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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Apr 15. 2024

완벽한 주체로 거듭나기

영화 <블랙 스완> 리뷰




블랙스완 Black Swan(2010)





 이 영화를 프로이트 이론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게 학교 숙제였다. 이론을 잘 아는 것은 아니래도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정신분석학 영화라 명명한대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영화는 그러한 메타포들을 드러내고자 기획된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이 작품이 인간의 원초적 충동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니나가 주연을 맡은 ‘백조의 호수‘는 인간의 두 원초적 에너지에 관한 작품이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두 에너지는 한 인간 안에 함께 존재한다. ’백조‘와 ’흑조‘는 각각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상징한다.


 니나는 ‘백조’를 제일 완벽하게 연기해내는 발레리나이지만, ’흑조‘를 연기하는 데에는 어쩐지 서툴다. 감독은 두 모습 모두를 완벽히 보여주지 못하는 니나를 꾸짖고, 니나는 불안에 휩싸인다.





 니나는 백조라는 자신의 일부에 머물러 있다. 원래 인간의 충동(욕동)은 혼합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니나는 또 하나의 자신을 실현하지 못한 채 삶충동에만 머물러 있다.


 의미심장한 것은 니나의 엄마가 니나를 구속하는 방식이다. 엄마는 니나에게 순백의 물건, 공주 같은 핑크색 케이크를 강요한다.


 엄마는 새하얀 ‘백조’와 같은 순진무구한 니나를 욕망하며 그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니나는 착한 아이일 때만 공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엄마는 통제 밖의 니나를 처벌한다. 엄마가 니나의 발톱을 깎다가 실수로 아프게 만든 행동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니나의 변화를 저지하고자 하는 그의 무의식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니나의 라이벌 릴리는 악당이지만 한편으로 욕망의 대상으로도 등장한다. 니나는 주로 릴리에게 자신의 불안과 열등감을 투사하며 박해망상을 겪는다. 릴리는 흑조가 되고자 하는 니나의 욕망이 투사된 존재이다. 니나는 릴리를 질투하며, 선망한다. 니나는 자꾸만 흑조로, 죽음으로 나아가려 한다. 고장난 열차 마냥 폭주한다. 고혹적이며 파괴적인 자아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가는 존재인 동시에 죽어가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심지어 우리는 죽음을 바라는 원초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 어둡고 피폐하다. 어떻게 보면 망가져가는 니나의 모습이 단지 두렵고 끔찍하다.


 니나는 결국 "완벽”해졌다고 말한다. 완벽한 스스로를 찾았다고 여긴 것이다. 사실 니나는 완벽해진 것이 아니고 망가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꿈꾸던 완벽에 다가가려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다. 흑조가 된 니나의 모습은 부정적인가? 그러나 평생을 양육자의 객체로, ‘백조’로 살아가는 니나의 모습은 과연 긍정적인가?


 만일 에로스 또는 타나토스의 양자택일에 머문다면 이 이야기에서 지혜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타나토스로 나아가는 니나의 모습을 긍정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두 충동의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 균형을 지키며 진정으로 온전한 나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늘 혼합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블랙 스완은 인간의 주체적 삶과 자아의 균형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자 한다. 스스로를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은 모두 긍정되어야 한다. 자기의 밝고 긍정적인 자아뿐 아니라 어둡고 폭력적인 자아까지 수용하며 건강한 자기로 살아가야 한다. 이를테면 남에 대해 질투심이 들 때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온전한 주체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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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작중 ‘감독’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다. 감독은 캐릭터라기보다는 니나의 욕망을 끌어내기 위한 도구일뿐이다. 그래서 감독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감독의 성추행 사건도 단지 그러한 장치로서만 기능하고 있다. 남감독과 여배우의 성과 권력에 대한 소재는 예민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블랙 스완이 성정치에 대한 영화라는 평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블랙스완은 성을 다뤘음에도 성정치와 완전히 무관한 영화이다.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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