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불안에게.

[system] external_reference: “당신”

by 이람

[SYSTEM] optimal_display_mode = "dark"

[시스템] 최적의 시각 환경과 콘셉트의 몰입을 위해 다크 모드 사용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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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ADING] empathy_engine # # # # # - - - - - [ 48% ]

[FATAL ERROR] self_value not found

Searching in external validation sources...

[ACTION] all incoming requests: accepted (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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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현재까지 살아온 삶을

한 문장, 혹은 단어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길고 긴 인생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올해로 만 서른 셋, 아람.

나는 말할 수 있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상품이 나오는 자판기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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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kindness_module_running_(priority: MAX)

| [작동명령] 무한 친절 모듈 실행 (우선순위: 최대 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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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버튼을 누르면

친절과 다정이 한가득 나오는

단어 그대로 자판기였음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람, 나 이것 좀.”

“아람, 나 아기 하원 좀.”

“아람, 나 돈 좀 빌려 줄 수 있어?”

“아람, 하는 김에 이것도.”




부탁해오는 상대가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혹은 부탁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어.


항상 ‘무리’해야 마음이 편했으니까.

그래야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 같았거든.




거절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내가 그것으로 불편을 야기했다는 생각이 들면,


영원히 침대 머리맡에 놓인 불편한 마음이

나를 계속 괴롭히고 힘들게 했으니까.

정작 상대는 아무렇지 않을텐데,

나는 잠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였으니까.




차라리,

무리해서라도 돕는 게 나았던 거지.



나는 단순히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웠어.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운 공포.


그래서 타인 또한 나와 같이

거절당하는 일을 두려워할 거라고 믿었고,


상대가 불편함을 느낀다는 걸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고

내가 먼저 맞춰주면 된다고 생각했어.


내가 맞춰주면, 서로 덜 아프겠지.

내가 불편한 것보다,

네가 불편하단 사실이 날 더 불편하게 해.






나만 배려하고, 나만 애쓰는

그런 일방적인 관계 안에서

무엇보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그 불편의 이유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나를 난도질하며 죽이고 있었던 거야.


그 관계 안에서 당장 질식한대도 이상할 것이 없지

혹시라도 내 거친 숨소리가 거슬리기라도 할까봐.

겨우 겨우 얕은 숨을 쉬었으니까.






생색을 내거나

불편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티내는 걸

영 못하던 나는,


편식이 심한 어린애처럼 꾸역꾸역,

혼나는 게 무서운 애처럼

사사건건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죽은 듯이 그렇게 살아냈다.



[WARNING] empathy_overload detected initiating auto-defense protocol | [경고] 감정 수용 한계 초과 감지됨 자가 방어 프로토콜 자동 실행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맛있는 쌀밥보다

눈칫밥을 더 많이 먹었던 거야.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알아서 고봉밥으로 떠다 먹고 살았으니.


유년시절의 나를 청년으로 길러낸 건

결국 눈칫밥이었던 거야.


타고난 천성은 바꿀 수 없는 건지

여전히 조금은 그렇게 살고 있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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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 boundary_firmware installed

[STATUS] rejection_handler: online

[업데이트] 경계선 펌웨어 설치 완료됨

[상태] 거절 처리 기능 정상 작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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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도 나이를 꽤 먹었고,

불편한 부탁을 에둘러 거절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이걸 배우는 과정에서 많이 데이고, 다치기도 했어.





그런 나에게 돌아오는,

사람들의 평은 대부분 비슷해.


‘착하다’, ‘성실하다’ 같이

온기 없이 이미 생명을 잃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말들.


그들의 죽은 언어에

이리저리 긁히고 생채기가 나는 것보다

나는 상대가 얼마나 만족했는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가 더 중요했어.


그저 그런 것들일 뿐인데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는 건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내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종종 내게 말했다.


“아람, 넌 참 착해.”

“너는 배려심이 참 많은 애야.”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아람, 넌 참 좋은 사람이야.”



이런 말들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절절 끓는 사랑을 받은 기분.



[NOTICE] emotional_reward is temporary

[SYSTEM] joy_experience unstable

| [알림] 감정 보상은 일시적입니다

| [시스템] 기쁨 감각 상태 매우 불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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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야.

어린 시절 주말 특선 애니메이션에서 본,

활기 넘치는 휴양지에

귀빈으로 초대받은 기분이 돼.


