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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아란 Jun 23. 2022

뜨개질


아리까리하며 넘어간 건 전부 다 탈이 나 있다. 잘 몰라서 찍은 문제들이 하나같이 오답으로 판명 나듯.

괜찮겠지? 별일 아니겠지? 잠시 머뭇거렸다는 게 이미 그 순간 화평치 않은 낌새를 알아챘다는 건데,

억지로 밀어붙인 낙관이 헛되고 엉킨 민낯 그대로 실줄들 사이사이에 자비 없이 드러나고 만다.


수차례 다시 풀고 다시 매듭짓고 다시 첫 코를 짜면 바늘 옆으로, 앉은 자리 한 가득

지난 날의 오답들이 구불구불 오그라든 모습으로 널부러진다.

박박 지우고도 남은 거무스름한 연필 자국처럼 산뜻한 새 출발이라고 우겨볼 재간은 없다.

마치 막 지워대던 지우개에게까지 검은 때가 옮아 붙어 뭘 지우고 고치고 하지도 못할 지경인 듯 너덜거린다. 

단단한 대바늘엔 생채기가 남고, 뜨개실은 보풀이 일어 제멋대로 갈라져 있다.


그럼에도 다시금 실을 꿰어 묵묵히 돌려 감으며 한 줄씩 엮으려는 것은 이론과 실제가 일치하는,

오답 없는 가지런함을 이 손바닥만한 편물로나마 경험해보고 싶어서 일 테다.

잘못 들어선 길 거슬러 나갈 수도 없는 삶에서야 틀린 부분까지 누덕누덕 끌어안고 밀고 나가야 한다.

괜찮겠지? 불온한 의심은 괜찮을 거야 의뭉스럽게 눌러 앉히고,

잠시라도 누리게 되는 가만함은 감읍해 맞이하면서.

그러고도 이 또한 공평함을 관장하는 누군가의 비위를 거스를까 조신하고 저어해가면서 무게중심을 낮춘다.

다가올 흔들림에 겁 먹어 두 다리를 바닥에 딱 붙인 채로.


이제 아이 목둘레만큼 질서가 누적된 이 순간에는, 그러나 온전히 편안함을 만끽해도 괜찮다.

한 코 한 코에 이상이 없고, 한 줄 한 줄에 오류가 없는,

이론대로라면 언제나 아니 이럴 수가 없어야 하는 정연함.

굳이 이 계절에 털실을 안고 시간과 에너지를 씨줄날줄로 엮어 무오류의 작은 우주를 만들어 간직하려는 것은

이 합당한 편안함을 염치나 후사 같은 걸 염두할 필요 없이 오롯하게 누리고 싶어서일지 모르겠다.


삶 역시 그러하던 시절이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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