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것에는 힘이 있다 4부작
뜨거운 태양 한 덩어리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곧이어 사위를 찢을 듯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와, 야 하는데, 너무 조용했다. 술렁이는 소리, 복도를 뛰어가는 소리만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시간이 부풀어 터질 듯 흐르다 마침내 아기가 울었다. 나는 추위와 피로, 안도와 두려움에 짓눌려 까무룩 잠들어 버렸고, 회복실에서 사이렌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기가 태변을 먹었다고 했다. 진통이 길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태아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인데 문제는 무호흡의 시간이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는 탯줄과 분리돼 자기호흡을 해야 하는데, 이게 흔히 울음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태변이 기도나 식도에 들어간 채 호흡을 했다간 폐까지 감염되는 등 위험할 수 있으므로 이물질을 완전히 빼내기 전에 호흡을 유도해선 안 된다. 응급처치를 하던 그 잠깐동안, 숨이 멈춘 그 몇 십 초 동안 뇌세포의 일부 회로가 망가지고 경련이 일었다. 회복실에서 들었던 사이렌은 우리 아기가 대학병원으로 후송되던 소리였다.
중환아실은 보호자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남편은 매일 시간 맞춰 위생복을 입고 아기를 만나고 왔다. "병상에 누워있는 다른 애들에 비하면 우리 딸은 얼마나 통통하고 활기찬지 몰라. 다들 부러워서 쳐다본다니까." 애를 내 품에 안는 것 말고는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였다. 며칠 뒤 옮긴 경환아실에서는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만 아이 얼굴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제서야 나는 남편의 말이 이해되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위중한 아기에게는 기적의 시간 또는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부모가 아기를 쓰다듬어 주는 것 밖엔 도리가 없었다.
실제로 1.8kg 이하의 미숙아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하루 세 번 15분간 쓰다듬어준 아기들은 같은 양을 먹는데도 다른 아기들에 비해 하루 47% 이상 체중이 증가했다고 한다. 아기들은 활동적이고 스트레스도 잘 견뎌서 비교집단보다 6일 먼저 퇴원했다. 우리 딸은 결국 17일 만에 내 품에 와 안겼는데, 갓 태어난 아기와 떨어져 지내는 하루 하루를 가늠이나 할 수 있다면 이 결과는 그저 기적일 따름이다.
'캥거루 케어'라는 실험도 성공했다. 생존확률 50%의 미숙아를 인큐베이터에 넣는 대신 엄마들이 가슴에 품고 다니게 한 것이다. 열 명의 아기 중 아홉 명이 살아났다. 이 방법은 지금도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 여러 곳에서 시행하고 있다. 엄마나 아빠 누구라도 그저 최대한 오랜 시간 아기와 맨살을 맞대고 비비고 쓰다듬는 것이다. 그뿐인 것 같지만, 오직 그것만이 아기가 원하는 것이다.
예비 산모를 위한 신생아 마사지 강의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도 어미 짐승은 새끼를 낳자마자 열심히 핥아준다. 태어나면서 느끼는 고통, 급변한 환경에 대한 공포, 막연한 허기와 혼란, 서러움을 달래줄 유일하고도 위대한 처치는 이것 뿐이다. 엄마의 심박동을 전해주고, 엄마의 체온을 나눠주며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것. 사랑한다, 환영한다, 걱정 마라, 도와줄게, 그 어떤 말보다도 위에 있으며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자극. 그 따뜻한 움직임이 생명을 살린다. 모정을 일깨워 어떤 시련도 감당케 하며 둘 다를 안도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아기를 안고서 나는 비로소 회복하기 시작했다. 아기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기저귀가 젖지 않아도 엄마를 찾았다. 나는 그간 밀린 스킨쉽을 몰아서 하느라 행복에 겨웠다. 눈을 맞춘 채 미소 짓는 아기도 그래 보였다. 흔히들 말하는 '손 탄 것' 같지는 않았다. 아기는 품에서보다 제 침대에서 편하게 잤고, 서너 시간에 한 번씩만 수유를 했다. 단지 새 기저귀가 필요한 것처럼 지금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내게 말했고, 그때마다 모든 움직이는 감촉에 대해 찬찬히 느끼고 소중히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열 달 만에 뇌신경 검사 결과도 정상 수치에 닿았다. 생명력이 탱천한 아기의 힘이었고, 함께 맞대고 비벼댄 우리의 승리였다.
즐거운 일이 있어 웃음을 터트리건, 괜히 소리 내 웃어보건 몸에서 엔도르핀이 생성되는 건 마찬가지다. 아이가 예쁘고 기특해서 끌어안고 쓰다듬기도 하지만, 안아주고 만져주고 하다 보면 애정이 깊어지기도 한다. 이는 짝사랑을 쌍방향 사랑으로 성공시키는 연애 고수들의 비법이기도 하다. 출근 때마다 남편 등을 쓰다듬는 나도 조금은 터득했다. 수고 많아요, 고마워요, 내가 당신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나를 사랑해주세요, 하는 그 어떤 말보다도 위에 있으며 모든 것을 포괄하는 따뜻한 움직임의 효과를.
움직이는 것에는 힘이 있다. 진동에는 감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