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le’s Breath: Life’s Quiet Signals
흰 수염 고래는 거대한 바다를 유영하면서도,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쉰다. 그 숨 한 번이 고래의 생존을 이어주는 가장 단순하고도 절박한 동작이다. 바다 위로 올라온 고래가 뿜어내는 하얀 물기둥은 마치 "나는 살아 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문득, 우리도 그 고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면 스마트폰을 켜고, 오늘의 날씨를 본다. 미세먼지는 괜찮은지, 자외선은 높은지, 습도는 어떤지. 이 작은 확인은 우리의 '숨구멍' 같다. 기후의 변화를 감지하며 하루를 계획하고, 옷을 고르고, 에어컨 온도를 조정한다. 편리를 위한 행동 같지만, 사실은 이미 우리는 기후에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숨 쉬는 이 지구는, 여전히 나에게 숨 쉴 공간을 내어주고 있을까? 나는 이 지구의 숨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창사 50주년 기념으로 KBS에서 기획한 『지구 위 블랙박스』는 이런 질문에 대한 나의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었다. 서울, 동해, 태국, 스페인, 제주, 남극 등 전 지구에서 촬영한 500일간의 대장정으로, 2049년에 기후 재난으로 거주 불능해진 지구에 유일하게 남은 데이터 센터 <블랙박스>에 상주하는 기록자가 2023년의 빠르게 파괴되어 가는 지구에서 뮤지션들이 만든 다큐멘터리, 지구에서 음악으로 남긴 그 마지막 기록을 보게 되는 내용의 작품이었다.
그중에 가수 윤도현의 블랙박스는 사라지는 동해 해변을 마주하고 있었다. 과거의 사진과 비교하면, 모래는 수백 미터나 밀려났고, 파도는 익숙한 풍경을 앗아갔다. 그는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이 찬 수조 속으로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 차가운 물속에서 뱉어내는 숨은 쉽게 들리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외면해 온 자연의 아픔이 담겨 있었다. 북극곰이 얼음이 녹는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하듯, 나무가 계절의 빛에 맞춰 잎을 떨구듯, 그도 기후의 변화에 노래로 대답하는 듯했다.
한편, '알쓸인잡'에서는 "다행성 종족"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언젠가 인간이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두려운 건 지구를 떠나는 일이 아니라, 지구에서조차 '감수성'을 잃고 살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든 자연의 호흡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모든 땅은 우리에게 낯선 바다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폴라일지』에서 김금희 작가는 지구의 가장 먼 곳, 남극에서 진짜 '숨구멍'을 발견한다. "마치 지구의 한 꺼풀이 벗겨지는 듯한 아주 커다랗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고래가 유빙 사이로 뛰어오르는 순간을 목격한 그는 그것이 "'살아 있음' 그 자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엔 더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다.
"남극 하면 우리와 먼 곳처럼 들리지만, 막상 여기 와보니 남극의 모든 것이 삶을 관장하고 있었다. 지구의 양끝인 남극과 북극은 세상의 대기와 해류를 이동시키는 아주 거대한 손이었다. 이곳의 변화들이 지구를 휘저었고 우리 일상이 조형되었다."
김금희 작가가 남극에서 본 것은 단순한 얼음 대륙이 아니라, 연결된 지구의 숨구멍이었다. 죽은 자기 몸을 배양분 삼아 자라는 낫깃털이끼처럼, "가장 흔하고 미미한 존재라도 남극을 존속시키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마다 다른 힘과 속도를 지닌 존재들이 분투하며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라는 것을.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매일 같은 시각에 풍선을 올려 하늘을 살핀다는 것에서 그는 "작은 낙관"을 느낀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절망이 아니라 연결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
나는 오늘도, 나만의 숨구멍을 만들며 존재한다. 텀블러를 챙기고,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고, 가능하다면 걸음을 걷고, 초록 식물의 성장과 에너지, 자연의 열기를 느낀다.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오듯, 나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감각하고 반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금희 작가가 남극에서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어서" 그토록 먼 곳까지 갔다고 고백했듯이, 우리도 조금 다른 마음으로 일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구름과 바다와 바람과 식물들이 내게로 와 어떤 것은 지우고 어떤 것은 채워 넣고 있음을 느끼며, 자연의 동력과 빛을 불어넣는 그런 삶 말이다.
가수 윤도현의 블랙박스 기록처럼, 김금희 작가의 폴라일지처럼, 우리의 일상도 조용히 남겨진다.
오늘 내가 어떤 숨을 뱉었는지, 지구의 온기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런 자취들이 모여 미래가 될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 나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그 속에서 조용히 솟구친 고래의 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