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7. 종이책
나를 찾았다고 호들갑 떠는 몰리의 뒤로 무심한 듯 서 있는 그가 보인다.
디렉, 이 로봇의 이름.
그가 아니었다면 이모션피크를 타고 어디로 갔을지 몰랐을 거라고 했다.
그는 차분하고 조용해 보였다. 공감 로봇 ‘퍼시’와 같이, 내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 주었다.
그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바닥 크기의 붓을 들어 올려 허공을 가르듯 휘휘 저었다. 아까 얼핏 보았던 기체의 흐름처럼 보였다.
몸을 일으켜 가까이 다가서는 나에게 ‘디렉’은 한 손을 쭉 내밀어 다가오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퍼시’와는 달리 ‘디렉’은 인간으로 치면 츤데레에 가까운 느낌이다. 단호한 그의 손짓은 나를 얼어붙게 했다. 언젠가 느꼈던 차가운 공기가 내게 엄습해 왔다.
"이제 움직여도 됩니다. 아라님."
"아, 나를 아는군요."
"예, 인간, 아라님."
"방금 그건 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종이입니다. 아주 특별한 소재로 만들기 때문에 정교한 작업입니다."
종이를 만든다는 말에 더욱 궁금해져 그에게 더 다가가 앉았다.
"그 소재가 뭐죠?"
"인간의 감정입니다."
도통 이해가 안 되는 내 표정을 본 ‘디렉’이 설명을 이어갔다.
"인간이 만든 종이는 단순히 글을 입히는 것이지만, 감정으로 만들어진 종이는 누가 그것을 읽느냐에 따라 다른 걸 느끼고 볼 수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나니 어쩐지 조금 이해가 가기도 했다. ‘디렉’이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이모션피크에 감정을 주우러 간다는 것이었다.
"혹시 아까 내 몸에 들어온 것이 감정의 조각?"
"맞습니다. 지구에서도 인간은 감정의 조각을 종종 먹습니다. 보이지 않아서 모를 뿐입니다. 다만 이곳에서 먹는 경우 특별한 증상이 없는데 지구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아! 손톱이나 머리카락 색이 변하거나 노화가 빨라지는 증상을 말하나요?"
"비슷합니다."
"어떤 때 감정의 조각을 먹게 되는 거죠?"
"감정이란 친화성이 높은 물질로, 특히 감성적인 인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내가 내 감정을 삼켰다는 건가?'
그때 디렉이 내게 제목이 쓰이지 않은 종이책 한 권을 건넸다.
그리고 ‘캐번’에서 만나자며 가던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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