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는 슬픔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
누대 높이 오르길,
누대 높이 오르길 좋아했지.
새로 곡조를 지어 애써 슬픔을 말했지.
이제서야 슬픔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
말하려다 말고,
말하려다 말고,
"참으로 청량한 가을이야" 라고만 말할 뿐.
신기질(辛棄疾; 1140-1207)
정작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만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세상.
그래서
세상은 이토록 소란한 걸까.
애써 말하려는 나의 무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그 침묵의 경계를 언제 넘으려는가.
참으로 청량한 가을이야.
그렇게 말할 때,
그 안의 슬픔까지 알아들을 수 있는 공명의 교류가 그리워지는 계절.