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니마 Dec 31. 2023

모델꿈의 한 발짝 다가서다: 누드로 표현하는 나

나의 진짜 몸을 만나다

이정철작가님의 Dreaming Angel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부터 통통하고 식탐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무용을 하는 데 있어서 체형이 걸림돌이었다. 운동량이 늘어날수록 식욕은 증가했고, 근육량까지 늘어나니 덩치가 생겼다. 늘 체중과의 전쟁이었다.

식욕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마음의 결핍이 문제였던가 싶기도 하다. 항상 배가 고팠다. 금전적인 여유도 없어, 샐러드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시간 여유도 없어 핫식스를 마시며 버텨냈다.

나는 늘 다이어트 중이었다. 그러나 다이어트 기간 대비 체형이 나오지 않았다. 다이어트 약을 먹으며 쪘다가 뺐다가, 끝나지 않는 악순환이었다.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으로 심리도 꽤나 건강하지 않았다.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었다. 살을 찌우는 동안은 참 행복했는데 거울을 보니 여간 못생긴 게 아니었다. 백화점에 가도 맞는 옷이 없었다. 더 이상 이런 굴욕은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한약을 먹으며 두 달을 굶는 다이어트였다.

성공하면 대박, 실패하면 병만 남는다는 지옥의 다이어트였다. 매일 다이어트 실패로 폭식하는 꿈을 꾸었다.

나는 60일 목표 중 23일 단식을 통해 10kg가량 체중을 감량할 수 있었다. 23일 단식은 성공했지만 그 이후에는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다. 거의 1년을 유지하는데 힘썼지만 절반가량 체중이 돌아왔다.

나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냥 '나는 코끼리다'라는 생각으로 반 포기 상태였다.


2차 다이어트에 돌아갔다. 사실 N차로 평생 다이어트 중이다.

끊임없이 유지어터로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그 당시 유행이었던 바디프로필을 계획하고 감량에 돌입했다. 감량은 실패했다. 그러나 이미 선금결제가 된 촬영일정으로 바디프로필은 진행되었다.


아마 그것도 나의 운명이었을까?

내 몸이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사진을 공개하고 나니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기분이 이상했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에 단 한 번도 내 몸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몰라주었지만 그동안 성실히 해오던 운동을 그대로 담고 있는 몸이었다.

주변에서 관심을 갖고 반응해 주자 몸에 자신감이 생겼다.

완성되지 않은 b컷 바디프로필 사진을 하니씩 풀어나갔다.

다이어트 실패지만 찍었던 첫 바디프로필. 물론 보정본!

그리고 점점 옷도 라인이 드러나는 것으로 과감하게 입기 시작했다. 후드티와 무신사 st를 벗어던지고 인플루언서 패션을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체중도 얼굴도 바뀐 건 없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뀐 기분이다. 어디 가도 내 몸에 관한 칭찬일색이었다. 다이어트하지 않은 몸 나름대로 예쁜 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시작된 칭찬이라 근본을 건들까 싶었지만, 결론적으로 매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몸에 애정이 생기고 나서부터 생각해 보니, 나는 꽤 오래전부터 몸에 대한 칭찬을 받아왔었던 것 같았다.

이걸 통해 경험한 게 있다. 기억을 통해 과거는 바꿀 수 있다.

그때는 왜 그 칭찬이 들리지 않았을까?

힙업과 꿀벅지가 유행하던 10년 전 시절에 내가 내 몸을 알았더라면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춤을 그만두고 꿀벅지가 사라져서 슬플 뿐이다.


내 몸에 대한 자신감이 온전한 내 것이 되었을 때, 두 번째 바디프로필을 계획하게 되었다.

부산에 물빛색 스튜디오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수중 촬영 바디 프로필을 모집한다는 문구였다.

두 달간 서치만 한 것 같다. 거리도 멀고, 수중촬영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자신감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촬영 사진들은 너무 예쁜 사진들이 많아 과연 내가 이런 완성도를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촬영 공고가 났다. 용기를 내어 신청서를 보냈다.

쟁쟁한 신청자들 사이에서 내가 됐다!

