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 플랫 캡
빈손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내내 손톱이 정상으로 돌아온 이유가 뭐든 어쨌든 귀찮은 일 하나 덜어낸 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띵!
때마침, 나노사에서 방문해 달라는 반가운 문자가 도착했다.
감정 제어가 가능한 물질이 발견되고, 그것과 기술을 접목한 e북 리더기 ‘홀로’.
리더기로 전송된 이미지를 확인하고 싶어 난 바로 서비스센터로 갔다.
"방전이에요. 다른 문제는 없어요. 충전이 좀 오래 걸렸다는 것 빼곤."
마치 로봇처럼 나를 대하던 직원은 이번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리더기를 건네주었다.
‘홀로’는 멀쩡해 보였다. 한 가지만 빼고.
전원은 꺼져있는데, ‘위대한 개츠비’를 떠오르게 하는 플랫 캡 스타일 모자 모양이 보였다.
그가 곤란해한 이유였다. 분명 충전 전엔 없었던 것이라 그도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손가락을 대니 밝은 빛을 내며 리더기가 켜지고 중저음의 멜로디가 페이드 인 하다가 바로 페이드 아웃으로 사라졌다.
"어?"
직원의 외마디.
내 손가락에 반응한 것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화면에 플랫 캡이 생겼다.
자세히 보니 ‘B612’라는 이름도 보인다. 조심스레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더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해킹당한 걸까?'
당혹스러움에 소리가 튀어나왔다.
"홀로!"
[네, 아라]
휴우, 귀에 익은 소리에 다행이다 싶었다. 찜찜했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모처럼 만의 휴가는 런던을 다녀온 것으로 위로했다. 그 순간 손톱이 궁금해졌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끼고 사는 시대, 종이책에 반응하는 몸으로 시선을 끄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 정상으로 돌아온 손톱이 좀 반가웠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종이책에 또 손이 갔다. 역시 절대적인 건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손톱은 한동안 괜찮았다.
일상도 그대로였고 나는 여전히 괜찮은 듯 사무실에서 묵묵히 시간을 보냈다.
"아라씨, 별일 없으면 영국 출장 괜찮지?"
듣기 싫은 부장의 목소리가 고요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래도 영국인데..’하는 부장의 생색이 시끌시끌 소음 속에서도 도드라져 들렸다.
다시 영국행.
비행기 창밖으로 구름이 빠르게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홀로’를 꺼내 미팅 일정을 체크하는데 역시나 플랫 캡으로 눈이 갔다.
어느새 착륙 준비 안내가 기내에 퍼지고 있었다.
템즈 강변에서의 미팅.
출장만 아니면 멋진 저녁이었다. 난 얼른 일정을 끝내고 빈티지 마켓을 찾을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바쁜 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어스름해진 길가 골목으로 발광하고 있는 낯익은 캡 모양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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