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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Apr 01. 2024

현실 <선택>의 종합

규범윤리로 바라보는 영화 <선택>





<선택> Extreme Measures 1996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선택>의 결말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기에 앞서, 공리주의의 정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리주의란 결과론적 윤리 이론으로, 사회 내 모든 인간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인 원리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공공의 이익 증진에 기여하는 일은 좋은 것이요, 또한 선행일 것이다. 현대인은 직관적으로 이러한 사고방식을 자명한 것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암묵적 상식으로 생각한다. 영화 <선택>을 관람하는 다수 관객의 생각으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쉽게 가이에 이입한다.

  영화 <선택>은 현대인의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에 비판을 제기하며, 의무론과 생명윤리에 입각한 자기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우리는 영화 초반부 가이의 선택에 대해 심정적으로 비난할 수 없었다.  10초 안에 한 명만을 살리기를 즉각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범죄자보다는 경찰을 택할 것이다. 가이는 분명 사회적 쓸모로 사람의 생명을 저울질했으며, 우리는 모두 즉각적으로 그 행동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영화 결말부 가이의 또 다른 선택에 대해서도 역시 공감하고 있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삶을 바꿔놓을 위대한 연구일지라도,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전에 그는 범죄자의 것보다는 경찰의 생명을 살리기를 선택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상황이 변하자 연구자의 공리주의적 선택이 부도덕한 일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관객은 전자와 후자의 상황이 반대 관계에 놓여 있음에도 둘 모두에 공감한다. 이것은 이율배반이 아닌가?


  또한 인물 연구자의 의도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중 연구자는 개인적 이익에 초연한 인물로 등장한다. 연구자가 살려내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내의 삶일 수도 있겠으나, 그는 그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숙자의 생명이 위대한 과학자의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아 희생시켜도 된다는 연구자의 주장은 일견 비윤리적으로 보이며, 쉽게 수용하기 어렵다. 그것이 인간의 생명은 절대적인 것이며,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반론적인 인권 의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을 단지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항상 목적으로 대우하라"라던 의무론자 칸트의 명제와 같이.


 이에 따르면 연구자의 의도는 좋은 것으로 평가 받을 수 없다. 그 대상이 노숙자이든 범죄자이든 사기꾼이든 간에, 인간을 수단으로 대우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옳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리주의도 의무론도 선택하기 어려운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타당한 판단을 내리려면 우리는 어떤 이론을 궁극적으로 채택해야 하는가?

  물론 규칙 공리주의와 같은 대안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판단들은, 어떠한 진공 상태의 가능세계를 상정하는 것과 같이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작중 인물들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고려한 것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연구자에게는 평온한 가정과 명예가 필요했을 것이다. 가이에게는 일종의 복수심도 있었을 것이고 기존의 안온한 일상과 현실이 더 소중했을 수 있다.



 이렇듯 현실에서 일어나는 윤리적 판단에는 수많은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 합치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그 어떤 공리주의 대 의무론의 대질로써도 전부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현실에는 영화의 플롯조차 없다. 그럼에도, <선택>이 보여주는 딜레마와 생명윤리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다양한 상황에 대처 가능한 통찰력을 줄 수 있다.

  

 만일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가이의 선택과 연구자의 선택 모두를 떠올리며 어떤 것이 가장 그 맥락에서 올바른 것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가이가 아니다. 우리가 인권 보호의 의무와 사회의 공리를 모두 고려하여 상황에 가장 적절한 판단을 내릴 때, 그것을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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