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2. 홀로 런던
낙엽이 사방으로 날리자 내 맘도 덩달아 나뒹굴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 게 좋았다. 날리고 내리는 이유를 온몸을 통해 느끼고 싶은 나였다. 하지만 자연스러움에 이별이 포함된 적은 없었다. 그저 ‘이해’라는 것이 조금 더 사랑한 사람의 몫으로 남겨지는 것,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느껴질 뿐이었다.
의식의 흐름이 낙엽을 따라 굴러갔다.
리더기 서비스센터 ‘나노사’에는 직원이 한 명뿐이다. 다행히 줄이 길진 않았다.
"이상하네, 스캔이 안 되네요. 열어봐야 해서 시간이 좀 걸려요."
일주일씩이나?
회사 일보다는, 휴가를 어떻게 버텨야 하나 싶은 허탈감에 멍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뇌파 측정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찾아들었다.
감정을 통제당하는 건, 비록 순간이라 해도 불쾌한 작업인 건 마찬가지였다. 감정의 바다에서 현실이란 육지로 돌아오는 획기적인 기술이라지만, 과연 그렇게 해서 될 일인가 의심스러웠다.
내 목적은 더 분명해졌다. 난 드론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달렸다. 출국심사까지 화상 오토 패스로 끝마친 상태. 두 번 다시 얻기 힘든 기회란 걸 알고 있기에 마음은 더 부산했다. 그런데 기내에 들어앉고서야 알았다. 리더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 ‘홀로’를 대체할 것을 당장 찾아야 했다.
순간, 그게 어제 읽다만 책이라는 생각에 괜스레 심장이 조여 왔다.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놔두고 나왔던 터이다. 얼른 코트 주머니를 뒤적였다. ‘인덱스’가 손에 잡혔다. 리더기를 살 때 얻은 거였는데 스케줄러나 간단한 노트로는 괜찮았다. 둥글게 말려있던 스킨을 조심조심 펼쳤다.
"어? 이건 그 마켓?"
‘모서리’ 폴더에 빈티지 마켓 정보가 보였다. 이미지 파일도 보였는데 그건 열리진 않았다. 어차피 가서 보면 될 일이었다. 대신에 언제부터 알고 지냈었나 싶은 사람들을 정리하며 비행시간을 때웠다.
턱! 터덕! 크그윽! 우우웅~
비행기 바퀴의 마찰음에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난 갑자기 떠난 여행에 짐이 없어서 금세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기내에 갇혀있던 무겁던 공기가 몸에서 걷어지는 기분이었다.
런던.
뉴욕 북아트페어 같은 분위기의 상점들이 여기 근교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몇 년 전에 와봤던 곳이다. 여긴 이 시대에 종이책이 존재하고 그나마 대우를 받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보여야 할 빈티지 마켓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잘라먹는 영어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었다. 분명 내 인덱스에도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니.
차츰 어둠이 찾아들고 시계탑 빅벤에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난 허탕 친 기분으로 카페에 넋을 빼고 앉아 인덱스를 무심히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순간 깜짝 놀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검지 손톱의 색깔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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