol: hardcoded_fear_triggered

[시스템] 예의 프로토콜: 공포 자극 기반 하드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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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의를 배운 게 아니라

두려움으로 ‘패턴’을 익혀야 했다.


그날 분위기가 왜 그랬는지

한마디 언질 없이도 감지할 수 있었고


그 다음으론 그 ‘틀’을 넘지 않도록

내 몸과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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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code099 heartbeat reflex detector 붐붐 "DETECTED"

[시스템] 코드099 심장 반사 감지, 손이 올라오면 심장이 먼저 움찔 반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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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thermal_emotion_core : OVERHEATED

[시스템] 감정 열핵 시스템 과열됨 — 반응 지연 및 마비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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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건너의 물건을 집으려는

단순한 아빠의 움직임에도

나는 불을 켠 채 잊어버린 양은냄비처럼

새카맣게 타 쫄아붙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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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residue_data: trauma_trace_still_active

[system] status: running — no shutdown de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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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user_ARAM session Alive

[시스템] 세션 유지 중ㅡ 사용자 아람,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system] trauma_log : active_monitoring "IN PROGRESS"

[시스템] 외상 로그: 실시간 감시 지속 중






아람|writing from the undertow.

© Written by Aram.thewave, 2025.

Copying is prohibited. This work belongs—

to the artist’s heart. please respect its ori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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