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것에는 힘이 있다 4부작
무대 가까이 앞줄 끝자리에 딸을 앉혔다. 출구는 더 가깝다. 앞 사람에 시야가 가리지 않으니 공연에 집중하기 좋거니와 여차하면 조용히 빠져나가기도 좋은 자리. 제일 앞줄에는 보통 단상에 오를 사람, 호명되어 인사할 사람들이 앉는 지정석이다. 다행히 구석진 끝자리에는 아무런 이름표도 붙어있지 않았다.
지역구 문화센터에서 한 해 동안 배움의 결실을 펼쳐 보이는 문화예술제가 열린 날이다. 전시, 연주, 합창, 연극 등의 프로그램 중에 내 수필낭독도 있어 참석한 자리였다. 행사는 두 시간가량 될 터인데 일곱 살짜리가 도저히 못 버텨내면 내 순서만 마치고 살짝 나갈 참이었다. 흥겨운 식전공연이 시선을 사로잡나 했더니 뒤이어 국회의원 이하 단체장 인사 말씀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나는 지루해할 아이에게 이면지 여러 장과 펜을 건네 주었다. 그때부터 녀석은 기지개 한 번 펴지 않고 열심히 공연을 보다가 무언가를 그리다가 하면서 제법 진중하게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 경품 추첨까지 다 마치고 아이가 내게 건넨 것은 공연 스케치였다. 그림에는 장구나 가야금 연주, 태권도 시범이나 합창, 연극하는 모습이 특징있게 담겨 있었다. 물론 엄마가 마이크 앞에 선 모습도 그렸는데, 우리 눈엔 보이지 않던 조명 담당자, 커튼담당자는 물론 무대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한글 자음 모음까지 그려 넣었다. 조용히 앉아 의궤도를 완성한 꼬마 화원의 노고를 우리는 내내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날 넓은 대강당 안 구석자리에 앉은 아이가 나는 마치 '등자뼈'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알게 된 등자뼈는 우리 몸 속 가장 작은 뼈로, 귀로 들어간 음파를 소리 입자로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한다. 고막 입구에서 등자뼈가 소리를 듣고 청각신경에게 진동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마치 노크를 하듯이, 모스 부호를 보내듯이 소리라는 정보를 떨림으로 전환하여 청신경으로, 뇌로 전해준다.
구중궁궐 안에서 얼마나 성대한 의식이 치러졌건 한 자리에 돌처럼 박혀 묵묵히 그림으로 옮겨낸 도화서 화원이 없었다면 우리는 역사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상의 법도가 지엄하고 왕궁의 질서는 더 매섭던 시대에 그들 자신은 기록에 남지 못했지만 그들의 그림은 보물이 되었다. 역사를 현재에 풀어 설명한 통역관이자 안내자 역할을 한 것이다. 쌀 한 톨만한 등자뼈가 수많은 대화와 안내, 중요한 알람과 유용하고도 위급한 음성신호를 진동으로 전달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소리로 된 어떤 정보도 인식할 수 없는 것과 닿아 있다.
걷고 먹고 잠자고 위험을 피하고 생장하는 일은 모든 동물의 보편적 활동이다. 생존을 위한 유기적 작용은 그 자체로도 신비롭고 위대하다. 그러나 생존을 넘어 공존으로 가는 일, 그 일을 하는 조직이나 세포는 따로 있다. 사람과 일부 고등동물에게만 허락된 일, 바로 교감하는 일이다. 말하고 듣고 이해하고 설득하며 화합을 이루게 하거나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게 하는 일. 상생하고 진보하는 활동의 최전선에 등자뼈가 있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부터 우리 모두의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으니 말이다.
때로는 등자뼈가 스스로 제 구실을 거부할 때도 있다. 폭발음처럼 너무 큰 소리가 날 경우다. 이렇게 큰 진동을 그대로 전했다가는 다른 부위의 손상이 불가피해진다고 판단할 때. 이럴 땐 일시적으로 마찰 반대편으로 등자뼈가 움츠러들어서 잠시 귀가 멀게 되지만 결과적으로 여러 부분의 충격과 손실을 막는다. 너무 큰 비극이나 희극 앞에 은유나 추상, 말없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예술가의 고뇌를 등자뼈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연애 고수들의 비법 중, 짝사랑하는 사람을 내 연인으로 만들고자 할 때 그와 함께 무서운 영화를 보거나 놀이기구를 타면 좋다고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가슴이 콩닥거리게 되면 상대방이 좋아서 가슴 뛰는 것과 표면적 증상은 같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사랑 받기 위해, 이해 받고 공감 받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이므로 이런 고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내 가슴이 자꾸만 떨려' 라고 상상해 볼 뿐인데도 왠지 창문 밖 하늘을 아련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은 가슴 속 작은 진동이 내 전체를 흔들어버렸기 때문 아닐까.
움직이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전하려면 글보다는 그림이, 그림보다는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제격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떨림을 전해주고 싶다면 그 역시도 떨림으로 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입체적으로 말하고 듣는 일. '내 맘 알지?' 하는 눈빛으로 그윽이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의미를 담아 슬그머니 손을 잡는 일이기도 하지만, 소리 내어 마음 전하는 것이 제일 확실하고 믿음직스럽다. 내 진심 어린 소리가 상대방의 등자뼈에 닿으면 그가 부지런히 진동을 만들어내 상대의 마음까지 떨리게 해줄 것이다.
움직이는 것에는 힘이 있다. 진동에는 감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