우연히 만들어 낸 결과다.
도전을 했으니 인연이 만들어진 것이다.

촬영회로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무대를 꾸며놓고 타임테이블에 맞춰 모델이 연기하게 되고 사진작가들은 그 무대를 촬영하게 된다. 사진촬영회라는 분야를 처음으로 경험한 순간이었다.

거이 15명 이상의 작가님이 한자리에 모였던 것 같다.

다들 취미작가님과 프로작가님들이셨다. 정말 사진을 사랑하는 분들이었다. 초보자임을 알리고 작가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사진은 음식인증숏밖에 모르던 내가 한 개의 피사체를 15개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은 너무도 유익한 경험이었다.

사진예술이라는 것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델이 같은 포징을 했는데도 모든 결과물이 다른 신비로운 분야다.

결과물로 오는 사진은 그들의 감정을 담은 예술성에 대한 영혼의 교감이다.

사실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거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작가님들도 대부분 남자작가님들이었다. 그러나 첫 진행을 해주신 스튜디오 대표님께서는 수중예술에 대한 깊이감으로 예술적인 접근에 방해되지 않도록 잘 이끌어주셨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진모델이 된 뿌리가 되는 경험이다.


예술인가 외설인가?

사실 누드는 예술 쪽에서도 항상 빈번하게 화두가 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현대무용이라는 고전성을 띄는 장르 전공자로서 학교에서 배운 예술이기에 성적표현을 지양했던 부분들도 있다. 해외는 이미 이 부분은 논외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직 한국의 국민정서에는 아직도 외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실제 공연장에서 느꼈던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내 첫 촬영 누드모델의 경험은 파워풀했다.

옷을 벗고 몸을 드러내고 선을 표현해 보니 나만의 선에 매료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나한테 반해버리는 나르시시스트 같은 경험이다. 물론 작품으로 완성된 작업물을 보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작업을 하던 과정은 나 이기 때문에 지분 50% 정도의 기분이다.


바디프로필 결국 1년 내내 프로젝트로 총 5, 6회가량 촬영회로 연결되어 전시도 열리고 많은 작가님들과 맺어지는 인연을 경험하게 되었다. 내 전공인 무용과도 결합하여 전 세계 단 하나밖에 없는 개인수중무용공연도 선보일 수 있었다.

수중무용공연 중  - 양승호작가님
누드모델의 경험이 나에게 어떤 선물을 주었나?

일단 첫 번째 거침없이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죽을고 비를 넘긴 사람들은 보너스로 얻은 삶에 대해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라는 글귀를 블로그에서 읽었다. 약간 그런 느낌이다.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을 정도로 나를 공개해 보았으니 내 생활 중에 구설수, 화두에 오르게 되는 경우에도 전혀 타격감이 없다. 이미 예술&외설 주제로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나는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 생겼어도 '나'라는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단단해졌다. 이 단단해 짐은 어디서 나타나게 되냐 하면 생활의 감정표현에서 드러난다. 패션도 튀고 화려해지고 표현도 망설임이 없다. 감정표현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감정의 파동을 인지하게 되는데 드러난 감정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어떤 에너지파동을 내고 관계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업무에 어떤 분위기를 조성하는지 내가 내 던졌을 때 느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며 점점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이 되어간다. 즉 나는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갔다.


두 번째로 '성'적 개념에 대해 훨씬 자유로워졌다. 여기서 '문란하다'와는 완전 다른 개념의 해방이다. '여자는 이래야 해', '남자는 이래야 해'를 떠난 사람으로서 그리고 각자의 성별로서 판타지 없이 순응하게 된다. 이 부분은 연애에서 드러났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저래야 하는 것이 아닌 '여성의 몸의 나로서 이런 것이 좋아'라는 표현으로 주체가 바깥이 아닌 내가 되는 것이다.

뇌가 시각과도 긴밀하기에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몸을 드러낸 후 몸 구석구석 감각적인 부분도 활성화가 된 것이 느껴진다. 아마도 작품화된 내 사진을 많이 접하면서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뒷모습이라던가 아래에서 바라본 모습등을 보게 되는데 감각적으로도 함께 활성화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이 부분은 전문가가 설명해 주면 좋을 텐데 주변에 전문가가 없네. 경험자로서 상당히 달라진 게 느껴진다!


