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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니마 Jun 16. 2024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심리상담 8회 차에 떠올리게 된 나의 어린 시절에 이야기 - sp심리상담

이번달은 평소보다 훨씬 바쁘게 보냈다

남들은 이 스케줄이면 외로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거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종종 내 몸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공허함에 휩싸인다.


두 달 전부터 심리학박사과정의 선생님과 마음 챙김 심리연구에 참여하게 되어 상담을 받고 있다. 5회 차까지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갈등상황이 주 주제였는데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나니 평온한 감정이 들어 한동안 마음이 좋았다. 그런데 8회 차가 되니 갑자기 공허함이 들이닥쳤다. 상담선생님도 조금 진행이 빠른 편이라고 말하시긴 했는데 이것도 속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상담소에 들어가기 전에 몸이 멍한 듯 내 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발걸음이 느려지는 생각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태가 용어로 있을 것 같은데 내 지식이 부족해 전문적인 말은 잘 모르겠지만 마치 잠들기 전 의식 같았다.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 걸까?




상담실에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오늘은 어떤 주제를 다루어 볼까요?"


선생님 요즘 너무 사무치게 외로워요

저는 이 감정이 든 건 2개월 전부터에요. 마지막 연애 이후 1년간 연애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여겨 노력하지 않았어요. 문득 이제 움직여야겠다 마음먹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선, 소개팅, 카톡연락처 털어서 주변 스쳐 지나간 사람들까지 되돌아보며 남자친구 만들기에 집착하고 있어요.

물론 2달간 3번의 소개팅을 했고 모두 실패예요

그런데 말이죠

이게 연인이 없어서 외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감정 같지 않다는 거예요. 뭔가 다른 느낌이에요.

데이트를 하고 싶고, 꽁냥꽁냥 하고 싶고의 마음이 아니라 몸이 텅 빈 것처럼 외로워요.

종종 저는 텅 비어있는 외로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멍한 상태가 지속되기도 해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원래 이렇게 외로운 건가요? 선생님도 이렇게 외로워요?


선생님의 저의 이야기를 듣고 그랬군요. 라며 공감해 주었다.


"우리가 이렇게 오래 보았는데, 아직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해본 적이 없군요.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 줄 수 있나요?"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사실 집안이 화목하지는 않았어요. 아버지가 도박에 알코올중독자시거든요. 물론 지금도 그래요.

그런데 아버지에 대한 내용은 저의 큰 이슈라 자주 나오는 주제 이기도 해요. 아마 연애가 잘 풀리지 않는 것도 이 부분이 문제겠죠? 그래서 제 연애에 이 부분이 연결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저의 불안정애착발달이 좋은 사람을 놓치게 하는 원인이 될까 두렵거든요.


"그렇군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세요?"


저는 어머니처럼 살고 싶어요. 어머니처럼 살게 되는 게 목표이기도 하고요. 고생 많이 하셨는데, 지금 좋은 분 만나서 동거 중이시고 새로운 가족은 너무 화목해서 제가 꿈꾸던 가족상을 갖추고 있어요. 새로운 가족에 합류하여 가족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도 심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도움도 많이 받고 있어요.


"그게 몇 살 때 일인가요?"


아마 제가 28살 때쯤부터니까 10년 가까이 되었네요


"그렇다면 조금 더 전에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나요? 서울엔 언제 오셨어요?"


서울엔 20살에 왔어요. 춤을 추고 싶어서 왔죠. 그전에는 부산에서 가족들과 지냈는데 집을 떠나는 게 저의 목표이기도 했어요. 너무 가난해서 내가 돈을 벌면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할 것 같은 가장의 마음이 너무 무거웠어요. 경제 활동이 가능한 건 저와 엄마뿐이었거든요. 엄마도 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저도 나이가 어려 아르바이트 급여였죠. 가족에 도움이 된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가장의 마음이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저는 항상 집을 떠나고 싶었어요.