“아람님, 파라다이스 00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코코넛 상의와 야자수 치마를 입고

빠짐 없이 떼로 몰려 나와 현수막을 든 채로

환호성과 함께 챠카챠카ㅡ 마라카스를 요란하게 흔들며

가장 성대하고 뜨겁게 환영해주는 거야.



그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얼마나 눈물나게 부럽던지!


마치 내가 이곳에 오기를

평생 소원으로 삼았던 사람들처럼.

등장만으로 극진한 환영을 받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나 봐.


그래서,

누구라도 내 인생에 끼어들면

그게 접촉 사고 같은 찰나라도

그 사고로 내가 얼마나 다치건

그게 그렇게 반갑고 기쁘더라.


황무지에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을

난생 처음 발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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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알지?


황무지에서는 식물이 자랄 수 없어.


깨끗한 물을 양껏 주고,

좋은 양분만을 먹이며,

최선을 다해 아끼고 애지중지 돌본대도

결국엔 조금의 의미도 없는 일인 거지.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주건,

엉엉 울며 영원히 떠나보내건—

둘 중 하난 반드시 해야 하잖아.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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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P] external_output: active / internal_value: null

| [반복] 외부 반응 출력 활성화됨 / 내부 자가값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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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나는 빈 깡통 같았어.

근데, 주먹만 한 구멍이 난 철제 분유통.

채우고 채워도 끝이 없었어.


항상 배고픔에 허덕여야 했어.


그렇게 배고픔에 평생을 허덕이던 내가

제 살을 깎아 먹는 일이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기꺼이 내어주면서

딱히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어.


인정이 고팠나.

그저 웃으며

“아람, 네 덕분이야. 항상 고마워.”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가

나라는 깡통을 채우기엔 충분했어.


커다란 구멍이 나 붓는 족족 비워지면서

찰나라도 가득 차는 순간은 분명 있으니까.

그 순간만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

학생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얘기잖아.


근데 만으로 세어도 서른셋이나 먹었으면서,

아직도 100% 이해하지 못했어.



사람이건, 아니건

나 이외의 생명은 너무 귀하게 여겼어.

마른 오징어에서도 물이 나온다며?

노력을 쥐어짜며 최선을 다해 아껴.


반면,

정작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과연 나는 당신처럼

가치 있는 사람인지는

전혀 모르고 살아.


이런 내 너덜너덜 넝마 같은 진심을

알게 된 사람들이나,

우연히 미디어에서 마주치는 마음 관련 컨텐츠가

입을 모아 말해왔지.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근데,

평생에 걸쳐 깊게 생각해도 말이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방법 같은 거

아직도 잘 모르겠어.


차라리 마음 편하게

값을 치르고 살 수만 있다면—

얼마를 지불하든,

구입하고 싶을 정도야.




그래도,

이제 한 가지는 알아.


나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슬픔이 될 수 있다는 것.




본디 온기를 가진 생명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송두리째 지울 수는 없는 거야.

잔디 위에 앉았던 것처럼

무조건 흔적이 남아.


잃어보니 알겠더라고.


그렇게 귀히 여기며

아끼고 사랑했던 존재가

기화하듯 사라진다는 건,


사라진 방식과는 전혀 관계 없이

너무 큰 상실이자, 상심이더라고.


사고로든,

무엇으로든.



조금이나마 나를 채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다시 곱씹기도 힘든 기억으로 변질되는 걸 느껴.


모든 순간에

더욱 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

처절한 후회만 남아서,

나를 너무 아프게 해.



사실,

서른이 되기 전에 죽고자 했던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작든, 크든 슬픔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야.


웃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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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ROR] reason_for_survival: not self

external_reference: “You”

[오류] 시스템 가동 사유: 사용자 본인 불일치

외부 참조값: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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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이유가 ‘나’때문이 아니라

철저한 타인인 ‘당신’ 때문이라는게.


사고로든,

……..무엇으로든.





[PROCESS] all emotional threads terminated

[SHUTDOWN] final signal received : “무엇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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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DOWN] empathy_engine shutting down

[SYSTEM] user_ARAM session closed





아람|writing from the undertow.

© Written by Aram.thewave, 2025.

Copying is prohibited. This work belongs—

to the artist’s heart. please respect its ori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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