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쓸 궁리하며
부엌 선반 위에 칼 두 자루가 있다. 물컵 얹어 두는 스테인리스 시렁 위에 무심히 놓아두었다. 칼꽂이가 있지만 그때마다 홈에 맞춰 끼워 넣는 것도 일인지라 물 마를 새 없이 무시로 들락날락, 그 자리가 제자리된 지 오래다.
똑같은 것 두 자루. 이것 저것 다듬을 때는 씻어가며 쓰기도 바빠서 같은 걸로 한 자루 더 장만했다. 마트에서 몇천 원에 파는 국산 브랜드다. 일본 여행 갔을 때 전통 있는 명가에서 만들었다는 칼을 두어 번 만지작거린 적은 있다. 그 전통 때문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 전통의 세월 안에는 우리 선조들의 살과 뼈, 머리칼이 베어 나가던 시절도 있을 것 같아서다.
칼이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자국이 남는다. 샐러드용으로 양상추를 다듬을 때 칼로 자르면 그 자리가 녹슨 듯이 갈변한다. 그렇다고 모든 식재료를 손으로 뚝뚝 뜯어먹을 순 없으니까 또 칼을 든다. 두 자루나 두고 무시로 들락날락. 칼자국을 덜 남기려 노력하면서. 요령 같은 것은 없고 그저 매번 조심하면서.
오늘은 가지를 자른다. 도마에 오른 것은 늘 첫 날 댈 자리가 고민이다. 매끈하고 탱탱한 몸통 어디에도 이물의 진입을 맞이하는 곳은 없어 보인다. 꼭지에 납작하게 붙은 잎사귀를 억지로 들춰보니 미처 진한 색으로 변하지 못한 아킬레스건이 드러난다. 색깔의 경계에 날을 대고 손목에 힘을 준다. 말랑한 촉감이지만 껍질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입 안에서 야들야들 뭉개지는 속살의 수호자는 껍질 뿐이리라. 해충으로부터, 모진 날씨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보라색 껍질은 유럽 어느 유서 깊은 가문의 휘장 같다. 예우를 갖춰 단번에, 반듯하게 머리 부분을 잘라 낸다. 그런 다음 최대한 어슷하고 넓적하게 자른다. 속살에 양념이 잘 배야 하기도 하고 입 안에 들어갔을 때 질긴 껍질이 위아래로 정대칭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때로 식감은 맛의 일부이자 전부이기도 하다.
고기를 썬다. 시시한 칼날과 시시한 근력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질근질근 끊어내는 꼴이다. 구워 먹으려고 사둔 건데 우리집 막내 편도선이 부어서 후루룩 삼키기 좋으라고 국수 고명으로 다듬는다. 아이는 탈 없이 먹고 열없이 잠들었다. 환절기마다 붓는 편도 때문에 절제 수술을 권한 의사도 있었지만 아직은 내 칼로 어찌어찌 해보련다. 칼은 흔적을 남기지만 여지는 남기지 않는다. 한 번 잘려 나간 것은 도로 붙일 수 없으니.
“남편은 젊어서부터 밥을 집에서만 먹었어.”
아주 오랜만에 외출했다는 노부인이 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맞은편 친구는 한숨을 쉬거나 혀를 차면서 맞장구를 쳤고 때때로 그들의 지인 중 누가 아프고 누가 죽고 누가 치매에 걸렸는지 알려주었다. 테이블에 놓인 사과주스와 마들렌에는 손도 대지 않아서 나중에 직원이 봉투에 담아 건넸다. 노인들은 언제 또 보게 될지 모르겠다며 어렵게 자리를 떴다.
저녁 약속 가서도 술만 마시고 와서는 늦게 상을 차리게 했지. 평생 영감 입맛에 맞춰 음식을 했어. 텁텁한 찌개니 누린 고기며 벌건 양념으로 차린 밥이 나는 먹기 싫었어. 이 양반은 생선도 고등어만 먹었어. 그 비린 걸 굽고 조리고. 어휴, 나는 이제 고등어 쳐다도 안 봐.
그러던 양반이 이제 병이 나서 저러고 있네. 병원에서 먹으라는 것만 먹는데 차리기가 전보다는 쉬워. 준비해두면 자기가 시간 맞춰 챙겨 먹기도 하고 나만 나대로 해먹으면 돼. 맑은 국에 가자미를 굽고 과일도 깎아 먹곤 해. 이제 살이 좀 오르려고 하는데, 이제 좀 밖에서 이렇게 친구도 만나고 하려는데, 글쎄 모르겠어. 저 양반 아직도 저렇게 건강해서 요양병원 갈 정도도 아니고 평생 밥만 차리다가 내 인생도 끝나지 않을지. 나 혼자 있을 시간도 안 주고 끝까지 곁에 있다 갈까 봐 걱정이야…
고등어 토막과 함께 그녀 안의 무언가가 싹둑 잘려 나간 모양이었다. 마늘 꼭지 한 번 잘라 본 적 없을 남편의 손에도 아마 칼이 있었을 것이다. 쑥스러운 듯 마음 씀 한 번, 헛기침 같은 인사말 한 번이면 되었을 일에 번번이 날이 닿았을 것이다. 서로의 칼 닿은 자리마다 자국이 남았을 것이고, 흉이 졌을 것이고, 세월이 쌓이다 보니 맨 처음에 뭐가 있었던 자리였는지도 모르게 흔적없이 미련 없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처음에는 꼭 맞던 자리에 그렇게 잘려 나간 공간이 생기면서 그 구멍으로 따스함이 고이지 못하고 훌훌 빠져나가 버린 게 아닌가, 나는 가게를 나서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어 신혼부부인 듯한 커플이 손을 잡고 들어왔다. 남편 키가 아내보다 반 뼘이나 클까 했지만 여자는 눈을 크게 올려 뜨고 남자와 시선을 맞추며 발뒤꿈치를 들었다 놨다 애교를 부렸다. 둘 다 호리한 체격이지만 임신을 하고 애를 키우다 보면 여자 쪽이 남자보다 살집이 더 붙을 지도 모른다. 그때도 아내는 지금처럼 남편의 납작한 어깨에 안기듯 기대 있으려나.
잘려져 나간 것은 결코 도로 붙지 않으니까, 그리고 흔적을 남기니까, 그걸 무서워하고 조심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서로의 칼날이 좀 엉성한 편이 낫다. 너무 예리하고 차갑고 깐깐한 것보다는. 먹기 편하라고 쓰고, 이 악물지 않고 쓰고, 누군가에게 스며 들어 더운 숨이 되는 것을 떠올리며 쓰고, 덜 써도 될 궁리에 정성을 들이며 칼을 쓴다면.
칼로는 안되고 오로지 손으로 일일이 벗길 수밖에 없는 게 새우 껍질인데, 그걸 까서 누군가의 앞 접시에 놓아주는 걸 사랑이라 부르는 데는 과연 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