"가장의 마음이라, 너무 어린데 그런 마음을 갖고 있어야 했군요. 언제부터 가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나요?"


어린 시절을 제주도에서 보냈어요.

제주도는 4.3 사건 때 남자가 많이 죽어 여자가 남자를 먹여 살리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제주도 안에서도 제주도 남자는 한량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저의 아버지는 제주도 한량의 대표주자이기도 했죠. 어머니 집안이 좋아 아버지가 월급봉투 한번 안 주셨는데도 집이 꽤 좋았어요. 연못도 있고 화단도 있고 어린 제가 있기에 집도 아주 컸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맞벌이라 저와 동생은 12시가 넘도록 집에 단 둘이 방치되었어요.


"세상에, 그때가 몇 살 때죠?"


그때가 7살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어렸는데 더 어린 동생이 있으니 엄마가 항상 집에 엄마가 없을 땐 제가 가장이라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셨어요. 밥도 제가 만들어서 동생과 먹어야 했고 집 청소도 해놓으라고 교육시키셨죠.

엄마가 없을 때 너는 가장이기 때문에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셨어요.


"아란 씨, 7살짜리 아이 보신 적 있으세요? 요만해요 아주 작다고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저는 계속 제가 가장이라고 생각했는데, 7살은 정말 어리죠.


그 시절 제가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화장실을 가는 거였어요.

일주일에 두 번 전설의 고향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 나면 무조건 이불에 오줌을 쌌죠.

집이 너무 커서 화장실은 혼자 갈 수 없었어요. 그때도 역시 부모님은 집에 안 계셨어요.


가끔은 밥도 만들어 먹어야 했는데 가스레인지가 너무 높아 항상 식탁의자를 끙끙거리며 옮겨 계란프라이, 라면, 소시지구이를 만들어 먹었어요. 다치고 화상 입은 적도 많았죠. 프라이팬이 무거웠어요.


그런데 말이죠. 이 일들이 특별한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술자리에서 여러 번 이야기해왔던 주제라 저한텐 특별하지 않거든요.

이야기가 저의 외로움과 관련이 있을까요?




"한번 그 장면을 기억하며 내 몸을 눈감고 느껴볼까요?"



선생님 저는 몸이 없는 사람이에요

눈을 감으니까 손가락 발가락 말고는 제 몸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냥 저는 없어요.

제 몸은 투명하고 형체도 없어요

그래도 제 몸을 찾아본다면 왼쪽팔에 빨간 선처럼 길게 테두리가 그려져요

그것도 희미해서 느끼려고 집중해야 보이죠.


어린 시절 저의 감정이 이렇게 공허함을 남긴 걸까요?





일렁이는 푸른빛이 보여요

그 빛은 푸른빛과 보라색이 섞여있는 빛나는 너무 아름다운 호수 같아요

심해 같기도 하고

물이 계속 소용돌이치며 일렁이는데 그 일렁임이 너무 아름다워서 보고 싶어요

계속 보고 싶은데 계속 보이지는 않아요


세상에 이런 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호수의 이름은 '아란'이라고 부를래요

이 호수를 저의 텅 빈 몸에 넣었어요

몸이 아름다운 일렁임이 가득 채워졌고 무한히 돌아요.

단단해요.

아름다워요.

보고 싶어요.


"그 '아란'을 한번 그려볼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제 친구가 저를 보며 했던 말이 떠올라요

그래서 그림과 함께 글귀를 썼어요.

이 그림이 참 마음에 들어요.


어린 시절 모든 것을 책임지던 아란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모든 걸 책임지느라 자신의 속은 채우지 못했구나.

그 두려움으로 지내느라 네 마음이 공허했구나

이제 채워 넣었으니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고 함께 의지하고 나누자

귀여운 네 모습을 마음껏 보여주렴

너는 아름답고

단단하고

보고 싶은 존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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