세 번째 예뻐졌다. 카메라 마사지는 분명 있다. 모공과 솜털까지 잡아내는 카메라들 수 대 앞에 서 있으려면 저절로 관리하게 되고 예뻐진다. 잡티 하나하나도 그리 크게 보일 수가 없다. 커버할 수 있는 옷이 있는 것도, 전신메이크업도 없으니 그냥 관리하고 깎아서 만들게 된다. 의식하지 않아도 본능처럼 관리하게 된다. 그 행동이 스트레스 거나 불행하지 않다.

왜 냐하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까진 정말 객관적인 나의 만족감과 평가였다.

여기서 또 달라진 점은 내가 나를 인지하는 주관적인 나의 평가가 가능해졌다. 즉, 나에 장단점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목구비가로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얼굴의 조화가 예쁘진 않다.
몸적으로 역동적인 표현이 가능하고 표정 연기력도 자연스럽다.
노출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도 적고 몸 선 표현도 잘 되는 편이니 이 부분을 살려 모델이 될 수 있다.  

 

시작은 누드였지만 결국 그걸 통해 획득할 수 있었던 모델 이 되는 일

누드로 시작해 란제리, 뷰티, 패션, 캣워크까지 나는 경력모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떤 모델학원 보다도 현장에서 배우는 내공은 따라올 수 없는 깊이로 남는다.

남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전문가의 사진들이 축척이 될수록 어느새 조금씩 사진 예술의 눈을 장착하게 되었다. 활동 베이스가 현대무용이다 보니 무대적인 표현과 극적이고 과장된 부분이 있었다. 사진은 디테일이다. 손끝, 발끝, 각 관절의 자연스러움, 선, 눈, 표정, 입술, 주름과 잔머리, 하나하나의 결까지도 담아낸다. 잔머리에 흔들림까지 담아내는 사진 속에서 나를 선입견 없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의도했던 어떠한 모습을 담기 위해 실험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콘셉트로 수백만 가지의 사진이 나오고 같은 포징에서도 수백만 가지의 느낌이 나온다.


숨은 매력을 찾아 담아내는 즐거움

섬세한 눈빛과 얼굴 표현, 수줍은 소녀의 모습을 담기도, 과감하고 굉장히 적극적인 느낌을 발견하기도 한다. 작가님마다 이상형을 반영하는듯한 작업물이 나오는 것도 즐겁다. 풍경처럼 사람의 선을 담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몸에 일부만 찍기도 한다. 좋고 싫음이 없다. 그냥 그들이 집중하고 있는 그 세계이다.

나는 그 세계에 맞춰 내가 담을 수 있는 표현을 넓혀가는 중이다.

클로즈업 장인 @and.bada 작가님


나의 짧은 손톱, 도톰하고 거친 입술, 끝이 날렵한 코 라인, 반짝이는 광택의 이마, 옅은 갈색의 눈동자, 예리한 시선, 세 개의 가로 목주름, 조그마한 귀, 얇고 제멋대로인 머리카락, 헤어라인을 감싸는 다양한 길이의 잔머리, 하얗고 봉긋한 가슴, 위가 통통한 나의 배, 짧은 상체와 긴 하체. 흉터가 어둡게 자리 잡은 무릎. 핑크닭살이 돋아난 허벅지, 척추선을 따라 내려오는 곧은 등선. 둥글 라운드숄더, 굳은살 가득한 내 팔꿈치. 낮은 발등 발선, 발끝이 모든 것이 다 하나의 작품이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집중해 주는 연인이 있을까?

나를 아무리 사랑하는 나의 연인이라도 나의 그런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을까?

사랑스러운 눈을 가진 연인의 눈빛의 작가의 모델이 되어 누구보다 어여쁜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

그런 마법 같은 일이 매번 나에게 일어나고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의 카드를 꺼내다: 타로로 이별을 대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