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

사라질 소(消)에 잃은 실(失)

by 이런아란

아이가 저만치 뛰어가는 뒷모습은 언제 봐도 가슴 선득하다. 그 아스라한 소실점이란. 사라질 소(消)에 잃은 실(失). 말만 들어도 무섭다.


흐드러진 꽃 무더기 속으로 아이가 달려간다. 제 키를 훌쩍 넘는 노란 장다리꽃밭으로 스며든다. 반투명해 보이리만큼 가늘고 연한 아이의 머리칼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 말간 얼굴도, 하는 줄 모른 채 흥얼대는 노래도 촘촘한 꽃대들이 다 머금었다. 황우치 해안에서 달려들고 산방산에서 내리꽂는 바람이 인기척이랄 것까지 다 날려버렸다. 이제 나오너라, 소리치면 들릴 법도 한 지척에서 나는 아이가 저기로 편제되고 흡수되고 증발되는 것을 본다. 입술 한 번 달싹거리지 못했다. 아이가, 저 생명이란 것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려는지 알겠으므로.


기적이 손을 써야만 인연이 되는 먼 곳에서 너는 왔고, 내가 너의 까마득한 소실점이었고, 이제 나를 지나 너는 또 아득히 나아가겠구나. 꽃으로, 꽃과 함께, 또는 꽃이 되어서. 바람결에 앙버티지 않고 원심력과 다투지 않고 너는 온종일 어치를 남김없이 논 뒤 순하게 잠들 듯 제 길로 흘러 가겠구나. 어미 선 곳에서 자식의 끝이 보일 리 만무하겠지만 나는 안도한다. 저런 꽃밭에서라면. 저렇게 즐거워서라면. 저렇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손 맞잡고 부둥켜 안는 것이 아이들뿐이다. 볼 맞대고 소리 내 웃는 것이 집에서뿐이다. 이토록 온종일 이토록 오랫동안. 함부로 만지지 못하는 세상에서 오감 다해 마주한 아이들이 새삼 생경하게 귀하다. 사람이 사람을 안아주지도 못하는 세상. 팬데믹으로 인류 절명이 도래하기도 전에 벌써 와버린 디스토피아의 시대에도 나는 아이들이 있어 기쁘고, 아이들 때문에 안쓰럽다. 긴 시간 2미터 아파트 층고 안에 갇혀 지낸 애들을 기어이 제주 바다 앞에 데려가고 싶었다.


하늘과 땅은 죄 없이 온화하였다. 바람이 달고 모래도 고왔다. 사람이 없어지니 자연이 저토록 홀로 정갈하고 아리땁다. 거기에 퍼져 앉아 등허리를 다 내놓고 소꿉 밥을 지어먹는 아이들도 그렇다. 상전이 벽해하여도 거기 앉아 모래를 파길. 다음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는 걸 나는 보지 못하지만 너희는 네 아이들을 데려다 그 해변에 앉혀놓길 나는 기도했다. 성당 문이 닫힌 지금에도. 또는 지금이라서 더욱 더.


졸업식이니 입학식은커녕 새 담임선생님 일면식도 못한 애들이 안됐다. 한 며칠 긴급보육으로 새 유치원에 다녀온 둘째는 죄다 마스크 차림인 친구 얼굴을 분간하지 못할 것이다. 좋은 날, 맑은 날 노래하는 입 모양을 서로 마주보며 키득대는 날, 다시 인사 나누며 얼굴 익혀야 할지 모른다. 이런 비극이 너희 삶에 마지막이 아닐 것이므로 가슴 아프다. 수억만 장의 일회용 마스크 쓰레기더미를 남기고 가서 더욱 무참하다.


그럼에도 너희와 함께 버티는 것이 기꺼우니 나는 염치도 없다. 다음 미래를 꿈꾸라고 주문까지 하여 미안하다. 묵묵히 세금을 내고 묵묵히 2미터 높이의 삶을 사랑하고 묵묵히 자원봉사에 나서라고 나는 너희에게 인계한다. 장다리꽃밭으로 스며들어 꽃 내음 보태라고 여기 선 나는 거기 너를 불러 세우지 않는다. 이 고난을 소실점 너머에 버려두고 다시 멀리, 곧게 너희의 지평선을 그려주렴. 세상이 또 한 번 한 시름 놓고 이어갈 수 있도록 할 일을 다해주렴.


그렇게 천진하게 희망과 포옹하고 우리는 돌아왔다. 모래 바닥에 코가 닿도록 성실히 해작이다 운동화 속 모래알까지 탕탕 털어내 놓고 돌아서는 아이들을 보면서.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연못을 휘저을 때는 중요한 일이 오직 그 하나인 듯 해도 돌아설 때는 안녕 또 보자 할 뿐이다. 아이들은 무엇도 망치지 않고 자연의 메시지를 잘 알아듣고 우리 몫까지 반성하며 아끼고 어우러져 지낼 것이다. 미안하고 고맙다.


이런 게 순리인가보다, 한다. 역사란 좀 둘러가도 앞으로 간다고 배운 게 이런 거였나 보다, 한다. 이쯤 되면 낙천도 근성이다.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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